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왕비도 참석 못한 일왕 즉위식과 레이와(令和)시대 개막

[구성수 칼럼]

"(일본)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 세계 평화를 간절히 희망한다."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이 1일 오전 도쿄 지요다구 고쿄(皇居) 규덴(宮殿) 내의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열린 즉위 행사의 하나인 '조현 의식'(朝見の儀)'에서 마사코 왕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첫 소감(오코토바·お言葉)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일 제126대 왕으로 즉위한 나루히토 새 일왕(天皇)의 첫 발언(오코도바, お言葉)이다.

즉위 후 아베 총리를 비롯한 정부 부처 대신(장관)과 지방단체장 등 국민대표 3백여 명을 처음으로 만난 조현(朝見)의식에서다.

30년만의 일왕 즉위와 레이와(令和)시대의 개막은 일본 국민들에게는 큰 경사임에 틀림없다.

지난 30년 동안 일본 국민은 일본을 침체의 나락에 빠뜨렸던 '잃어버린 20년'을 보냈고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대참사도 겪었다.

새 연호로 카운트되는 레이와 시대는 마침 살아나기 시작한 경제와 함께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일왕의 즉위식은 세계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하다.

이는 상당부분 일왕을 '천황(天皇)'이라고 부르는 호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천황은 황제보다 더 신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호칭이다.

실제로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천황을 신적인 존재로 떠받들면서 숭배했다.

주변국을 침략하면서 내걸었던 대동아공영도 그 중심에는 천황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왕은 자신의 신격을 부정하면서 직접 인간선언을 했지만 일본 국민 상당수에게는 '천황'으로서 여전히 신적인 권위를 가진 존재다.

이날 즉위식은 '겐지토 쇼케이노기'(剣璽等承継の儀)로 불린다.

약 10분간 진행된 이 의식은 일본 고유 종교인 신토(神道) 최고의 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로부터 하사받아 지금까지 계승됐다는 청동검과 청동거울, 굽은구슬 등 이른바 삼종신기(三種の神器)를 새 일왕이 넘겨받는 것이 전부다.

이 의식에는 나루히토의 부인인 마사코 왕비는 참석 못했다.

'왕위 계승 자격을 갖춘 성인 남성 왕족만 참석한다'는 전례에 따라 여성 왕족의 참석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별은 아무리 일본 고유의 문화라고는 하지만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특히 천황이 신이 아닌 인간임을 선언한 이상 여성 왕족의 즉위식 참석은 물론 '여성 일왕'의 허용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왕의 즉위식은 독특한 일본 문화의 산물로서 해외토픽감이지만 우리 국민에게는 그 이상이다.

일본이 대동아공영을 내세우며 36년 동안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한 중심에 천황제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아베 정권 이후 보수화, 우경화의 길을 걸으며 평화헌법을 고쳐 다시 군사력을 보유하고 행사할 수 있는 '정상국가'로의 탈바꿈을 꾀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과거 식민지하의 악몽을 떨쳐버릴 수 없다.

비록 패전 뒤 새 헌법 아래서 일왕은 정치행위를 할 수 없고, 통치자에서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바뀌었지만 일왕의 즉위식과 그의 첫 발언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나루히토 일왕이 첫 발언에서 '세계평화'를 언급한 것은 주목할 만하지만 우리에게는 선왕인 아키히토에는 못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아키히토는 즉위 후 첫 발언에서 "여러분과 함께 헌법을 지키고 평화와 복지 증진을 희망한다"며 평화헌법 수호 메시지를 던졌다.

아키히토는 재위기간 중에도 평화헌법을 강력하게 옹호했고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와 같이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 책임에 대해 반성하는 메시지도 여러 번 내놨다.

아키히토의 이같은 헌법 수호의지 표명과 행보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와 개헌 추진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거는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전후 세대인 나루히토가 선왕과 같이 평화헌법 수호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는 즉위식 첫 발언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루히토는 역사인식 측면에서 선왕과 큰 틀에서 생각이 같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한·일관계와 평화헌법 유지에도 긍정적인 발언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화헌법 유지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국가와의 선린관계는 물론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초석이다.

한·일간 복잡하게 꼬여있는 과거사문제를 풀 수 있는 단초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아름다운 조화'를 뜻하는 '레이와'시대, 한·일 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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