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김혜준이 '지옥 같은 괴로움'을 헤쳐가는 법

[노컷 인터뷰] '미성년' 주리 역 김혜준 ②

영화 '미성년'의 김혜준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축하한다. 너 때문에 우리 집은 지옥이다." '축하한다'는 표현은 당연히 진심이 아니다. 엄마만은 모르길 바랐던 아빠의 불륜을, 다짜고짜 전화로 폭로해 버린 윤아(박세진 분)에게 주리(김혜준 분)가 하는 분풀이 같은 대사였다.

그럭저럭 잘 사는 중산층 가정에서 엄마 아빠와 셋이 사는 주리에게, 예상치 못한 폭탄이 던져진다. 바로 아빠 대원(김윤석 분)의 불륜이다. 상대도 기막히다. 동급생인 윤아의 엄마 미희(김소진 분)다.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며 바람을 확신한 주리는 엄마 영주(염정아 분)만은 이 사실을 모르게 하려고 애쓰지만, 윤아의 폭로로 모두가 알아버린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그저 공부에만 집중하면 됐던 과거와 달리, 주리는 말 그대로 '지옥 같은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 대응해나간다. 영화 '미성년'(감독 김윤석)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건 주리와 윤아 같은 미성년이고, 현실을 외면하거나 방관하는 건 성년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김혜준을 만났다. 극중 주리처럼 '지옥'에 비유할 만한 어렵고 괴로운 상황을 만난다면, 김혜준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했다. 그는 다행히 아직 이 정도로 큰 시련은 겪지 않았다며 웃었다.

일문일답 이어서.

▶ 주리와 윤아는 각자 아빠와 엄마가 바람이 나면서 묘하게 엮이는 관계다. 주리는 윤아를 어떤 사람으로 인식했을까.

처음은 정말 싫었겠지. 정말 미운 존재고. 게다가 엄마한테만은 (아빠의 불륜을)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엄마한테 말을 하고. (윤아의 폭로로) 엄마는 맨발로 걸을 만큼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걔는 나를 보고 비웃기까지 하니까. 정말 싫은 존재, 정말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였을 것 같다. 그러니까 달려가서 머리채를 잡았고. (웃음) 그 후론 또 아무렇지 않게 논다. 얘도 나랑 똑같은 '애'라고 느꼈을 것 같다. 주리가 머리채를 잡았을 때 윤아도 '얘가 왜 이래?'가 아니라 기다렸다는 듯이 잡지 않나. 한바탕 싸우고 누워서 서로 쳐다보며 무언의 동질감을 느꼈을 것 같다. 너나 나나 똑같다는. 주리는 배려심이 많고 천성이 못된 아이도 아니다. 얘(윤아) 상황도 알기 때문에 얘도 참 안타까운 아이라는 걸 알게 모르게 느꼈을 것 같다. 아이(미희가 조산한 윤아의 동생)를 통해 동질감도 느끼고 그때부터 가까워졌던 것 같다. 애들이니까 불같이 싸우고 나서도 그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 두 사람의 과격한 몸싸움 장면이 확실히 눈에 확 들어왔다. 머리채 잡고 싸우는 씬의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일단 그 장면을 액션 스쿨 다니면서 한 달 정도 준비했다. 그 씬을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한 번에 가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이 있었다. 원래 첫 번째 것(연기)이 가장 에너지가 좋고 치열하다. 웬만하면 (처음에) 모든 힘을 다 써 버리기 때문에 두 번째 거로 가면 물리적인 힘이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제가 머리채 잡을 때부터 정말 치열하게 잡았고 그때부터 윤아도 필사적으로 영혼을 갈아 넣은 것처럼 합을 맞췄다. 그래서 풀샷은 원 테이크로 갔다. 아 너무너무~ 뿌듯했다. 다들 박수쳐주시더라. 수고했다고 쳐 주신 거겠지만 '아, 이런 건가?' 생각했다. 한 달간의 눈물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어서 뿌듯했다. (웃음)

▶ 윤아 역을 맡은 박세진은 어떤 배우라고 보나.

