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워낙 대국이어서 상대적 관심도가 떨어진 측면도 있지만, 한반도 문제에서 발언권이 많이 약화돼있는 현실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보스톡 시내는 김 위원장이 도착하는 역 주변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도시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회담장인 극동연방대학교가 있는 루스키 섬으로 넘어가야 그나마 북한 인공기와 러시아 국기가 나란히 내걸려 뭔가 다른 느낌을 주는 정도다.
하지만 기자가 찾아간 23일 오후 극동연방대학 캠퍼스는 잔뜩 흐리고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오가는 학생과 교직원 수는 많지 않아 휑한 분위기였다.
정상회담 때문에 휴교를 한다거나 루스키 섬으로 통하는 다리가 차단된다는 등의 소문도 한때 나돌았지만 사실과 달랐다.
여러 국가 정상들이 모였던 동방경제포럼 때도 학사일정은 정상 운영됐고 다리 통제도 없었다고 한다.
정상 경호에 관한 한 미국 못지않은 러시아나 김정은 위원장이 곧 국가인 게 북한임을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다.
도시 전체를 사실상 통제하다시피 했던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김 위원장의 방문 일정 자체를 비밀로 부치던 중국의 경우와도 사뭇 다르다.
다만 회담장과 숙소로 예상되는 시설 주변에 대한 근접 경호는 최고 수준으로 삼엄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극동연방대학은 동방경제포럼을 수차례 개최하며 경호 및 안전문제에서 이미 검증된 곳이다.
대학 설립 때부터 1~5동 건물에는 동마다 VIP용 스위트룸을 여러 개 마련해 놓았다. 경호 측면을 처음부터 감안하고 지은 것이다.
블라디보스톡 시민들은 비교적 차분한 일상을 이어가면서도 회담 소식에 영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택시 운전사나 호텔의 프론트 직원들도 정상회담이 25일 열린다는 것과 김 위원장이 24일 방문한다는 사실을 대부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회담이 임박하면서 현지 언론의 보도가 늘어나고, 회담 시작 후에는 러시아 국영TV가 비중 있게 보도할 것으로 전해져 관심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장기 집권 중인 푸틴 대통령이 11시간 시차가 있는 극동지역을 오랜 만에 방문하는 것, 그리고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으로 어쨌거나 인지도를 높인 김 위원장의 행보도 관심거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과거 블라디보스톡 방문시 묵었던 호텔에 기념표식을 남겨두는 게 이곳 정서인 만큼 아들인 김정은 위원장의 동선도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태평양사령부 방문이나 제빵·제과공장 방문 등의 일정을 배합해 간접적 대외 메시지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가장 큰 관심은 두 정상이 교착 상태의 비핵화 협상 국면과 관련해 얼마만큼 한 목소리를 내느냐 하는 점이다.
러시아는 다자구도를 통한 접근으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기회를 만들려하고 있다. 또 북한과는 단계적·동시적 해법과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같은 입장이다.
하지만 러시아도 유엔 상임이사국의 책무가 있고 미국과의 관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해외파견 북한 노동자 송환 등을 둘러싼 구체적 합의 수위는 속단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