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특진용' 인사자료 넘긴 경찰…최소 수백 건 추정

경찰, 매년 '특진 포상' 후보군 관련 자료 조선일보에 제공
숫자 따져보니…"제공자료 500건 이상" 지적도
후보자 세평도 담겨…연이은 논란에 경찰청 '포상 재검토' 기류도

청룡봉사상 로고.
경찰관을 1계급 특진시키는 '청룡봉사상' 심사과정에서 경찰이 조선일보 측에 특진 후보자들의 세평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오랜 기간 넘겨온 것으로 파악됐다. 조선일보에 심사용으로 제공된 것인데, 이런 자료가 적어도 수백 건에 이른다는 지적이다.

방대한 경찰관들의 정보를 토대로 유력 언론사가 공적 영역, 특히 수사기관에 영향력을 넓혀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청룡봉사상을 둘러싼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 경찰은 최근 청룡봉사상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최소 수백 건, 어떤 경찰정보 넘어갔나?…"사생활 문란" 민감 세평도


조선일보와 경찰이 공동주최해 특진 경찰관 등을 선정하는 청룡봉사상 시상식은 올해 예정대로라면 53회 째를 맞는다. 1967년부터 시작해 노무현 정부 때 두 차례(2007·2008년) 중단됐던 걸 제외하고 매년 경찰관 2명 이상씩 수상했다. 공개된 경찰 수상자는 190여 명에 이른다.

경찰에서 수상자의 3배수를 최종 후보군으로 올리면, 조선일보 편집국장 등 심사위원진이 최종 결정하는 방식이었다는 게 경찰 측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후보군에 올랐던 경찰만 산술적으로 최소 500명이 넘는다.

논란이 이는 지점은 이들의 세평과 감찰 내용까지도 심사용으로 조선일보측에 제공됐던 사실이 일부 확인됐다는 대목이다.

CBS노컷뉴스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인 홍익표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이 조선일보에 제공한 '후보자 공적요지'에는 해당 경찰의 입직 경로, 동료들과의 관계, 상을 탔을 경우 주변 여론, 이성관계 등이 적시돼 있기도 했다.

특히 "근무시간에 봉사활동을 실시하는 등 직원들과 큰 친밀감이 없으며 이성 관계, 금전 관계 등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여론으로 대상자로 부적격함"이라고 평가된 후보자도 있었다고 한다. 제공의 적절성 여부는 물론, 객관성에도 물음표가 붙는 이유다.

조선일보에 민감한 내부정보들이 넘어간 것 아니냐는 질의에 경찰청 관계자는 "그동안 어떤 내용들이 조선일보 측에 제공됐는지는 자체적으로도 파악은 안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내부 인사와 직결된 상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청 내부에서조차 체계적으로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청룡봉사상에서 공안 분야에 주는 충상 (忠賞)의 경우에는 경찰청 내부에서도 누가 수상을 했는지 정확한 명단 집계도 되지 않고 있다.

다만, 올해부터는 외부 지적에 따라 감찰내용 등 부적절하다고 지적을 받은 개인정보는 조선일보 측에 제공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 전문가들 "경찰, 자존심 잃고 하는 행동"…언론 영향력에 종속 우려

과거 '장자연 사건' 관련 수사 경찰을 협박했다는 의혹을 받는 조선일보 간부도 함께 이 상을 심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경찰의 무분별한 정보 제공 정황까지 파악되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날선 비판이 나온다.

경찰이 유력 언론사의 영향력 하에 종속되길 자처한 셈 아니냐는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의 김언경 사무처장은 "경찰이 세평이나 감찰기록을 넘겼다면 당연히 하면 안 되는 일이다. 경찰로서의 자존심을 잃고 하는 행동"이라며 "그 내용이 외부로 유출될 수도 있고, 취재과정에서 악용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림대 송현주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언론사로서는 나중에 후보군에 오른 경찰에게 접근할 때 경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약점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송 교수는 "공적 영역 안에 언론사의 사적 이해관계를 언젠가 실현시킬 수 있는 네트워크가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靑 게시판에 "청룡봉사상 특진 폐지" 청원까지...경찰 '재검토' 기류

전문가들 뿐 아니라 일반 여론도 뜨겁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지난달에 올라간 '청룡봉사상 특진제도를 폐지해 달라'는 글에 대한 청원자가 CBS 연속보도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 22일 오후 8시 현재 동의 인원이 9000명을 넘어섰다.

청원자는 "청룡봉사상 제도는 정부의 합리적인 인사제도를 무시할 뿐 아니라 민주적인 절차와 형식과도 전혀 맞지 않는 특혜"라며 "특진을 꿈꾸는 경찰들에게 조선일보는 갑 중의 갑의 위치에서 경찰을 하부 조직으로 악용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비난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경찰청 내에서도 변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경찰청은 조선일보와 함께 오는 6월 예정된 청룡봉사상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했다가 최근 "내부적으로 논의중"이라며 신중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여러차례 개선을 촉구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관계자는 "청룡봉사상에 대한 국민 여론을 충분히 인지했으며, 내부적으로 제도 개선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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