되게 차분한 것 같다. 제가 아는 친구 중에 제일 차분한 것 같다. 정말 차분한데 되게 허를 찌른다고 해야 하나. 저한테 한마디 한 마디 하는 게 굉장히 생각을 하게 했다. 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어주는 친구였던 것 같다. 어쨌든 저희 둘 다 신인이고 오디션을 4차까지 보고 붙었으니까 '우리 둘이 의지해야 해'라는 생각이었다. 잘못된 건 감독님이 잡아주시니까 우리는 서로 으쌰으쌰 하는 관계? 서로 칭찬해주고 북돋아 주고 하면서 왔다. 세진이가 동생이지만, 제가 힘들 땐 세진이가 엄청 의지가 됐다. 따로 숙소를 주셨는데 방 하나는 비우고 같이 지냈다. 끝나고 여행도 같이 다녀왔다.

김혜준과 박세진은 500:2의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미성년'의 주리, 윤아 역을 꿰찼다. (사진=㈜영화사 레드피터 제공)
▶ 시나리오에서부터 재미있을 것 같은 장면은 무엇이었나.

만날 수 없는 존재들이 만나는 씬. 주리와 미희가 만나고 윤아와 영주가 만나는 것. 절대 만나선 안 되는 사이인데… 선배님들 장면은 정말! 그 덕향오리에서 살얼음판이지 않았나. 고성방가가 오가지도 않는데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분위기는) 엄청 뜨거운 거 있지 않나. 그게 엄청 짜릿했다. 하~ 숨죽이고 보게 됐다.

▶ "너 때문에 우리 집은 지옥이다"란 말은 극중 주리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하는 대사 같다. 지옥 같은 괴로움이 왔을 때 어떻게 극복하나.

주리처럼 이런 큰 시련은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웃음) 자잘자잘한 힘든 일이 오면 해결하거나 외면한다. 말해서 속 시원할 거 같으면 말을 해 버리고, 이도 저도 아니면 모른 척하고 잠을 잔다든가 잊어버리려고 애쓰는 것 같다. 회피할 수 있는 건 회피하고 조금이라도 부딪혀야 한다면 해결해서 일을 저질러 버린다.

▶ 엔딩에 대한 감상은 어떤가.

저는 엔딩만 보면 그렇게 울컥하더라. (웃음) 눈물이 났다. 저는 (영화를) 세 번 봤는데 보면 볼수록 (울컥함이) 커진다. 그 선택이 너무 찬란해서. 정말 약간 눈부신 느낌이었다. 나중에는 (둘이) '너무 예쁘다' 이런 느낌이었다.

▶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주리 가족의 '그 후'를 상상해 봤는지 궁금하다.

주리네는 그냥 다시 모여서 살 것 같다, 떨어지지 않고. '에휴~' 하면서. 대원이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구석도 있지 않나. 어느 정도 묻어두고, 안고 살 것 같다. (주리는) 의젓하게 굴긴 했는데 어린아이니까 (이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염정아, 김소진과 함께한 이야기도 듣고 싶다.

염정아 선배님은 정말정말 첫 만남부터 그냥 엄마였다. 친구 같은 엄마, 언니 같은 엄마로 되게 잘 챙겨주셨다. 긴장 풀어주시려고 먼저 말도 걸어주시고 얘기도 해 주시고 조언도 해 주시고 장난도 쳐 주셨다. 김소진 선배님도 한결같으시다, 지금까지. 선배님들이라고 (제게) 어렵게 하시는 게 아니고, 정말 그냥 친구같이 편한 선배님처럼 잘 챙겨주셨던 것 같다.

▶ 두 사람이 연기하는 장면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는지.

