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근 "노무현10주기…참 멋진 사나이 아니었습니까"

문익환 방북, 냉전 이후 미래 타진 위해
72세 父 구속한 김기춘, 기억 상기 시켜
사법개혁? 아직 멀어, 양승태 키즈 보라
노무현 캐릭터 살릴 대본이 있긴 할까?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문성근 (배우)

참 요사이 여러 가지 기념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3.1 운동 100주년. 임시 정부 수립도 100년 됐고요. 세월호 5주기도 이제 막 보냈죠. 기억하고 추모하고 기념해야 될 일들이 많은 2019년인데 지난 3월 25일은요. 문익환 목사의 방북 30주년이었다는 거. 여러분, 알고 계세요? 그리고 또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10주기도 곧 다가옵니다. 이 두 가지 일들과 관련이 돼 있는 분을 오늘 뉴스쇼 스튜디오에 초대를 했습니다. 어렵게 모셨습니다. 배우 문성근 씨, 어서 오세요.

◆ 문성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처음인 것 같아요, 이 스튜디오는.

◇ 김현정> 그렇죠. 어떻게 지내셨어요?

◆ 문성근> 요즘 뭐 드라마 2편, 영화 1편 열심히 촬영하고 삽니다.

◇ 김현정> 아니, 사실은 저는 오늘 처음 뵙잖아요. 악역으로 이 사이 많이 봬서 저는 인상이 좀 차가우실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부드러운 남자세요. 지금 스튜디오에 딱 들어오시는데. 여러분, 지금 유튜브로도 다들 보고 계시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악역을 많이 하세요?

◆ 문성근> 감독들은 아무래도 관객의 의표를 찌르고 싶어하죠. 그러니까 좀 예상 못 한 배우가 어떤 역을 맡는다든지 그런 걸 좋아하는데 처음에 그걸 받아들이다 보니까 이제 누적되면서 계속해서.

◇ 김현정> 잘한다 그러니까요?

◆ 문성근> 아니, 그러니까 대개 악역을 거부하거든요. 대중적 이미지가 나빠지고. 특히 광고를 못 하게 되고 그래서.

◇ 김현정> 맞아요, 맞아요.

◆ 문성근> 그런데 제가 거절하지 않으니까 ‘저 사람 거절하지 않는구나?’ 하면서 더 몰리게 됐고.

◇ 김현정> 왜 거절하지 않으십니까? 왜 꺼리지 않으시고요?

◆ 문성근> 아니, ‘뭐 배우는 어떤 역이든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거지 좋은 역, 나쁜 역 가리는 게 내가 무슨 광고 모델이냐? 배우지.’ 이런 생각도 있었고요. 좀 하다 보니까 참여정부 초기에 조선일보를 보면서 ‘아, 이게 악이구나’ 이걸 느꼈었거든요. 그러니까 악역이 훨씬 쉬워지더라고요. 좀 ‘이 역을 어떻게 하지?’ 그럴 때 조선일보만 생각하면 해답이 나오고 이래서.

◇ 김현정> 지금 조선일보 기자도 많이 들으세요, 뉴스쇼.

◆ 문성근> 괜찮습니다. 본인들도 아셔야죠.

◇ 김현정> 아니, 사실은 영화 얘기가 나왔으니 거기부터 시작을 하죠. 영화 ‘1987’ 저도 봤습니다마는 거기서 고문하는 안기부장 역할 맡으셨잖아요. 그때 뭐라고들 했냐면 ‘아니,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이 다른 역도 아니고 고문하는 안기부장 역을 맡았네? 본인이 어떻게 오케이 했지?’ 이런 얘기들 많이 했거든요.

◆ 문성근> 그런데 그게 박근혜 정권 시절에 기획이 시작된 영화였죠. 그러니까 그런 쉽지 않은 기획들은 모두 다 참여해서 돕고 응원하고 이런 분위기가 영화계에는 좀 있죠. 그러니까 여러 배우들이 많이 참여했잖아요. 짧은 역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배우들이 많이 나오고.

◇ 김현정> 카메오들도 많이 나왔어요.

◆ 문성근> 그런 게 다 그런 뜻이죠. 그게 영화 쪽에 이렇게 같이 돕는 분위기랄까? 굉장히 좋은 전통 같은 게 있죠.

