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핫한' 욕망 담은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

"쿨한 게 아니라 '핫한' '야한' 장애인 되고 싶다"
장애인도 솔직하게 불편과 욕망 말할 수 있어야
특수학교 편하지만.. 세상과 연결돼있는 공간 필요
정신병원 강제입원 논란, 쉬운 입원이 해법 아냐
참혹한 병원 환경, 병 악화시키거나 분노만 키워
장애인들의 목소리 담은 다양한 이야기 필요해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 1 (18:15~18:55)
■ 방송일 : 2019년 4월 26일 (금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김원영 변호사


◇ 정관용> 나는 쿨한 게 아니라 핫한 장애인, 야한 장애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출간된 희망 대신 욕망이라는 책의 한 구절입니다. 쿨한 게 아니라 핫한 장애인 또 야한 장애인 무슨 뜻일까요? 이 책의 저자이신 김원영 변호사 모시고 이야기 나눠봅니다. 김 변호사님 어서 오십시오.

◆ 김원영> 안녕하십니까? 김원영입니다.

◇ 정관용> 휠체어를 타고 오셨어요. 어떤 장애를 가지고 계시죠?

◆ 김원영> 저는 장애유형으로 하면 지체장애고요. 장애의 원인은 골형성부전증이라는 어려운 이름의 지병이 있습니다.

◇ 정관용> 골형성부전증? 쉽게 설명해 주시면.

◆ 김원영> 뼈 조직의 형성에 어려움이 있어서 골절이 좀 잘 되는, 어렸을 때, 성인이 된 이후에는 그런 적이 없는데요. 어렸을 때는 골절을 많이 겪고 그 결과로 보행이 어려운 그런 상태였습니다.

◇ 정관용> 그렇군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 김원영> 태어난 직후부터 그랬습니다.

◇ 정관용> 이건 선천적인 겁니까? 어떤 겁니까?

◆ 김원영> 선천적이죠.

◇ 정관용> 그래요. 단도직입적으로 쿨한 장애인이 아니라 핫한 장애인. 게다가 야한 장애인은 뭡니까?

◆ 김원영> 우선 이 책이 사실 전면개정판이고.

◇ 정관용> 이게 그러니까 몇 년 전에 내신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이 책을 전면 개정해서 제목을 '희망 대신 욕망' 이렇게 간단히 줄여서 붙이셨어요.

◆ 김원영> 2010년도에 나온 책이고 제가 이 책을 쓸 때 20대 초중반 이때였거든요. 그 글을 쓸 때가. 그래서 쿨한, 핫한 이런 말이 조금은 시대에 약간 뒤떨어져 들리기는 하는데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싫고 혹은 불편하고 이런 것들을 괜찮은 척 하지 않고 내가 괜찮고 나는 굉장히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고 이런 척하지 않고 솔직하게 나의 불만, 불편, 욕심 이런 걸 말할 수 있는 장애인. 이런 걸 의미하고 싶었습니다.

책 『희망 대신 욕망』 표지, 김원영 글 (사진=도서출판 푸른숲)

◇ 정관용> 나의 불만, 불평. 그걸 다 말할 수 있는. 야한 장애인도 같은 겁니까?

◆ 김원영> 그런 맥락에 있습니다. 나의 욕망 같은 것이죠. 얼마든지 내가 자기를 표현하고 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 정관용>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사람으로서의 모든 욕망을 가지고 있죠.

◆ 김원영> 물론입니다.

◇ 정관용> 그런 욕망을 갖고 있는 나는 장애 때문에 그걸 할 수 없을 거야라고 지레 포기하시는 분들이 많죠.

◆ 김원영> 자기 스스로 포기하기도 하고 또는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뭔가 사회에서 너는 이렇게 안전하게 잘 지내면 되는 것이지 그런 것까지 하려고 하냐. 이런 말들을 많이 듣잖아요. 그런 점에서 좀 더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장애인에 대해서.

◇ 정관용> 즉 인간으로서의 욕망을 가능하지 못하게 하는 이 사회. 이 사회의 문제 이걸 말하고 싶다. 결국은 그 말씀인가요?

