"49년 전 전태일 외친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2019년에도 유효"

청계천 인근에 정식 개관한 '전태일 기념관'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새로운 시대를 연 외침
노동자 단결 외친 故 이소선 여사, 함께 계셨다면
49년 지나도 개선되지 않은 노동 현실..안타까워
기승전'최저임금'..정부, 더 적극적 정책 세워주길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 1 (18:15~19:55)
■ 방송일 : 2019년 5월 1일 (화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이수호 (전태일 재단 이사장)

◇ 정관용> 오늘은 129주년 노동절입니다. 이 노동절 하면 우리나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 바로 이 전태일 열사 기념관이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 지 무려 49년 만에 바로 어제 개관했습니다. 전태일 재단의 이수호 이사장님을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 이수호> 반갑습니다.

◇ 정관용> 돌아가시고 49년 만이고 전태일 기념관 설립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진 게 81년이더라고요.

◆ 이수호> 그렇습니다.


◇ 정관용> 무려 38년 만인가요? 왜 이렇게 오래 걸렸죠?

◆ 이수호> 네. 참 이게 우리나라 노동에 대한 일반 인식도 그렇고 특히 정권을 잡은 또 이걸 자꾸 정치적으로 생각을 하고 해서 노동이 그동안 소외당하고 또는 외면당하고 또 때에 따라서는 지난 정권 같은 경우에는 거부당하기도 하고. 이래서 전태일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데올로기화되기도 하고, 이런 여러 가지 사정으로, 또 뭐 돈을 많이 들여야 되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우리가 주체들이 또 전태일을 따르는 노동자들이 한번 마련해보려고 그동안 꾸준히 노력해 봤는데 어떻든 잘 안 되다가 이번에 드디어 문을 열게 됐습니다.

◇ 정관용> 이건 이수호 이사장님이 박원순 서울시장한테 제안해서 만들어지게 됐다면서요?

◆ 이수호> 네, 제가 전태일 재단을 맡으면서 뵙고 정말 전태일을 기리는 이런 기념관 정도 하나는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했더니 기꺼이 아직도 없습니까? 하시면서 참 마음을 내시고 참여해 주시고 이렇게 해서 어려운 과정을 겪었습니다만 아주 좋은 장소에 아름다운 기념관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시가 건물을 사고.

◆ 이수호> 그렇습니다.

◇ 정관용> 리노베이션 하고 시의 재정으로? 위치가 청계천이죠?

◆ 이수호> 청계천 3가인데요. 거기가 평화시장 전태일이 평소에 일하던 곳, 그리고 분신, 항거하던 그곳에서 조금 떨어지긴 했습니다마는 같은 청계천변의 어려운 현실 속에 함께 있던 그곳에 상징적으로 있게 돼서 저희들은 참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그 규모가 어떻게 됩니까? 기념관은.

◆ 이수호> 6층 건물로 돼 있고요. 1, 2, 3층을 기념관으로 합니다. 전시실도 있고 그리고 공연장도 조그맣게 넣었습니다. 60석인데. 소통할 수 있고 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제 노동권익센터가 들어와서 노동 상담도 하고 그리고 소외된 노동자를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하고요. 또 노동허브라고 해서 어려운 단체나 또 이런 데 사무실을 제공하기도 하고 그리고 공유공간을 많이 둬서 언제든지 와서 회의도 하고 여러 가지 행사도 할 수 있는 이런 장소도 제공하는 그런 걸로 마련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1, 2, 3층은 전시실 및 공연장, 4,5, 6층은 노동자들을 위한 각종 시설 제공. 사진을 제가 봤는데 건물 정면에 전태일 열사가 1969년, 즉 돌아가시기 1년 전에 근로감독관한테 쓴 자필 편지. 그거를 그걸 이렇게 디자인해서 했더라고요. 어떤 내용의 편지입니까? 그게.

◆ 이수호> 그게 정말 그 당시에 그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봉제노동자들의 그런 애환. 특히 시다라고 불리던 보조, 12살에서 18살, 이런 어린 소녀들이 그렇게 열악한 조건 속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좋아진 게 누구의 덕이라고 생각하느냐. 거기에는 이런 노동자들의 희생도 있다. 이걸 사회가 알아줘야 된다. 그런데 왜 외면하느냐. 이러면서 정말 간곡하게 근로감독관님, 정말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쓴 자필 진정서인데 이렇게 약간 예술적으로 디자인해서,

◇ 정관용> 1970년 11월 13일입니다. 그때 나이 22살이었고.