◇ 김현정> 문성근 씨 만나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금 영화가 꼭 만들어져야 한다 해서 내가 참여했다. 지금 그러셨는데 사실 오늘 모신 이유도 관련이 있습니다. 고 문익환 목사께서 일본을 거쳐서 북한 방문했던 것이 딱 30년 전이에요. 그러니까 1989년. 그 무렵이 기억나세요?

◆ 문성근> 그럼요.

◇ 김현정> 몇 살이셨어요, 그때?

◆ 문성근> 89년. 서른여섯이니까요, 한창.

◇ 김현정> 서른여섯의 아들 눈에는 어떻게 기억이 남아있습니까?

◆ 문성근> 굉장히 걱정을 했죠, 충격적이고. 가족하고 의논하셨으니까요. 같이 가자.. 그런데 여권이 안 돼서 못 가고 이런. 그래서 유원호 선생님하고 같이 가시게 된 거니까 그 과정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고요.

◇ 김현정> ‘같이 가자’는 누구와 같이 가자는 거였나요?

◆ 문성근> 장남 문호근과 저에게 이렇게 차례로 얘기하셨었어요.

◇ 김현정> 문성근 선생님께도.

◆ 문성근> 그런데 그때 여권 문제로 잘 안 됐었고. 사실은 그 당시에 왜 가려고 하시는지에 대해서 사실 잘 몰랐고요, 제가 공부가 부족했던 거죠. 그러니까 방북하고 계신 동안 안기부에 연행이 됐는데 거기 갔다가 나오면서 급히 막 공부를 해 봤어요. 왜 가신 건가?

◇ 김현정> 왜 가신 건가?

◆ 문성근> 그런데 사실은 이번에 박근혜 정부 시절에 위안부 합의하는 걸 보면서 사실 굉장히 놀라서 다시 자료를 뒤져봤죠. 그러니까 그때는 이동수 군이나 학생들의 분신 투신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걸 막겠다는 말을 늘 하셨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그건 시인의 표현이었고 사회과학적으로는 소련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그러니까 소련이 흔들리고 있었지 않습니까, 89년에? 그러니까 우리에게 분단을 강제한 동서 냉전이 곧 끝나간다. 끝나면 우리는 분단돼 있을 필요 없다. 그러면 미래를 어떻게 열어갈 것이냐. 그래서 김 주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타진하겠다라는 생각으로 가신 거죠.

그런데 당신도 그 얘기를 하셨는데 그렇게 엄청난 합의를 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셨대요. 그러니까 그쪽은 외교와 국방을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고려연방제를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 교류, 경제 교류 그런 거 필요 없고 정치 군사 회담부터 하자. 이렇게 고집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그렇게 하면 부지하세월이니까 그러지 말고 국가 연합 단계를 넣고 문화, 경제 교류 협력을 넣자. 그래서 그걸 합의를 받아내거든요. 그러니까 그 합의가 11년 후에 6.15 선언. 축약돼서 6.15 선언이고요. 경제 교류를 확대한 건 10.4 선언이거든요. 그러니까 그때 어떻게 보자면 세계사적 흐름이라고 그럴까. 그 흐름의 맥을 짚고 방북하셨던 것이죠.

◇ 김현정>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보면 말입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고 38선 넘어서 만나기도 하고 심지어 미국 대통령하고 만나기도 하는 이런 상황 보면서 우리가 환호하기도 하고 통일이 가까이 온 것도 느끼고 하는데. 그 당시만 해도 이게 상상도 못 할 상황이고. 특히 남한 사람이 허가도 없이 북한에 가서 의중을 막 물어봐? 통일 얘기를 해? 용납이 안 되는 분위기였잖아요. 너무 앞서가신 거잖아요, 아버님이? 그렇죠? 그러고 나서 엄청난 고초를 당하는 걸 가족들은 다 보신 거 아닙니까? 솔직히 가족으로서는 좀 말리고 싶기도 하셨을 것 같고.

