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고마웠고 정현아 미안해" 이지영의 진심

'대구에서도 인사 드릴게요' 키움 포수 이지영이 17일 친정팀이었던 삼성과 이적 후 첫 대결에서 승리를 이끈 뒤 인터뷰를 마치고 선전을다짐하고 있다.(포항=노컷뉴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따뜻한 친정팀과 팬들의 격려가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그래도 맹활약을 펼쳐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리면서 비로소 작별을 고했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키움 포수 이지영(33) 얘기다. 11년 동안 몸담았던 삼성을 떠나 첫 맞대결을 펼친 심경이 간단하지 않았지만 멋지게 새 팀에서 다시 일어선 자신의 모습을 보였다.

이지영은 17일 경북 포항구장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 리그 삼성과 원정에 8번 타자 포수로 선발 출전했다. 타석에선 동점타를 포함해 4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으로 맹타를 휘둘렀고, 마스크를 쓰고서는 선발 김동준의 생애 최장인 7이닝 3실점을 합작하며 5 대 3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이지영은 2회 첫 타석에 들어서면서 헬멧을 벗어 팬들에게 인사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뛰었던 삼성 팬들에 대한 예의였다. 팬들은 박수로 이지영을 맞았고, 새 팀에서 다시 출발하는 삼성의 전 주전 포수를 격려했다.


이에 앞서 이지영이 1회말 수비에서 쓰러졌을 때도 팬들은 이름을 연호하며 응원했다. 상대 다린 러프의 홈 쇄도를 태그한 이지영은 이후 훌쩍 뛰어 자신을 넘으려 한 러프의 몸에 목이 부딪혔다. 한참을 쓰러져 있던 이지영은 팬들의 성원 속에 일어나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이런 팬들의 환호가 힘이 됐던 걸까. 이지영은 2회 삼성 선발 백정현으로부터 우전 동점 적시타를 날렸고, 4회도 안타를 날려 2사 만루 기회를 이었다. 키움은 김혜성의 밀어내기 볼넷과 이정후의 2타점 적시타로 승기를 잡았다. 김동준은 이지영의 리드 속에 생애 첫 퀄리티스타트 이상 투구를 펼치며 통산 두 번째 선발승을 거뒀다.

경기 후 이지영의 표정은 복잡했다. 자신의 맹활약으로 이겼지만 예전 동료들을 상대한 것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지영은 "아직도 삼성과 경기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면서 "경기하면서 선수들과 얘기도 많이 하고 마치 청백전 느낌이 들더라"고 소감을 밝혔다.

팬들의 응원에 대한 감정도 간단치 않았다. 이지영은 "11년 동안 삼성에서 뛴 데 대해 팬들이 아직까지 많이 생각하고 응원해줘서 기쁘면서 씁쓸했다"면서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이어 "아마 대구에서 가서도 팬들에게 헬멧을 벗고 인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이쿠' 키움 이지영이 17일 삼성과 원정에서 1회 홈으로 쇄도하던 다린 러프를 태그아웃시킨 뒤 충돌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포항=삼성)
하지만 프로는 승부의 세계에서 냉정할 수밖에 없다. 이지영은 "상대가 삼성이지만 우린 이겨야 되고 그렇기 때문에 집중했고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돌아봤다.

2008년 육성 선수로 삼성에 입단한 이지영은 2013년부터 주전으로 도약했고, 2011년부터 이어진 삼성의 정규리그 5연패, 한국시리즈(KS) 4연패에 기여했다. 그러다 지난해 롯데 국가대표 출신 포수 강민호가 4년 80억 원에 이적해오면서 입지가 줄었다. 백업으로 뛰던 이지영은 SK, 키움과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팀을 옮겼다.

육성 선수에서 주전, 그리고 백업으로, 여기에 이적까지 부침이 있던 삼성에서 11년 세월이었다. 이지영은 "더 잘 하는 모습을 보여야 나나 삼성이나 서로 좋은 것"이라면서 "그래서 오늘 더 열심히 하려고 했고, 2안타는 어쩌면 안부 인사의 의미도 있다"고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서로를 잘 안다는 건 부담이자 기회일 수 있었다. 경기 전 김한수 삼성 감독은 "이지영의 볼 배합이 쉽다"면서 이지영이 인사하러 오자 "네가 안 나오니까 우리가 지잖아"라고 농담을 던졌다. 이지영도 "열심히 하겠습니다"고 응수했다. 경기 후 이지영은 "감독님이 장난 식으로 했는데 나도 (배합을) 바꿔야죠"라면서 "나도 삼성 타자들을 알고 저쪽도 나를 아는 만큼 바뀌었다 생각 들게끔 하려고 했는데 잘 맞았다"고 미소를 지었다.

동료들, 특히 백정현에 대한 미안함도 잊지 않았다. 이지영은 "정현이가 경기 전 나한테는 안타를 치지 말아달라고 하더라"면서 "그런데 2안타를 쳤으니 미안하다고 해야죠"라고 멋쩍게 웃었다. 이어 "삼성 선수들이 많이 보여줬으니 이제 그만 치라고 하더라"고도 전했다.

이젠 삼성의 우승 포수가 아니라 키움의 우승을 이뤄줄 포수다. 이지영은 "올 시즌 뒤 자유계약선수가 되지만 일단 그 생각은 접고 팀 우승하는 데 플러스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키움에 젊은 투수들이 많은데 그래도 내가 삼성에서 우승 경험이 있어서 큰 경기에서 어떻게 긴장을 풀고 하는 것들을 얘기해준다"면서 "투수들이 자신감 있게 편하게 던질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희비가 교차했던 이지영의 첫 친정팀과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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