◆ 김원영> 맞습니다.

◇ 정관용> 변호사님 성장과정을 쭉 따라가면서 책이 구성이 되어 있는데. 그러니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태어나자마자부터 골형성부전증을 앓으셨고요. 그러면 학교도 못 다니셨어요?

◆ 김원영> 초등학교는 그때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이런 때여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 정관용> 그때 그랬나요?

◆ 김원영> 저도 마찬가지로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학교에서 와서 다치면 어떡하냐라든가 시설이 안 돼 있다. 거부를 당했죠.

◇ 정관용> 그래서요?

◆ 김원영> 초등학교는 다니지 못하고 집에 있었고요.

◇ 정관용> 집에서?

◆ 김원영> 검정고시를 15살 때 봤고 그 이후에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학교를 찾아서 들어갔습니다.

◇ 정관용> 중학교 과정으로? 그 특수학교에서는 어땠습니까? 거기는 전원이 장애인인가요?

◆ 김원영> 네, 장애인 학생들을 위한 학교. 처음에는 조금 저도 힘들었지만 그 이후에 굉장히 즐겁게 지냈어요, 사실은. 왜냐하면 환경이 워낙 편리했고 저한테.

◇ 정관용> 모든 시설이 다 돼 있고.

◆ 김원영> 그리고 또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제가 처음으로 공부를 같이 친구들과 하는 거니까. 동아리 활동도 했고.

◇ 정관용> 어떤 동아리 하셨어요?

◆ 김원영> 사물놀이도 했었고요. 가요제에 나가기도 하고 온갖 것들을 다 했습니다.

◇ 정관용> 그야말로 욕망을 분출했군요.

◆ 김원영> 네, 그동안에 쌓아왔던.

◇ 정관용> 고등학교는요?

◆ 김원영> (중학교에서) 너무 즐거웠는데 그래도 언젠가는 제가 장애인들만 있는 곳에 머물 수는 없기 때문에 일반 학교에 가고 싶었으니까요. 좀 힘든 과정이 있었지만 고등학교는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했습니다.

◇ 정관용> 그때는 고등학교에서는 장애 학생을 받아주었나요?

◆ 김원영> 그때가 2000년도였어요. 세상이 많이 변했던 시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입학을 하려고 제안했을 때 역시나 우리 학교에 좀 시설이 안 돼 있어서 어렵다. 처음에는 거부를 당했죠.

◇ 정관용> 그런데요?

◆ 김원영> 그때는 한참 한국 사회에 장애인 인권운동의 목소리를 주장하는 분들이 막 등장하던 시기여서 제가 굉장히 운 좋게 그런 분을 만나서 그분과 함께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협상하기도 하고 그래서 교장 선생님도 마음을 돌리셔서 받아주고 또 여러 가지 시설도 해 주시고 결국은 그렇게 잘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김원영 변호사 (사진=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제작진 제공)

◇ 정관용> 장애인만을 위한 특수학급이 따로 있거나 이런 학교가 아니었죠?

◆ 김원영>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 정관용> 그냥 비장애 학생들하고 같은 반에서 공부하신 거네요?

◆ 김원영> 네, 학교 전체에 저와, 저랑 같이 특수학교에 같이 갔던 친구가 있었는데 두 사람만 장애 학생이었어요.

◇ 정관용> 계단 같은 거 많고 그러지 않았나요?

◆ 김원영> 학교 계단도 많고 또 산에 있었거든요, 학교가. 언덕이 굉장히 심했고. 굉장히 위험하게 다녔죠, 사실은.

◇ 정관용> 그런데 계단 같은 것은 오르락내리락 할 수가 없잖아요.

◆ 김원영> 그렇다고 무슨 도우미나 이런 게 없었기 때문에 그냥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그때는.

◇ 정관용> 친구들이 도와주고? 그렇게 본인이 중학교는 장애 학생들만 있는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는 일반 학교에서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다니는 두 경험을 다 해봤잖아요. 어때요? 장단점을 얘기한다면?

