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은 장외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밝혀 협상 테이블에 쉽게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앞서 국회의장 주재 5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패스트트랙을 태우면 4월 국회가 없는 게 아니라 20대 국회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데다 한국당 내부에선 광화문 천막 농성을 전국 주요 거점 도시로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초강경 의견도 나와 협상이 시작되기도 어려운 모양새다.
한국당은 추경안 내용을 두고도 '총선용 추경'이라며 비판일색이다.
이번 추경안은 6조 7천억원의 규모로, 강원 산불·포항 지진 등 재난피해 복구 지원, 미세먼지 대책, 선제적 경기 대응 등을 위한 예산안이다.
항목 별로는 지역경제와 소상공인 지원 등의 방안이 담긴 선제적 경기대응 및 민생경제 긴급지원에 4조 5천억원, 미세먼지 핵심 배출원을 잡기 위해 1조5000억원, 재난대응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940억원이 책정됐다.
한국당은 재난 대응 추경에는 찬성하지만, 경기 대응을 위한 항목들을 '빚더미 추경'이라며 강력 반대를 예고했다.
이처럼 패스트트랙 후폭풍이 거센 만큼 정치권에선 '이번 추경이 6월을 넘길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국회는 국무총리로부터 시정연설을 청취한 뒤 기획재정위 등 12개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를 거쳐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 본회의 의결 등의 처리 절차를 밟게 된다.
이 과정에서 통상 한 달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2000년대에 들어서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38.25일이다.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추경안은 2000년 저소득층 생계 안정을 위한 추경안으로 106일이 걸렸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로 있었던 2차례 추경(2017년·2018년)은 모두 국회 통과까지 45일 걸렸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위원들의 임기 만료도 변수다.
1년인 임기가 다음달 30일 만료돼 새로 위원회를 구성해야 할 수도 있는데, 한달 안에 모든 심사를 마칠 수 있겠느냐는 우려다. 예결위 위원은 다음달 8일 새로 선출되는 원내대표가 지명하게 된다.
현재 예산결산위원회 위원장이 한국당 황영철 의원인 것도 걸림돌로 작용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추경은 타이밍이 중요한 만큼 신속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8월, 9월 가면 추경 필요성이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 성장 동력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게 이번 추경"이라며 "이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한국당이 일부러 안 할 수도 있다. 말로는 국민과 국가 얘기하지만 상대방 정당이 잘 되는 게 자기들한텐 불리하다고 보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으로선 마냥 기다리기 어려운 입장인만큼 강행하자는 기류도 있지만, '국회 정상화'를 위해 협상에 나설 거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희상 의장이 추경안을 직권상정하면 되지만 (의장실을 점거 당한) 전례도 있어서 그렇게까지 하진 않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한국당과의 고소·고발전을 멈추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보좌진들에 대한 고소가 들어오면서 한국당 내부에서 불만이 더 커진 상황에서 먼저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인 것.
강병원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오늘 3차 고발은 안 한다"며 "고발은 역풍이 있다. 막무가내로 할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추경안 심사마저 한국당을 뺀 채 강행할 시 역풍이 불 것도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또 여야 냉각기가 길어질 경우, 소방관 국가직화·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최저임금법 등 민생 법안 처리도 힘들어져 20대 국회가 '빈손국회'로 막을 내릴 거라는 우려도 크다.
특히 소방공무원법의 경우, 강원 산불을 계기로 다시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지만 관련 법안 9개를 소위에 상정하자마자 한국당 의원들이 반발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탄력근로제법, 최저임금 개편법 같은 노동입법 등 여러 현안 들이 있다. 이 현안들을 누가 더 열심히 챙기고 좋은 대안을 내놓느냐에 따라 국민들에게 또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패스트트랙이 매듭지어진 만큼 지금부턴 민생을 위한 경제로 야당이 나서주실 것을 간곡하게 호소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