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리뷰] 러시아, 비핵화 우군인가 훼방꾼인가?

푸틴 ‘6자회담’ 발언 논란…전문가, 北 체제보장에 방점
러 동북아 영향력은 한계…美 설득 수단으로는 활용 가능
4강 중 한반도 통일에 우호적…극동 개발 위해 韓 참여 희망

■ 방송 : CBS 라디오 <임미현의 아침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임미현 앵커
■ 대담 : 홍제표 기자

◆ 임미현 > 한반도와 동북아 국제정세를 살펴보는 <한반도 리뷰> 시간입니다. 홍제표 기자, 오늘은 어떤 주제를 갖고 나왔나요?

◇ 홍제표 > 지난 주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많은 언론의 관심은 ‘6자회담’에 꽂혔습니다. 러시아가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더 꼬이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먼저 이러한 지적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팩트체크 차원에서 따져보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러시아는 비핵화 협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러시아는 우군인가 훼방꾼인가? 오늘의 주제입니다.

◆ 임미현 > 홍 기자도 블라디보스톡 현지 취재를 했습니다만, 푸틴 대통령이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한 것은 사실 아닌가요?

◇ 홍제표 > 6자회담 필요성을 제기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방점은 북한체제 안전보장에 찍혀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보장 메커니즘에 대해 논의하고 북한의 체제 보장에 대해 논의할 때는 6자회담 체계가 가동돼야 한다고 본다.” 고재남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에 대해 “6자회담을 당장 하자는 게 아니라 마지막 단계에서 평화협정 같은 얘기들이 나올 때 다자안보체제로 가자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비핵화 협상은 지금처럼 북미 양자 간에 하되 협상이 타결되는 시점에는 다른 주변국들도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일종의 연대보증을 해줘야 북한이 안심하고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회담 모두발언에서 북미대화에 대해서는 지지 입장을 밝혔습니다. 들어보겠습니다.

“또한 북한은 지금 북미관계를 개선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노력을 지지한다”

◆ 임미현 > 하지만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6자회담은 실패한 방식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잖아요. 이것은 푸틴 대통령이 6자회담을 제안했다는 반증 아닐까요?


◇ 홍제표 >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6자회담에 찬성하느냐, 아니면 김정은과 일대일 협상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6자회담과 양자회담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 했으니 그런 답이 나온 것이겠죠. 따라서 푸틴 대통령이 6자회담을 제안했다고 말할 근거는 딱히 아닌 셈입니다. 그런데 볼턴 보좌관은 정작 푸틴 대통령의 핵심 발언, 즉 체제보장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러시아와 중국은 대북제재 이행을 더 강화하라는 질문과는 다소 동떨어진 얘기를 했습니다. 의도적인 무시 전략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기존의 ‘비핵화 대 상응조치’라는 거래 방식을 최근에 ‘비핵화 대 체제보장’으로 바꿨고 러시아가 이번에 지지한 셈인데 볼턴 입장에선 이 프레임을 인정하기 싫었겠죠.

◆ 임미현 > 그런데 한편에선 이번 북러회담이 알맹이 없는 ‘노딜 회담’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 홍제표 > 러시아가 6자회담을 주장했다는 것과는 전혀 상반된 분석인데요, 이것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판단됩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대략 두 가지입니다. 우선 합의문이나 공동성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크렘린궁이 사전 예고했던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구체적 결과물이 없으니 ‘노딜’ 아니냐 하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전통이 강한 국가 간 회담에선 이런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북중 정상회담도 중국 언론 보도를 통해서만 결과가 알려졌습니다. 또 이번 북러회담은 극동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렸기 때문에 애초 공식성이 약했습니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시베리아 동부 울란우데에서 북러 정상회담을 할 때도 합의문이 없었습니다.

◆ 임미현 > 김정은 위원장이 회담 결과에 실망해서 조기 귀국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 홍제표 > 그것은 난센스에 가깝습니다. 김 위원장의 일정 자체가 공개된 바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일부 세계 언론은 이번 회담에 대해 “푸틴이 미국에 은근히 한 방 먹였다”(AFP통신)는 관전평을 내놓고 있습니다. 북한이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만났어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식으로 무시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노딜 회담'이라 치부하기엔 우리가 처한 상황이 엄중합니다.

◆ 임미현 > 하지만 어찌됐든 뱃사공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으로선 중재자 역할이 어려워질 수도 있는데, 이 점은 어떻게 보십니까?

◇ 홍제표 > 분명히 그런 측면은 있지만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러시아는 유럽과 중동 쪽에 핵심적 국익이 걸려있고 동북아에 신경 쓸 여력은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따라서 당분간은 존재감을 확인하는 선에서 머물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우리 역할과 겹치거나 충돌할 부분이 별로 없다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푸틴 대통령의 6자회담 언급은 북미 간 팽팽한 교착국면을 깨트릴 모멘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빅딜을 고수하는 미국을 설득할 압박수단이 될 수 있는 셈입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그제 토크 콘서트 발언입니다.

“지금 자꾸 시간 끌면 중국도 끼어들 거고, 그러면 결국 국제여론에 의해서 6자회담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러기 전에 북미정상회담을 빨리 재개해서 한반도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등을 동시에 이행하는 판을 빨리 짜자, 그동안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다, 이런 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일 필요가 있다”

◆ 임미현 > 활용하기 나름이란 얘기인데요. 하지만 결국 러시아는 물론 중국과 일본까지 속된 말로 숟가락을 얹게 되면 문제가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질까 걱정입니다.

◇ 홍제표 > 중요한 것은 비핵화 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안정을 위해서도 어느 시점에선 다자안보체제가 논의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이미 일본도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일 정상회담을 이용해 비핵화 협상에 개입할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따라서 주변 4강 각 나라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우리 나름의 분석과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 됐습니다. 러시아의 경우는 한반도에 대한 입장이 옛 소련 시절과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대결에서 협력관계로 전환됐고 더 심화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특히 극동 지역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됐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남북러 3각협력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 북러회담에서도 이례적으로 언급한 부분입니다. 이는 주변 4강 가운데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통일에 그나마 가장 긍정적 입장을 가진 나라로 평가되는 이유입니다. 러시아와도 전략적으로 ‘윈윈’할 수 있는 관계 형성이 가능한 것입니다. 다만 이것도 우리의 주도면밀한 준비가 전제됐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비핵화 로드맵’을 하루빨리 만들어 주도권을 잡는 게 관건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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