◆ 이수호>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근로기준법을 준수해라, 이걸 외치면서 분신하셨죠.

◆ 이수호> 그렇습니다.

◇ 정관용> 봉제공장에 몇 살 때부터 일을 하셨죠? 전태일 열사는.

4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열린 '전태일 기념관 개관식'에서 참석자들이 제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이수호> 전태일 열사도 16살, 17살 그 무렵에 서울에 올라와서 구두닦이, 신문팔이, 우산장수, 심지어 리어카 뒤밀이, 이런 온갖 어려운 일을 하다가 평화시장에 와서 시다 모집이라는 광고를 보고 드디어 노동자가 되는 거죠. 그런데 가보니까 그런 열악한 조건과 환경, 이게 도대체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목도하고 이게 왜 이럴까 하다가 근로기준법을 만난 거예요. 근로기준법이라고 허점 투성이었지만 어떻게 읽어보니까 거기에 이미 다 제대로 하도록 돼 있다는 거예요.

◇ 정관용> 법이 하나도 안 지켜지고 있다는 거였죠?

◆ 이수호> 안 지켜지는 게 문제고 이거를 무시하는 게 이 사회가 잘못됐구나. 그래서 근로기준법대로 해 달라고 계속 부르짖고 결국 끌어안고 도저히 안 되니까 같이 불탐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연 거죠.

◇ 정관용>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어찌 보면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 이수호> 그렇습니다. 그 전에도 여러 가지 사건적인 것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노동자가 직접 나서서 자기의 문제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한 게 처음이었고 그 계기로 해서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이 실질적으로 시작을 하게 된 거죠.

◇ 정관용> 청계피복노조가 상징처럼 이어 내려져 왔고요.

◆ 이수호> 그 당시 우리나라가 경공업, 특히 피복 관련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노동자들이 주였습니다. 그래서 YH 노동자 동일방직, 뒤에 여러 가지 사건들도 그 뒤를 이어서 일어나게 된 거죠.

◇ 정관용> YH도 동일방직도 다 봉제산업입니까?

◆ 이수호> 봉제산업입니다.

◇ 정관용> 그런데 돌아가시고 이 기념관을 만들 때까지 거의 반세기가 걸릴 정도로 우리 노동현실 아직도 갈 길이 멀죠?

◆ 이수호> 그렇습니다. 제가 오늘도 129회 세계 노동절이어서 집회에 참석하고 왔습니다만 아직도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고쳐라. 지키자. 비정규직 노동자라든지 특수고용노동자라든지 노동자 이름을 달고도 노동자 취급도 못 받고 있는 이런 게 무슨 일이냐. 그러니까 50년 전이나 지금 주장이 아직도 비슷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또 그런 어려운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고. 그러니까 지금 여러 가지 상대적인 박탈감 속에서 더욱 더 양극화, 이런 현상 속에서 정말 고생하고 힘들어하는 노동자들이 지금도 존재하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 정관용> 그러니까 전태일 열사가 지금 살아 계시다면 지금도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 이수호> 네. 오늘 저하고 같이 시청 광장에 노동자 대회 나가서 같이.

◇ 정관용> 외치고 오셨겠죠. 이사장께서는 전교조 위원장도 지내셨는데 해직교사라고 해서 노조 가입 못 하고 법외 노조가 돼 있는. 국제 ILO에서 빨리 이거 비준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데도 안 되고 있는 거 아닙니까?

◆ 이수호> 그렇습니다. 그게 ILO 협약 가운데 가장 중요한..

◇ 정관용> 핵심 협약이죠?

◆ 이수호> 핵심 협약, 단결권에 관한 것이거든요. 노동자에게 제일 중요한 게 단결권인데 그걸 아직 비준도 안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전교조 문제라든지 공무원도 마찬가지입니다마는 그 해고노동자가 조합원이라는 이런 것 때문에


◇ 정관용> 법외노조다.

◆ 이수호> 법외노조다 불법이라고 하고 쫓아내는 거죠. 이거는 뭐 말이 안 되는 그런 일을 지난 잘못된 정권이 그랬으면 새 정권이 들어서면 바로 그런 것부터 그냥 바로 잡아야 되는데 그걸 안 잡는 건지 못 잡는 건지, 저러고 있으니까 정말 전교조 같은 경우에 선생님들이 굉장히 순수하잖아요. 자기 올바른 권리나 이것들이 보장돼 있는데도 안 되는데 그거를 두고 뭘 다른 얘기를 하려니까 너무 답답한 거죠. 그래서 지금 어렵게 돼 있습니다.