◆ 문성근> 방북은 말릴 생각을 못 했어요. 처음에 76년에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이 되시는데 그때 70세 이상 된 분들은 다 불구속을 했었거든요. 윤보선, 정일영, 이태영 등등. 그래서 70이 넘기만을 기다렸죠, 사실은. 말릴 수가 없으니까.

◇ 김현정> 말릴 수가 없으니까.

◆ 문성근> 그러니까 쉰아홉에 처음 감방에 가시면서 계속 반복해서 네 번을 가고 계셨으니까. 그런데 70 넘으면 될 줄 알았는데 방북이 만 71세였어요.

◇ 김현정> 그렇게 되시는군요.

◆ 문성근> 72세 이때 돌아오셨는데 그냥 구속하더라고요. 그러고 형 집행 정지로 풀렸다가 그거 취소하고 재수감해서 여섯 번째 들어가는데 그때가 칠십이 넘은 나이였죠. 그래서 ‘안 되는 거구나. 칠십 넘어도 안 되는 거구나.’ 그때 검찰 다섯 번째 검찰총장하고 여섯 번째 때 법무부 장관을 한 게 김기춘입니다.

◇ 김현정> 그때군요.

◆ 문성근> 그래서 그때 한번 김기춘 씨가 ‘나 노령이니까 풀어주라’라는 얘기를 분명히 할 테니까 기억을 되살려드리겠다라고 제가 알려준 적이 있죠, SNS에서.

◇ 김현정> 그렇게 되는 거군요. 나중에 노무현 대통령 친서를 가지고 북한에 가셨잖아요. 그때는 아주 감회가 남다르셨을 거 같아요.

◆ 문성근> 이렇게 역사가 가는구나. 역사가 흐르는구나. 역사가 되살아나는구나. 이런 느낌을 갖고 한 일이고요. 그런데 그 내용에 대해서는 대통령님의 명령을 받고 일종의 통치 행위를 한 거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 안 하는 게 예의인 거 같고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아버님이 가족들한테 미안하다는 얘기를 평소 혹시 안 하셨어요? 워낙 신념을 갖고...

◆ 문성근> 조금 그런 표현을 하신 적은 있는데 늘 돌려서 얘기하죠. 장준하 선생은 일찍 돌아가셨잖아요. 그리고 3남 1녀인데 1녀만 김옥길 총장이 이대 4년 장학금으로 졸업을 시켜줬고 3남은 다 학교를 못 갔습니다. 그러고 돌아가셨을 때 전세금 얼마 남아 있었고요. 그러니까 ‘너희들은 내가 다 보내지 않았냐. 장 선생을 생각하면.’

◇ 김현정> 할 만큼 했다?

◆ 문성근> 그렇게 얘기를 하셨죠.

◇ 김현정> 오히려 가족들한테도? 당당하셨던 거네요.

◆ 문성근> 그럼요. 당연히, 당연히. 저희도 응원했고요.

◇ 김현정> 그래요. 배우하면서 불이익은 안 당하셨어요? 지금은 아버님 덕분에 뉴스쇼도 나오셨습니다만 고초, 고생도 많이 하셨죠? 불이익도 좀 당하시고.

◆ 문성근> 연극 시작한 게 85년이고 드라마 방송 쪽이나 이게 88년, 89년 이때부터 언급이 되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불이익을 받았죠.

◇ 김현정> 그렇죠.

◆ 문성근> 노태우 정부 시절에. 아예 언론에 무슨 드라마 출연한다라고 보도가 됐는데 취소된다든지. 그런 식으로... 불이익이 없었던 거 국민의 정부가 처음이었고요. 참여정부 때는 저 자신이 스스로 역차별을 했다고 할까요. 자꾸 나타나면 시비가 걸리니까 그냥 산만 다니고 살았고. 지금은 상당히 마음이 편합니다.

‘자백’ 문성근 (사진제공=tvN)
◇ 김현정> 오히려. 문성근 씨 지금 만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때 나는 역차별을 스스로 했다. 스스로 움츠러들었다’라고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노무현 대통령 얘기로 넘어가보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찬조 연설을 했는데 그 찬조 연설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 것은 문성근 씨의 연설이 유일해요. 그 장면 보신 분들은 금방 기억나실 텐데 잠깐 좀 떠올려 보는 건... 잠깐만 듣고 올까요, 아주 짧게?

