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임미현 앵커
■ 대담 : 홍제표 기자
◇ 홍제표 >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진급한 군 고위 장성들에게 '절치부심'의 결기를 당부하며 병자호란을 언급했습니다. 인조 임금이 청 황제에게 치욕적인 항복의식을 올린 뒤에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민족 최악의 암흑사였죠. 오늘은 당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시작할까 합니다. 어떤 주제인지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백성의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배불리 먹인 말들이 다시 주려서 굶어 죽고, 굶어 죽은 말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 죽는 순환의 고리가 김류의 마음에 떠올랐다"
◆ 임미현 > 참혹했던 당시 상황은 잘 전달이 되는데, 주제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 홍제표 >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저는 당시 남한산성과 북한의 오늘날 모습이 겹쳐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북한이 하노이 회담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버티기' 작전에 들어간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 힘이 있을지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북한은 제재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미국을 이기는 길이라면서 다시금 '자력갱생' 기치를 높이 들었습니다. 조선중앙방송의 보도 내용을 들어보겠습니다.
"오늘의 긴장된 정세에 대처하여 간부들이 혁명과 건설에 대한 주인다운 태도를 가지고 고도의 책임성과 창발성,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우리 당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관철시켜나갈 데에 대하여 강조하셨다."
◆ 임미현 > 북한 '인민'들로선 어쩌면 제2의 '고난의 행군'에 나서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군요. 같은 동포로서 마음이 무거운데요. 승산이 있다고 본 걸까요?
◇ 홍제표 >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선 시간이 미국 편일지는 몰라도 트럼프 편은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내년 11월에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뭔가 외교 치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북핵 말고는 마땅치 않다는 계산이죠. 하지만 이런 이유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차피 북한으로선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생존을 위해 모험주의적 결정의 연속이었습니다.
◆ 임미현 >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리 북한이라도 이제는 한계 상황에 임박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 홍제표 > 객관적 지표로 볼 때는 그런 판단이 타당한 것 같습니다. 우선 북한의 사실상 유일한 외부 공급선인 대중 무역액이 지난해 24.6억 달러로 전년대비 약 50% 감소했습니다. 대중 수출액(2.2억 달러)은 87%나 급감했습니다. 2017년에 강력한 유엔 제재 결의안 4개가 잇달아 가결된 여파입니다. 중국 통계상으로는 주요 수출품인 무연탄의 경우, 지난해 수출액이 '0'였습니다. 수출이 줄어드니 외화보유고도 비상입니다. 일각에선 30~70억 달러의 보유고가 연간 10~15억 달러씩 소진돼 내년쯤에는 바닥을 드러낼 것(서울대 김병연 교수)으로 예상합니다. 석유 문제도 심각합니다. 지난해부터는 연 50만 배럴(정제유 기준)까지만 허용됐는데 이는 평년(450만 배럴)의 1/9 수준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 임미현 > 반면, 북한 경제가 의외로 내구력이 있다는 분석도 있는 것 같아요.
◇ 홍제표 > 그런 주장도 만만치 않고 나름 근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쌀값과 석유가격,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스테리한 측면인데, 이는 여러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밀수 등을 통해 최소한의 기본적인 외부 조달은 이뤄지고 있거나 내부적으로는 국산품으로의 수입대체 효과 등이 이뤄졌다는 분석입니다. 김정은 집권 후 더 활성화된 장마당(시장) 경제로 인해 체질이 달라졌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고통은 따르겠지만 근근이 연명할 수준은 된다는 것이죠.
◆ 임미현 > 어느 쪽이 맞는 판단인지 더 헷갈리는데요. 북한은 연말까지 '미국의 용단'을 기다리겠다고 나름 호기 있게 말했는데 어떻게 전망하세요?
◇ 홍제표 > 기본적으로 북한 자료가 극히 제한돼있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단적인 결론은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북한 환율이 갑자기 오르거나 장마당 거래가 줄어드는 등의 신호가 오면 위험 상황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또 하나 거의 확실한 것은 어떤 경우가 됐든 김 위원장이 일방적 양보는 결코 하지 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전문가들이 대체로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만능론'만 믿고 밀어붙이다 본인이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은 물론 한반도 전체에 진짜 위기를 불러올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의 말입니다.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만약에 올해 말 내년 초까지 (비핵화 협상의) 성과가 안 나면 오히려 북한의 배신을 빌미로 트럼프가 확 배신할 가능성도 있죠. 그게 개인 캐릭터에 의존해서 전체 프로세스를 갈 때 처음부터 끝까지 불안 불안했던 측면의 하나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대북제재가 이제야 먹히기 시작했다며 압박 강도를 오히려 높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껏 들인 공이 아깝다는 '매몰비용' 효과입니다.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제재해제에 매달리며 약점을 드러낸 것을 계기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의 '북한 붕괴론'이 되살아날 기미도 감지됩니다. 하지만 인위적 정권 교체 반대 등 '대북 4 No'를 천명한 우리 정부 입장에선 위험천만한 접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 지도부로선 제재에 굴복하느니 모험주의적 도박에 나설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