◆ 김원영> 특수학교의 생활은 일단 굉장히 몸이 편하고요.

◇ 정관용> 시설이 잘 돼 있으니까.

◆ 김원영> 그리고 사실 사람들의 눈치라든가, 사람들의 시선에서 좀 자유롭죠. 저희 다 같은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니까 사실 서로 다 이해하고. 반면에 사회에 많은 학생들이 누리는 것들 사교육부터 시작해서 어떤 특정한 공교육 시스템 안의 여러 제도들. 이런 것들에서 많이 소외돼있고 특히나 어떤 청소년 문화에서도 굉장히 많이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좀 뭔가 세상과 분리되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 정관용> 사물놀이도 하고 가요제가 나갔지만 한계가 너무나 많더라.

◆ 김원영> 그 작은 세계 하나에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고. 반면에 일반학교에 갔을 때는 물론 굉장히 불편하고, 또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 내가 굉장히 좀 다르고 열등하게 느껴질 때도 많고, 심리적인 갈등이 있었지만. 그러나 어쨌든 제가 세상의 구성원으로서 자리가 있다, 나에게. 그런 느낌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 기회도 많았고요. 선생님들의 교육시스템이라든가 이런 것도 훨씬 더 나을 수밖에 없었고요.

◇ 정관용> 교과서적인 얘기일지 모르지만 모든 일반학교가 장애 학생들도 신체적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도록 시설이 되어 있다면 그러면 일반 학교가 좋은 거 아닙니까?

◆ 김원영> 물론입니다. 너무 그렇고요. 어떤 공간이든 내가 몸도 편하고 그러면서 뭔가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연결돼 있는 그런 공간이 사실 소중하죠.

◇ 정관용>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에 가셔서 변호사가 되셨는데, 변호사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는요?

◆ 김원영> 사실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먹고살아야 됐기 때문이고요.

◇ 정관용> 물론이죠. 그게 1번이죠.

◆ 김원영> 취업을 해야 되는데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였고 그때부터도. 그래서 자격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고. 그런데 (변호사) 생각을 좀 더 진지하게 했던 것은 사실 제 주변에 장애인 친구들도 있고 저희 가족들이나 친척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은데 법률적인 상식들이 굉장히, 그런 지식과 기본적인 상식도 물어볼 곳이 없어서 고생하는 경우가 되게 많았거든요. 제가 찾아드리기도 하고 저도 지식을 배우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이게 뭔가 법률의 언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실용적으로 특히 저를 비롯한 제 주변 사람들에게 되게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절실히 했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 인권 관련 돼서 법률적 조언을 하는 그런 변호사가 돼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셨던 건 아니고?

◆ 김원영> 그런 부분도 분명히 있었고요. 그런 부분이 실제로 많았고 그런 것을 물어보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 정관용> 그리고 변호사가 되신 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셨네요? 그건 어떤 계기로? 어떤 일을 또 하셨어요?

◆ 김원영> 인권위원회는 제가 로스쿨에서 배우고 했던 주요 관심사가 사실 인권 그런 법률들이었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좀 국가 기관이라고 하는, 사실 국가기관이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일하기에는 사실 가장 편리한 곳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그런저런 이유들로 들어갔는데 들어가서는 사실 제가 예상하지 못했지만 가장 많은 시간 동안 정신장애인들 관련된 업무를 했었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왜 그 일을 하시게 됐어요?

◆ 김원영> 일단 배치가 그렇게 된 것도 있었고 또 제가 장애인 차별금지법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또 공부하고 했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쪽 업무로 갔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정신장애 관련돼서 얼마 전 논란거리가 있었던 게 강제입원을 시키느냐 마느냐. 과거에는 강제입원이 아주 쉬웠는데 그걸 까다롭게 법이 얼마 전에 바뀌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최근에 각종 범죄가 나니까 다시 또 쟁점이 되고 그러던데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17일 오전 경남 진주시 가좌동 아파트에 방화·살해한 안모(42)씨가 과거에도 위층을 찾아가 문을 열려고 하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기록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김원영> 그게 사실은 저는 굉장히 마음이 아파요, 그 논쟁들을 보고 있으면. 물론 이제 우리 각자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보는 현실이 다른데. 정신 장애인을 돌봐야 되는 가족들이 있을 수 있고요. 그다음에 현장에서 정신 장애인을 치료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고 또 정신 장애인 본인들의 입장이 있을 수 있고 사회의 여러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는데.