선배님들 씬 있을 때는 제가 안 나와도 (현장에) 나가서 봤다. 멀리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연기하시는데도 공기를 촥 누르시더라. 전달도 확실하게 해 주시고. 모니터까지 그 분위기가 오는데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어서 작은 소리가 모이면 큰 소리가 될 텐데도, 모두가 숨죽일 정도로 (몰입하게 하는) 에너지가 있었다. 두 분 다 너무 존경스럽고 본받고 싶었다. 사람이 숨소리까지 죽일 정도로 연기력과 집중력으로 분위기를 누르시더라. (웃음) 정말 숨죽이고 봤다.

김혜준은 아빠 대원(김윤석 분)의 비밀을 알고 엄마 영주(염정아 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딸 주리 역을 맡았다. (사진=㈜영화사 레드피터 제공)
▶ '미성년'의 관전 포인트를 짚는다면.

(영화의) 디테일도 있고,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마주하는 다섯 인물들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굉장히 다양하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본다.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이 분명히 관객들의 삶에도 녹아있을 것 같다. 자신의 삶을 한 번 돌아볼 수 있게 하는, 허를 찌르는 영화랄까. 끝나고 나면 '어,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명치가 약간 애린 느낌으로. (웃음)

▶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시기는 언제인가.

고2 겨울방학 때 입시 준비하면서였던 것 같다. 그전부터 하고는 싶은데 용기를 못 내고 있다가 말 못하고 있었다. 인생이 달린 일이니까. 저 스스로에 대한 자신도 없었다. 배우는 외형적으로도 엄청 화려하게 예뻐야 할 거 같고 끼도 많아야 할 거 같은데 제가 말했을 때 친구들이 비웃을 것 같더라. 주눅이 많이 들었다. 자신감이 생겨서는 아니고,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라도 해 보자, 질러보자는 마음이었다. 고민하며 끙끙 앓다가 질러버리는 스타일인 것 같다. (웃음)

▶ 그동안 작품은 전부 오디션으로 들어간 건가.

지금까지는! '내일부터 우리는'은 '대세는 백합' 후에 같이 하자고 연락해주셔서 오디션은 안 봤던 것 같다. '미성년'도 100번쯤 떨어질 때쯤 된 거다. 몰아서 되더라. '킹덤', '미성년', '그냥 사랑하는 사이'까지.

▶ 결과가 좋아지기 시작한 데 비결이 있을까.

오디션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지긴 했다. 일단 외형도 달라졌다, 나이를 먹으니까. (웃음) 3일 전 김혜준과 지금의 김혜준이 다른 것처럼. 제게 맞는 역할이 오고 있고. 여러 가지 상황이 들어맞아서 되고 안 되고가 정해지는 것 같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캐릭터 자체인 사람이 있다면,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 와도 이 사람만 못한 거 아닌가. 나에게 맞는 캐릭터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아, 나는 왜 오디션에서 자꾸 떨어지지', '역시 나는 아닌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러기엔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저는 길게 보고 하고 싶은데 너무 초조했던 것 같다. '내 것이 아니니까 떨어졌겠지',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지금은 조금 긍정적으로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그래야지 버틸 수 있겠더라.

▶ 'SNL코리아'를 통해 생방송 경험을 쌓았다. 이후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일단 방송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맛봤다. 저는 그전까지는 그렇게 많은 카메라 앞에 서 본 적도 없었고, 많은 연예인들과 작업한 게 처음이었다. 그걸 찍는 6개월 동안에도 정말 어려웠다. 호로록 지나갔는데 그때가 (지금의) 발판이 되지 않았나 싶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2'에도 나오게 됐다. 현재 촬영 중인가.

5월쯤부터 들어갈 것 같다. 얼마 전에 '변신'이란 영화를 했고, 하반기 계획은 미정이다.

▶ 마지막 질문이다. 요즘 즐겨듣는 곡이 있나. 김윤석은 최근 '신청곡'을 듣는다고 했다.

저도 그 노래! '신청곡'도 좋아하고, 저는 차트에 있는 건 다 듣는다. (웃음) 원래는 인디밴드를 좋아해서 많이 듣는다. <끝>

배우 김혜준 (사진=황진환 기자)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