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은 쟁점법안이 끝없이 표류하지 않도록 미리 지정하는 '안건 신속처리제도'다.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은 이 제도를 이용해 선거제 개편과 사법개혁 법안을 가급적 빨리 처리하려 하고 있다.
국회 사법개혁 특별위원회는 26일 밤 9시 20분쯤 국회 본관 5층 문체위 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사법개혁 관련법안에 대한 패스트트랙 지정동의 안건을 상정했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이자 더불어민주당이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검찰청법 개정안이 담겼다.
다만 속칭 '빠루'라고 불리는 쇠 지렛대나 장도리 등이 등장할 정도로 과격했던 이날 새벽보다는 수위가 다소 약했다. 이미 발의된 법안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면 처벌할 수 있다는 국회선진화법과 민주당의 무더기 고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사개특위 소속 한국당 위원들은 회의에 참석해 격론을 벌였다. 이들은 바른미래당이 사개특위 위원을 이른바 '사·보임'으로 난데없이 갈아치우고, 민주당이 인편 접수의 전례를 깨면서까지 법안을 제출한 점이 정당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 패스트트랙 반대파도 가세했다. 지도부가 강제로 사임한 오신환 전 사개특위 위원은 회의장에서 정식 발언권을 얻지는 못했지만 목청껏 "사보임은 원천 무효"라고 외쳤다.
이처럼 한치도 물러섬이 없던 회의는 1시간 가까이 진행되다 결국 표결 없이 끝났다. 한국당 동의 없이 패스트트랙을 지정하기 위해서는 재적위원 18명 가운데 11명이 찬성표를 찍어야 하는데 몇몇 의원이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에서 새로 보임한 채이배 의원과 임재훈 의원은 각각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거나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상황을 전달받은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지역구인 목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개특위는 회의실 길목에서 한국당 관계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대치하다, 사개특위 산회 소식이 들려오자 결국 해산했다. 더구나 바른미래당 소속 정개특위 위원인 김동철·김성식 의원이 모두 불참한 터라 회의가 열렸어도 패스트트랙 지정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두 의원은 김관영 원내대표에게 "먼저 분열된 당부터 추슬러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정개특위 무산이 사개특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공수처 설치보다는 선거제 개편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바른미래당 입장에서 볼 때 정개특위를 열지 못하는 상황에서 굳이 사개특위에서 먼저 패스트트랙을 가결 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당과 민주당은 각각 휴일 비상대기조를 편성하고 혹시 모를 긴급한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당은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황교안 대표 취임 이후 2번째 장외투쟁을 벌인다. 이때에도 일부 의원과 보좌진은 국회에 남아 회의실 봉쇄에 투입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