물론 어떤 정신장애는 분명히 어떤 위험한 행동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고요. 부정할 수가 없을 것 같고. 다만 사람들이 통계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어떤 질병이 범죄와 연관성이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거든요. 그건 분명한데. 좀 과장된 부분이 분명히 있죠.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는 위험할 수 있고 그래서 치료를 해야 된다는 필요성은 인정할 수 있는데.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는 게 뭐냐 하면 우리나라의 정신병원에 아주 많은 경우에는 의사 선생님이 못해서 그런 게 아니고 환경이 너무나 열악해요, 사실은. 제가 인권위에서 정신병원을 많이 방문을 했는데 물론 잘하고 좋은 곳도 있지만 적지 않은 곳은 사실 교도소보다 못한 환경이었어요. 정말 너무 너무 열악하고요. 이게 2010년대에 이 정도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인가 싶은. 그런데 거기 가본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가족도 그 병동에 들어가지 않고요. 너무 열악해요. 그러니까 그런 곳에.

◇ 정관용> 거기 치료를 위한 공간이 아닌가요?

◆ 김원영> 사실상 아니죠. 그런데 물론 거기에는 병원장이 못됐다 이런 측면보다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특히 가난한 정신장애인분들은 의료급여수급권자인데. 환자에 대한 수가가 너무 낮게 책정되어 있다든가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에 따른 결과로 정신병원이라는 환경이 상당부분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에 이 환자들을 거기다 강제입원시킨다고 나아지느냐. 그렇지 않거든요. 오히려 거기서 더 악화되거나 나와서 분노만 더 가지게 되죠. 나를 이런 곳에 집어넣은 사회와 가족과 이런 것에 대해서요. 이게 해결책이 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면 환자들의 적절한 치료와 어떤 관리대책을 세우는 데 동의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다 강제입원시켜라, 쉽게 시켜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또 하나의 정말 중요한 현실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이런 상황을 보면 사실 저는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제가 거기서 봤던 참혹한 환경들 또 환자들의 상황 같은 것을 저도 봤었기 때문에 굉장히 괴롭습니다.

◇ 정관용> 두 가지 차원을 달리해서 접근해야 될 것 같아요. 하나는 지금 방금 지적하신 대부분. 대부분이라고 표현하면 좀 어폐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정신병원 시설의 열악한 문제. 이걸 어떻게 구조적으로 해결해낼 것이냐는 구조적 문제가 하나 있는 거고. 정신질환자의 관리 차원에서 강제입원의 요건을 좀 대폭 강화시킨 이 법의 개정. 이건 또 따로 논의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김원영> 물론 그럴 필요가 있다고 저도 생각을 하는데 다만 청취자 여러분들께서 알아주십사 하는 것은, 정신병원 입원 요건이 강화된 건 맞는데요. 이번에 지금 진주에서 있었던 그 사건의 환자는 이 요건 강화 때문에 입원을 못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얼마든지 지금도 할 수 있었는데 행정관리하지 않은 것이죠. (정신병원 입원 요건이) 강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어느 정도 산업화된, 민주화된 국가 가운데 정신병원 강제입원율이 여전히도 가장 높은 편에 속하고요.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가장 높고. 법이 바뀌기 전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고요. 우리가 지금 강제입원이 어렵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세계적인 스탠다드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복합적으로 생각을 해야 되겠네요. 당장 법 개정 논의 이전에 보건당국과 경찰당국의 공조시스템이라든지 이런 것부터 하나하나 해나갈 일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 김원영> 여러 현실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너무 쉽게 이렇게 다 가두어야 된다. 쉽게 격리해야 한다. 이건 정말 위험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 정관용> 나도 지하철 타고 싶다. 온몸에 쇠사슬 감고 거리에서 수백 일 투쟁하는 그런 장애인들도 가까이서 많이 보셨죠?