◆ 문성근> 아유, 그걸 뭘 들어요.

◇ 김현정> 잠깐 그러면 우리 문성근 씨 지지 연설과 노무현 대통령 목소리까지 잠깐 듣고 올게요.

◆ 문성근> 노무현 후보 당당하게 얘기합니다. 외롭지 않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 흐르는 피눈물을 왜 보지 못하겠습니까? 비단길 다 마다하고 국민의 위해서 가시밭길을 걸어온 그 사람입니다.

◆ 노무현> 영남과 호남 모두에서 지지받을 수 있고 그래서 광주에서 콩이면 부산에도 콩이고 대구에서도 콩인 새로운 정치를 이 노무현이 열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했노? 위의 사람들은 뭐 했어? 작전 통제도 한 개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요. 자기들이 직무 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 김현정> 두 분 다 굉장히 박력 있는 부분을 우리 PD들이 뽑아왔네요. 어떠세요? 다시 이렇게 쭉 들으시니까.

◆ 문성근> 노 대통령이 남긴 유서를 보면 열세 문장이잖아요. 그런데 그중에서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느껴져요. 어떻게 원망 안 하겠어요. 그 압박한 이명박 정권이나 조선일보나 검찰이나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있죠. 그렇지만 ‘운명이다’라는 말은 그건 역사의 산물이다, 그들은. 그런데 결과물에 화를 내봐야 원인이 바뀌지를 않지 않느냐. 그러니까 근본의 구조 모순을 해결해야 된다라는 뜻으로 이해를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모순 구조 속에서 내가 그 시기에 대통령을 했을 뿐이고 나로서는 이걸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이다. 그러면 우리 역사의 질곡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된다 이런 뜻으로 이해를 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아직 멀었죠. 정권 하나 바뀐 거고. 지금 사법부 하는 짓거리 좀 보십시오. 양승태 키즈들, 사법 농단 세력. 아직도 재판을 하고 있는 이런 현실인데 검찰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했다는 것이 다행스럽고요. 우리 국민의 위대함을 다시 느끼고 그러죠.

◇ 김현정> 지금 이 연설 짧게 나가는 동안에 눈물이 조금, 눈가가 촉촉해지신 게 제가 보이네요.

◆ 문성근> 참 멋진 사나이 아니었습니까? 그 연설이요. 저분 연설을 보면 원고를 가지면 저렇게 못 합니다.

◇ 김현정> 원고가 없어요, 아예?

◆ 문성근> 원고 없어요. 원고를 읽으면 저 속도가 안 나와요. 메모만 가지고, 메모 몇 줄만 가지고 그냥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 흐름에 올라타는 거죠. ‘광주에서 콩이면 대구에서도 콩이다.’ 저게 어느 대본에 그렇게 쓰겠어요, 연설문을. 그러니까 그 서민 풍모의 격정. 배우로서 저분을 느껴보면, 사상방 체질 있잖아요. 소양인, 소음인, 태음인, 태양인. 그런데 우리 경우에는 태양인이 거의 없어요. 나머지가 3분의 1쯤 되고 그건 여러 가지 얘기가 가능한데 어떻게 보면 학살이 많았기 때문에 태양인 체질들이 많이 없어졌다.

◇ 김현정> 우리 한국인들. 맞아요. 태양인 별로 없다 해요.

◆ 문성근> 학살 때문이 아닌가. 학살이 끝났기 때문에 태양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런 느낌도 들고 그러는데. 저분은 태양인 반에 소음인 반이에요. 굉장히 낯을 가려요.

◇ 김현정> 특이하네요.

◆ 문성근> 엄청나게 낯을 가리고 누구에게 부탁도 못 해요. 그냥 자꾸 두런두런 바깥으로 돌고 이러다가도 저렇게 대중 앞에서 뭔가 자기 의견을 얘기하실 때 이렇게 흐름에 타오르면 그건 태양인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뿜어내죠. 그러니까 정말 매력이... 인간적으로는 연기자로서는 흉내낼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분입니다.

◇ 김현정> 그분이 만약 대통령이 아닌, 정치인이 아닌, 변호사가 아닌 배우를 했었으면 대성할 배우십니까?

