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자 문재인 대통령의 고심이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직후 밝힌 입장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등을 보면 양 정상은 '하노이 결렬' 이후 비교적 분명한 입장을 교환했다.
긍정적인 부분은 양 정상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대화 의지를 다시금 확고히 했다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나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처럼 적대적이지 않으며 우리는 여전히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또 "제3차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난 13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과 자신의 관계가 "훌륭하다(Excellent)"고 표현했다. 또 김 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 언급에 대해서도 "3차 회담이 좋을 것이란데 동의한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양 정상의 신뢰를 통해 대화 원동력을 이어온 '톱 다운'식 대화의 장점이 아직 유효하다는 점은 확인된 셈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비핵화의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서는 양 정상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형국이어서 당분간 양측의 기싸움이 장기화될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후 다양한 스몰딜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빅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에 대한 일부 제재 완화 등으로 '당근'을 주는 것 보다는 강경책을 써야 한다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상황도 존재한다.
김 위원장도 "우리 국가와 인민의 근본 이익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티끌만한 양보나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 역시 14일 "조선(북한)이 제재해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다른 행동조치로 저들의 적대시정책 철회 의지와 관계개선 의지, 비핵화 의지를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며 '다른 행동'을 촉구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현재 단계에서 북한과 미국, 둘 중 하나가 양보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하노이 결렬 이후 비핵화 방법에 대한 이견을 거듭 확인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가운데 북미가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중재 역할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 나간다는 입장이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특히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전면 비난하고 나선 상황이어서 문 대통령이 움직일 여지 역시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북한과 미국 사이 의견을 조율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북미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확실한 '제3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핵무기 포기에 대한 큰 틀에서의 원칙을 밝혀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남아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단계적 이행에 대한 필요성을 원론적으로 인정한만큼 '일괄타결·단계적이행'의 창의적이고 구체적인 제3의 해결책을 제시해 북미를 모두 끌어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북미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은만큼 '새 틀'에서의 고민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북미 모두 스스로 먼저 나서지는 않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고 김정은 위원장 역시 만족할만한 합의안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며 '톱다운' 방식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무 선에서 합의안을 구체화하고 고위급을 거쳐 정상회담으로 오는 식으로 틀이 바뀔 수도 있는만큼 한국이 새 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주부터 본격적으로 중재역할에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문대통령은 15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한미정상회담 평가 등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주 내 대북특사 파견 계획을 밝힐지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