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안팎에선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판문점 선언 1주년을 즈음해 '원 포인트' 형식의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북한이 비록 미국의 일괄타결식 비핵화 요구에 '버티기 전략'으로 맞서고 있지만 내심 대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못 이기는 척 제안에 응할 것이란 관측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1일 한미정상회담 직후 4차 남북정상회담을 전격 제안하며 협상의 모멘텀을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행보를 보면 적어도 당분간은 남측과 대화의 문을 닫아놓으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일단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선언 1주년 직전에 북러 정상회담을 위해 러시아 연해주 지역을 방문할 가능성이 유력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는 26~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상포럼에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회담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다.
물론 김 위원장이 4.27 얼마 후에 문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러회담 직후 또 다른 회담을 갖는 것은 부담이 따른다.
북한이 최근 남북관계에 대한 사뭇 달라진 태도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북미관계와 달리 남북대화에는 비교적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경시하는 듯한 모습까지 엿보인다.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개소한 남북연락사무소는 매주 1회 소장 회의 개최를 원칙으로 했지만 북측은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특히 올 들어서 북측 소장(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한 것은 한 차례(1월 25일) 뿐이었고 나머지는 소장대리나 임시소장대리가 '대행'할 정도로 부실화됐다.
이렇다보니 남북 간 교류협력사업도 급격히 동력을 잃고 있다.
여기에는 남북관계를 한미공조와 연동시킨 미국 측의 '속도조절' 탓이 크지만, 북측의 미온적 자세에도 책임이 있다.
예컨대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 대북 지원 사업도 우리 정부가 우여곡절 끝에 미국과는 조율에 성공했지만 정작 북한이 가타부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올해 3.1절 100주년을 맞아 남북 간에 추진됐던 남북 공동 기념식이 북측의 뚜렷한 설명 없이 무산된 것은 그 서막 격이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최근 북측 인사들의 전언을 소개하며 "북한은 지금 경황이 없다고 하더라. 남북행사도 줄줄이 취소될 것 같더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기류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대남 입장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는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시정연설에서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의 '초심'을 강조한 것이 단례다.
김 위원장은 남측에 대해 '오지랖' 등 무례한 언사를 동원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남북합의의 성실한 이행 책임에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남북관계의 지속적이고 공고한 화해협력관계와 평화롭고 공동번영하는 새로운 민족사를 써내려가는 것이 "확고부동한 결심"이라고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