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품고 1980년 5월 15일 10만 명의 학생들이 서울역 광장에 모였다. 계엄 해제와 신군부 퇴진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의 현장에 유시민 작가도 있었다. 대학 시절을 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보낸 유시민은 거듭 "무서웠다"고 말했다. 두려움 속에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간 것은 나와 내 삶의 '존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작가 유시민'이 탄생했다.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으로 활동하던 유시민은 1980년 5월 17일 학생회관을 지키다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간다. 유시민은 거기서 '적자생존', 다시 말해 '적는 자가 살아 남는다'는 말처럼 맞지 않기 위해 진술서를 써 내려 갔다고 말하면서 "그때 내가 글을 잘 쓴다는 걸 알았다"라고 웃으며 말한다. 생존을 위한 글이었다.
고문, 입대, 징역살이에도, 스스로도 "무섭다"라고 표현한 시간을 겪으면서, 교도소 독방에서 책을 읽고 항소이유서를 쓰며 작가 유시민이 탄생했다. "상상력이라는 것도 정말 치열해야 나오는 것"이라는 김중혁 작가의 말처럼 생존과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는 치열함 속에서 글을 써 온 유시민이기에 그의 글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못 이길 거 같은데, 못 이겨, 그러고 그냥 가면 너무 비참한 거야. 저녁에 있으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암담한 거예요.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때론 사람들은 자기를 지키려고 해요. 세상을 못 바꾼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지키기 위해서 한다고요. 나를 지키려고요. 나 스스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비천하다, 비겁하다는 느낌을 안 가지고 살고 싶은 거지. 내 책임이 아니에요. 유신 체제 이런 거. 나는 그냥 이런 세상이 왔을 뿐인데.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근데 그냥 가면, 그런 감정을 계속 느낄 거 같아. 자기 비하의 감정을. 그렇게 느끼면 그 인생이 뭐지? 어릴 땐데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생을 하기는 했는데, 나 자신의 삶에 대해 비참하다는 감정은 안 느끼고 살았어. 그거는 되게 괜찮았어."
지금의 실패는 훗날 뒤돌아서서 봤을 때 내 인생의 한 과정일 것이고, 지금의 실패는 먼 미래에서 봤을 때는 미래의 현재에 이르기 위한 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은 실패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실패를 계속하지 않는 한 전체로 봤을 때 과정은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계속해서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시민은 이러한 모든 개인의 행동은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일지 모르며, 그렇기에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각자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현재의 실패가 무서운 이들에게, 공포의 시대를 살아온 유시민 작가의 말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래서 한 번 더 곱씹고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시작하면 실패해도 괜찮아요. 그 일이. 왜냐하면 내가 그 일을 시작한 이유가 내가 생각하기에 옳게 살려고 한 거기 때문에, 그 일이 성취를 거두어도 좋고, 거두지 않아도 좀 서운하긴 하지만 난 괜찮아, 난 괜찮았어, 이렇게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