◆ 김원영> 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특히 그런 장애인 인권운동이 아주 활발하게 있었습니다.

◇ 정관용> 본인도 그 운동 현장에 함께했었습니까?

◆ 김원영> 저는 사실 겁이 많아서. 저는 대학교 안에서 학교캠퍼스의 어떤 시설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을 했었고. 그런 장애인 단체분들과 같이 뭔가를 했지만 제가 사실 선로에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 정관용> 그런 투쟁하시는 분들 보면서 본인도 아마 이런 핫한 장애인, 야한 장애인으로 살아야 되겠다 이런 의지가 더 굳어지지 않았을까요?


◆ 김원영> 그럼요. 사실 저는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한국의 명문대를 입학한 장애인 이러면 미담기사가 쏟아지잖아요. 그 속에서 많은 장애를 극복한 것 같아, 잘났어 이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게 전혀 제 삶을 바꾸어주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정말 온몸을 던져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장애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 저도 이제 많이 태도나 어떤 생각을 많이 바꿀 수밖에 없었죠.

◇ 정관용> 그리고 지금 변호사 활동뿐 아니라 다양한 칼럼 또 저술활동으로 대중들한테는 잘 알려져 계신 변호사님인데. 연극도 하셨다고요?

◆ 김원영> 연극을 했다고 하기도 민망하기는 한데 관심이 있어서 좀 기획하거나 제가 한두 번 정도 한 적이 있습니다.

◇ 정관용> 한두 번 정도 직접 연기자로?

◆ 김원영> 출연한 적도 있습니다.

◇ 정관용> 기획을 주로 하셨어요?

◆ 김원영> 주로 사실 그런 것을 했었고요. 제가 출연한 건 한번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럼 연극 무슨 그룹을 가지고 계세요?

◆ 김원영> 만들었었어요. 망했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잘 안 됐는데 하여튼 만들었습니다. 만들어서 2년 정도 저희가 활동을 잘 했습니다, 즐겁게.

◇ 정관용> 극단을 만들어서? 장애인 극단은 아닌 거죠?

◆ 김원영> 장애인 배우들도 있었고 비장애인 배우들도 있었고.

◇ 정관용> 그래요. 핫한 장애인, 야한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이 사회가 지금 제일 먼저 뭐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김원영> 그 질문이 저는 많이 받는 질문인데 사실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사회가 어떻게. 가끔은 약간 무기력해요. 왜냐하면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많은 법률이 생겼는데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만약에 장애 학교 짓는다고 하면 지금도 어마어마하게 주변에서 반대하고.

지난 2017년 9월 5일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에서 무릎 꿇고 특수학교 설립 호소하는 부모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 김원영> 여전히 뭔가 장애인에 대해서 사회 구성원이 갖는 이미지는 굉장히 좀 여전히 약간 좀 간단한 상징 정도로 상기되는 것 같고. 물론 사회가 바뀌는 것은 앞으로도 더 저희가 정교한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어서 더 많은 장애인들이 세상에 나와서 목소리를 내게 되는 것 같고요. 그게 제일 기본일 것 같고. 그걸 넘어서 장애인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각각의 자기 목소리, 자기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많이 듣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영화도 1000만 넘는 영화 너무 많은데 반면에 다양성이 별로 없잖아요. 사실 장애가 있거나 소수자들의 목소리도 굉장히 들어보면 의미 있고 가치 있고 매력적인 스토리가 너무 많은데 사회에 소개되는 것은 너무 적지 않나. 이런 목소리를 많이 들어주시고 많이 공감하고 연대하고 이렇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정관용> 장애인들은 더 소리 내서 외쳐주시고 비장애인들은 더 경청하고. 그래서 구성원들의 생각과 의식이 변화하는 것. 그게 진짜 사회가 달라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 김원영> 그렇습니다.

◇ 정관용> 희망 대신 욕망이라는 책을 들고 오신 김원영 변호사 함께 만났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김원영> 감사합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