◆ 문성근> 저분의 캐릭터를 충분히 살릴 만한 대본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 김현정> 그래요? 그 정도예요?


◆ 문성근> 그런데 그때 국민의 명령 때 같이했던 분 중에요. 노무현 변호사가 부산에 공해문제연구소를 처음에 하잖아요. 그때 같이 간사로 일했던 여학생인데 학생 사건의 변호를 하는데 검사가 속였나 봐요. ‘잘못했다 각서 쓰면 집행 유예를 해 줄게.’ 그래서 썼대요. 그래서 얘가 울면서 노무현 변호사한테 얘기한 거예요. ‘내가 정말 못 견뎌서 썼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너 그거 당연하지 왜 그런 걸 가지고 나한테 사과하냐.’ 이렇게 얘기했는데 법정에서 검사가 구형하면서 ‘이렇게 간교하게 이걸 썼다. 이거 나가서 또 하려고 이런 거 썼다, 이놈은.’ 그러면서 더 구형을 했다는 거예요.

◇ 김현정> 세상에.

◆ 문성근> 검사가.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이 양반이 막 날뛰는데, 화가 나서.

◇ 김현정> 노무현 변호사가.

◆ 문성근> 노변이 막 ‘너희들 어른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막 야단치는데 겁이 나서.

◇ 김현정> 검사가?

◆ 문성근> 이게 말이... ‘저 양반도 구속될 텐데.’ 법정에서 그렇게 변호사가 흥분하는 걸 처음 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사실 우리 교육 제도 안에서는 참 보기 힘든 사람이죠. 다듬어서 통조림을 만드는데 그러지 않은. 그 원석을 그냥 유지한.

◇ 김현정> 그냥 한마디로 표현하면 멋진 사나이.

◆ 문성근> 멋진 사나이죠.

◇ 김현정> 그런데 너무나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버린 우리가 보내야만 했던 그 서거 10주기가 이제 다음 달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하시면서, 할 이야기 아직 다 한 것도 아니죠? 문성근 씨를 보내드릴 시간이 다 돼 가는데 사실은 하실 일이 많아요. 배우로서도 많지만 제가 알기로는 판문점 선언 1주기 맞아서 뭔가 또 계획하고 계시는 것도 있고 준비하고 계신 게 많다고 들었습니다.

◆ 문성근> 사실 89년에 갔을 때는 소련이 무너질 때였고요. 그런데 2010년, 11년 이때부터 시진핑 체제가 들어오면서 G2 시대가 되잖아요. 사실은 89년부터 2010년이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호기였죠.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사를 갖기 전이니까. 그런데 그때 우리가 이걸 해결해내지 못했는데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훨씬 어려운 상황에서 지금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죠. 어떻게 보자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은 다 하고 있는 거 같고요. 그런데 이게 시민들이 멍청히 구경만 한다거나 앉아서 마음만 졸이면 뭐하겠습니까?

◇ 김현정> 잘했니 못했니 훈수만 둘 게 아니라.

◆ 문성근> 우리도 판문점 1주년을 맞아서 4월 27일 14시 27분에 고성에서부터 강화까지 휴전선 DMZ 500km을 인간띠로 잇자. 촛불 때 우리 200만까지 나왔으니까 100만이면 되거든요. 그래서 전 세계 여론에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좀 전달하자. 우리 같이 살게 내버려둬라. 방해 좀 하지 마라, 이것들아.

◇ 김현정> 세계에 보여주는 퍼포먼스입니까?

◆ 문성근> 세계에 보여주는. 그걸 좀 진행되고 있고요. DMZ 피스체인닷컴입니다(www.dmzpeacechain.com).

◇ 김현정> 여기까지 쭉 쓰셔야 돼요, 붙여서.

◆ 문성근> 거기 들어가시면 참여하시는 방법이 안내돼 있습니다. 4월 27일 한꺼번에 전 세계를 향해서 고함 좀 쳤으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멋있습니다. 트럼프도 좀 들어라. 강경파들도 들어라. 같이 살고 싶다. 통일하고 싶다. 이 의지를 잇는 그 행사 잘 치르시기를 바라고요.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 문성근> 반가웠습니다.

◇ 김현정> 배우 문성근 씨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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