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계는 손 대표에 대한 사퇴요구를 본격화하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유승민계(바른정당계)의 사퇴요구와 함께 '창당주주' 모두 손 대표에게 등을 돌린 셈이다. 창당정신으로 돌아가 '안철수-유승민'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유일하게 손 대표가 기댈 곳은 손 대표를 옹호하며 신당창당 등 '제3지대론'을 주창하는 호남계 의원들로 파악된다. 이에 호응하는 민주평화당의 '러브콜'이 강하게 이어지면서, 손학규 체제의 바른미래당은 한치 앞도 모르는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 시작부터 '빈손 의총' 조짐…홍영표 발언에 '폭발'
'빈손 의총'은 시작부터 어느정도 예견됐다. 의총이 시작된 뒤 지상욱 의원 등 바른정당계는 '호남 신당'에 대한 손 대표의 움직임을 '해당행위'라며 항의했다. 손 대표가 민주평화당 인사들을 접촉하고, 국민의당 출신 박주선 의원이 "제3지대론에 손 대표가 공감하고 있다"고 한 발언을 지적한 것이다.
손 대표는 "여러 정계 개편설이 있지만, 거대 양당체제 극복이 중요하다"며 "지금은 때가 아니다. 단합하자"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계 역시 이를 옹호하면서 고질적인 '계파 갈등'이 불거지며 대화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이 상황에서 양측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수정안' 표결을 두고 다시 맞부딪혔다. 수정안은 공수처에 기소권을 주되, 판‧검사 등 고위 공직자에게만 적용하고 나머지 기소권은 검찰에 주는 안이다. 김 원내대표는 이같은 안이 민주당과 잠정합의가 됐다고 주장하며, 수정안이 의총에서 추인되면 패스트트랙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손 대표와 김 원내대표 측은 수정안을 과반 표결로 밀어붙이려 했으나, 바른정당계에선 3분의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며 맞섰다.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의 '폭탄 발언'이 떨어졌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은 기소권과 수사권이 모두 있는 공수처에 대한 입장에서 바뀌지 않았다"고 전면 부인했다.
홍 원내대표의 발언이 의총장으로 흘러들어 가자, 바른정당계의 항의는 더욱 거세졌다. 유승민 전 대표는 "바보같이 이런 의총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협상도 제대로 안된 마당에 바른미래당 내 논의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김 원내대표는 끝까지 잠정 합의가 됐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민주당과 합의안을 만들어오겠다"며 한발 물러서며 의총은 마무리됐다.
결국 지도부 책임론, 패스트트랙, 계파 갈등 등 어느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의총이 됐다. 가장 타격을 입은 쪽은 손학규 대표다. 4·3 국회의원 보선 참패 이후 사퇴론에 휩싸인 손 대표는 '패스트트랙 관철'을 지렛대로 리더십을 회복하고 자신의 숙원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얻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물거품이 되며 더욱 위기에 몰린 형국이다.
김 원내대표가 후일을 도모하며 내세운 민주당과의 '합의안'도 비판적인 시각이 상당하다. 바른미래당 한 의원은 "홍 원내대표가 저렇게 나오는 상황에서 합의안을 작성해주겠느냐"며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의지가 없다는게 너무나 잘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합의안을 가져와 의총을 다시 연다 하더라도, 여전히 패스트트랙에 대한 찬반 의견과 '표결'에 대한 갈등이 깔려 있는 바른미래당으로서는 어느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다는 회의론이 가득한 상태다.
이같은 결과는 사퇴 요구를 벗어나려는 손 대표와 패스트트랙에 '직'을 건 김 원내대표의 '무리수'로 빚어진 참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바른정당계 한 의원은 "민주당이 원하지도 않는 패스트트랙을 이처럼 밀어붙인건 자리를 지키려는 두 사람의 욕심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안철수계 孫 사퇴요구 본격화…'제3지대' 손짓
안철수계 바른미래당 전현직 지역위원장 90여명은 이날 서울 마포구 한 사무실에서 오후 4시부터 3시간 가량 회동을 가졌다. 김철근 전 대변인(서울 구로구갑 지역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대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고 공감대를 이뤘고, 손 대표를 비롯해 지도부가 사퇴해야 한다는 중지가 모아졌다"라고 말했다.
지난 9일 1차 회동을 갖고 손 대표 거취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안철수계는 이날 한층 강도높은 발언들을 내놓고 사퇴를 압박했다. 이태규 의원을 통해 사퇴 의견을 전달한 뒤, 손 대표가 '버티기'로 일관하면 연판장이나 사퇴성명 등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놨다.
안철수계는 손 대표를 영입하고 당 대표로 지원했던 터라 손 대표로서는 방어막이 허물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창당 주주인 '안철수-유승민' 복귀 목소리도 터져나오며 손 대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현재로선 손 대표가 기댈 곳은 호남 신당창당 등 '제3지대론'을 주장하는 호남계로 분석된다. 이들은 손 대표를 옹호하며 민주평화당과의 당대당 합당 등으로 '빅텐트'를 꾸려 내년 총선을 치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평당 박지원 의원은 손 대표를 향해 "험한 꼴 보지 말고 새집 짓자"며 연이어 러브콜을 보내는 상황이다. 패스트트랙 관철 불발과 안철수-유승민계의 사퇴 압박에 몰린 손 대표의 선택지가 점점 좁혀들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