◇ 정관용> 촛불정국에서는 민주노총과 노동자들도 앞장서지 않았었습니까?

◆ 이수호> 물론이죠.

◇ 정관용> 그런데 문재인 정부한테는 상당히 실망하실 것 같아요. 지금.

◆ 이수호> 지금 그래서 아주 어렵습니다. 사실 노동자들도 특히 전교조 선생님들도 문재인 정권이 잘 되길 바라고 또 우리가 촛불 들어서 만든 그런 정권인데 그런데도 지금 ILO 협약 문제도 그렇지만 노동자에 대한 처음에는 노동존중사회다, 노동 중심이다, 이렇게 해서 상당한 기대를 했는데 오히려 지금 탄력근로제다 해서 지금 노동 시간 문제, 거기다가 최저임금 문제, 이런 것들이 자꾸 후퇴하는 듯한 이런 느낌이어서 우리 노동자들이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지금 최저임금, 소득주도성장 등등이 숫자상으로도 우리 경제에 긍정적 결과로 딱딱 나왔으면 좋겠는데 꼭 그것 탓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 경제상황이 안 좋단 말이죠. 그러다 보니까 지금 보수적인, 또 친기업적인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는 이게 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다, 이러면서 전 사회적으로 뭔가 반노동 정서 같은 게 강화되고 있는 이런 분위기는 어떻게 보세요?

생방송 출연 중인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사진=시사자키 유튜브 캡쳐)

◆ 이수호> 그렇습니다. 모든 게 기승전 최저임금, 이런 식으로 몰아가면서 그렇게 됐는데 사실 최저임금도 그렇고 소득주도형 성장도 그렇고 이런 게 당장 효과가 1, 2년 사이에 이렇게 나타나거나 보이는 게 아니거든요.

◇ 정관용> 장기적 효과다?

◆ 이수호> 아주 장기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몇 년이라도 이렇게 가야 되는 건데 그걸 당장 그랬을 때 자영업자들이 그런 느낌을 받고 실제로 그런 일부에서는 어려움이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한 번 정말 새로운 정책을 세웠으면, 정말 한번 제대로.

◇ 정관용> 밀고 나가라?

◆ 이수호> 밀고 나가서 해 보면서 결과를 가지고 얘기를 해야지 시작하자마자 상대방이 저렇게 세게 나온다고 좀 주춤거리면서 자꾸 양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이것은 저는 이 정권이 정말 좀 너무 소극적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또 한편에서는 그래도 경사노위 같은 데 민주노총도 참여해서 대화를 통해 뭔가 타협도 이루어져야 하지 않느냐. 너무 투쟁 일변도 아니냐는 비판, 이건 어떻게 들었습니까?

◆ 이수호> 네, 저희들은 참 경청하고 굉장히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실제로. 그리고 경사노위도 사실은 민주노총이 합의해서 만들었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 이수호> 그런데 만들자마자 이미 의제 같은 것들은 미리 정해버린다든지 또는 어떤 결과를 놓고 마치 들러리 세우듯이 몰고 가려고 한다든지 이러는 건 정말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런 어려움도 있었던 게 사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정말 대화하고 정말 끊임없이 같이 노력하려고 하는 이런 노력은 계속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참 안타까운 건 전태일 여사의 어머님. 이소선 여사께서 살아계셨다면요. 어제 그 날을 얼마나 좋아하셨을 까요?

◆ 이수호> 아유, 어제 따님 전순옥 씨가 울먹이면서 엄마 보고 싶고 그립다. 그 말씀이에요.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어머니는 그 돌아가시면서도 양 노총의 위원장 손을 같이 잡고 돌아가셨거든요. 언제나 함께해야 된다, 단결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가 되자. 노동자가 하나가 먼저 돼야 된다, 이렇게 했었는데 너무 안타까운데 어제 그래도 양 노총 다 오고 노동위원회 다 와서 좋았습니다.

◇ 정관용> 전태일 열사 기념관, 어제 문을 열었습니다. 이제 많은 분들이 현장에 찾아가서 함께 좀 북적북적되게 만들어야죠. 전태일 재단 이사장이시고 관장이십니다. 이수호 이사장이셨어요. 고맙습니다.

◆ 이수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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