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단관극장. 안녕, 멀티플렉스

전주국제영화제 20주년 기획 <안녕, 극장>④
수십년 몸바친 한 영화인의 죽음
설비 노후화로 척박해진 지역 극장가에
'생태계 교란종' 멀티플렉스 상륙
'영화, 표현의 해방구' 위한 공공 상영관?

전주국제영화제가 성년이 됐습니다. 지난 1999년 디지털 영화와 독립영화를 위해 우렁찬 울음을 터뜨린 게 벌써 20년 전입니다. 이제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와 표현의 해방구'를 자처하며 영화 발전의 한 축을 맡고 있습니다. 전북CBS는 오는 5월 2일 영화제의 스무 번째 생일을 맞아 전주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고, 전주의 영화인 故 탁광 선생의 삶의 궤적을 다시 그려봤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비빔밥도, 한옥마을도 아니다…전주는 '영화'다
② 전주 최고의 극장을 꿈꾸다…코리아 vs 삼남
③ 비 내리는 스크린, 그 속에 낭만이 있었잖아
④ 안녕, 단관극장. 안녕, 멀티플렉스
(계속)


전북 전주시 고사동에 위치한 극장 전주시네마타운. 지난 2003년 코리아극장, 뉴코리아극장, 명화극장이 모여 만들어졌다. 한때 월 7만 관객을 유치하는 등 선전했으나 장기 경영난을 겪고 있다.(사진=김민성 기자)
Scene #4 박힌 돌 뭉갠 굴러온 돌, 멀티플렉스

2004년 3월, 전주를 대표하던 한 영화인이 쓸쓸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자신이 십수년간 운영한 단관극장 안에서였다. 경영난으로 상영을 중단한 그곳, 낡은 의자에 쌓인 먼지는 많은 이들의 추억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는 전주 극장들에게 혹독한 시기였다. 시민들은 일순간 극장에 발길을 끊었다. 극장들이 과거의 영화(榮華)에 취해 설비 투자를 게을리 한 탓이었다. 지방 도시마다 하나쯤 있는 번화가를 보통 '시내'라고 부르는데, 시내 한복판에 있는 '영화의 거리'에서는 그즈음 지나다니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당시 극장들의 설비 노후화는 상당히 심각해서,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장으로 지정된 극장에서조차 영화제 기간 필름사고가 매년 되풀이될 정도였다. 이름만 '국제'였지, 지역민에게조차 내놓기 부끄러운 수준이었던 셈이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봉 초기 전주를 찾은 관광객들 너머로 프리머스 시네마 간판이 보인다. (사진=전주시청 제공. 전주극제영화제 조직위원회)
탁하디 탁한 우물 속으로 생태계 교란종들이 연이어 뛰어들었다. 1997년 전주 최초의 대기업 멀티플렉스 '프리머스'가 상륙한 이후 2003년 CGV 전주점, 2004년 롯데시네마 전주롯데백화점관, 메가박스 전주객사점 등 상업영화를 앞세운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차례로 문을 열었다.

영화의 거리에 몰려 있던 단관 극장들이 그런 식으로 씨가 말랐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기업 간판을 달지 않은 극장은 자칭 '호남 유일의 향토 영화관' 전주시네마타운 뿐이었다. 지난 2003년 임학송 대표가 코리아극장, 뉴코리아극장, 명화극장을 합쳐서 만든 극장이었다.

7개 관으로 시작한 전주시네마타운도 한때는 제법 잘 나갔다. 보통 한 달에 5만, 많게는 7만 관객도 기록했다. 하루에만 8천 명이 몰려든 적도 있었다. 임 대표는 "그때는 조조 영화 빼고 전 타임이 다 매진되는 날도 있었고,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은 아침에 오면 저녁에 영화를 봐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야심 차게 시작한 건 어느 극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주시네마타운은 대기업의 공격적 투자를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현재 전주시네마타운은 한 달에 5천 관객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지난해에는 건물 임대 현수막을 걸었고, 잠깐이었지만 평일 오전 상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임 대표는 "서신동, 송천동, 효자동 등 영화의 거리와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들어와 영화의 거리의 집객 효과가 떨어졌고, 그때부터 관객 감소 추세가 더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티켓값도 10년간 동결하고, 경찰이나 소방, 교도관 등 우리 사회에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 추가 할인 혜택도 제공하며 살길을 찾았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4년 폐업신고를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주 태평극장(우측 상단). (사진=연합뉴스)
이제 전주 극장판은 배급과 제작, 극장 운영까지 총괄하는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장악했다. 태평, 명보, 명화. 코아, 피카디리 등 동네 소극장은 지나간 이름이 됐다. 언더독의 반란을 우리는 언제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인문공간 파사주 성기석 대표는 "독립영화를 꾸준히 찍고, 그런 문화를 확장하려는 젊은 영화인들의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국제영화제 20주년을 맞이하는 전주에 프랑스의 포럼 데 이마주(Forum des Images)같은 공공 상영관이 필요한 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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