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성년'은 이렇게 대원과 미희의 불륜을 두 가족 모두가 알게 되면서 시작한다. 오리 전문점 덕향오리를 운영하는 엄마 미희와 둘이 사는 윤아는, 대책 없이 바람이 나 아기까지 가진 엄마가 한심하다. 하지만 엄마는 그 바람 상대를 '마지막 사랑'이라 저장하고, 아기가 아들이라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잖아도 속 터지는데, 주리는 "너네 엄마가 우리 아빠 꼬셨지?"라며 화내고, 피식 웃었다는 이유로 머리채를 잡고 들어온다. 바람난 건 자기 아빠도 마찬가지면서. 철천지원수로만 지낼 것 같았던 윤아와 주리는 기묘한 관계 속에서 티격태격하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미희가 조산한 아이 '못난이'를 매개로.
'미성년'은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미성숙한 어른들 사이에서도, 나름의 생각과 판단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는 아이들을 공들여 보여준다. 윤아 역의 박세진은 주리 역의 김혜준과 함께,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박세진을 만났다. 박세진은 김혜준, 김윤석 감독과 한 달 넘게 대본과 장면 연습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내용, 느낀 점을 정리한 연기 노트 이야기도 들려줬다.
일문일답 이어서.
▶ 김윤석 감독, 김혜준과 세 명이 같이 한 달 넘게 만나서 대본연습했다고 들었다. 실전에서도 도움이 많이 됐을 것 같다.
감독님께서 정말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장면이 옥상 장면이었다. 전체 리딩보다 옥상 장면 연습을 계속했다. 연습실 빌려서 함께 동선을 만들면서 연극 연습하듯이 했고, 그때 만든 그 동선과 그 연습 그대로 현장 가서 했다. 긴 시간 연습했기 때문에 옥상 장면 찍을 때 현장에서도 동선 헷갈리지 않고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감독님께서 대본 리딩할 때부터 연기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항상 얘기해주셨다. 첫 번째가 무조건 꾸미지 않고 느낀 그대로 연기를 하는 거였다. 조금이라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 흉내를 내게 되는 거니까. 그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더라. 한 달 동안 감독님과 함께 정말 내가 느낀 대로 내뱉고 연기하는 걸 훈련했다. 현장 가서도 굉장히 많이 도움이 됐다.
▶ 김윤석 감독이 알려준 연기 조언을 노트로 정리했다는 걸 다른 인터뷰 기사에서 봤다. 잠언처럼 읽고 있는 건가.
(일동 웃음) 잊어버릴까 봐 적어놓았다. 현장에서 정신없이 있다 보면 연기에서 어떤 게 중요한지 까먹더라. 무엇이 중요한지를 돌이켜보려고 할 때 그 노트를 봤다. 앞으로도 제가 잊어버릴 수 있으니, 연기할 때 어려우면 찾아보면서 정석을 다져야겠다.
▶ 노트에는 김윤석 감독의 조언만 담겨 있나. 연기하며 느낀 점도 쓰는지.
느낌보다는 스스로가 뭐가 부족한지, 어떤 걸 보완해야 하는지를 쓴다. 집중 잘해야겠다! 이런 거나 선배님들 보면서 느끼는 것들도 쓰고.
완급 조절은 감독님께서 해 주셨다. 저희는 처음 만났을 때 티격태격한 사이였는데 그런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다가도 전체 그림은 감독님이 그려주셨다. 또 싸우는 줄 알았는데 '너네 약간 웃으면서 해 볼래? 좋은데 좋은 내색 안 하는 그런 식으로 해 볼래?'라고 하실 때도 있었다. 저는 그렇게 하는 게 맞나 싶었는데, (완성된 걸 보니) 감독님의 큰 그림이셨다. (웃음) 조금씩 가까워지는 모습을 적재적소에 넣어주셨다. 나중에는 (저희가) 너무 친해져서 '팔짱 좀 빼라'고 하시기도 했다, 감독님이. (웃음)
▶ 후반부 놀이공원에서 노는 장면도 재미있었는데 그때도 어떤 설정이나 지시가 있었나.
움직이지 않는 놀이기구에서 해야 하다 보니까 상상력에 한계가 있었다. 어떻게 하자고 같이 의견을 나누며 동작을 만들어갔다. 슛 들어가면 같이 소리지르면서 막 했다. (웃음)
▶ 둘 다 신인 배우여서 서로에게 많이 의지했을 것 같다. 김혜준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언니랑은 깊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아도 서로 얼마나 부담감이 크고 걱정이 많은지를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 함께 연기할 때 저에게는 매 씬이 도전이고 과제였다. '우리, 잘할 수 있을까?' 하면 '잘할 수 있어! 화이팅!' 이랬다. (웃음) 덕분에 더 에너지를 가지고 함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현장에서 김혜준은 어땠나.
일단 주변 사람들을 굉장히 행복하게 해주고 정말 현장의 분위기메이커였다. 주변 사람들을 되게 많이 잘 돌보는 게 좀 존경스러웠다. 왜냐하면 전 정말 연기하는 것도, 내 몸 하나 간수하기는 것도 힘들었다. 힘들면 저는 구석에 혼자 있고 그랬는데, 언니도 분명 힘들 것 같은데 스태프분들과 함께 어울리고 웃으면서 분위기를 좋게 했다. 본인의 힘듦보다 남의 힘듦을 되게 많이 헤아려주려고 하는 걸 되게 닮고 싶었다.
▶ 염정아, 김소진, 김윤석 등 선배 연기자들과 함께한 소감도 궁금하다.
선배님들은 확실히, 가지고 계신 에너지가 다른 것 같다. 연기할 때 같은 씬을 계속 찍지 않나. 앵글에 따라서도 그렇고, 조금 더 밀도 있게 더 좋은 장면을 내기 위해서 오래 찍는 부분도 있다. 그런 것이 감정 씬일 때는 굉장히 힘이 든다. 방금 제가 내뱉었던 감정을 또 꺼내다 보면 (이전 감정처럼) 유지하기 힘들다. 계속 새로운 지점도 찾아가야 하니까 그게 어렵고, 이게 지속되면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와서 에너지 분배하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선배님들은 몇 번을 (촬영)해도 (감정을) 다 끌어올려서 하시더라. 본인이 잘 해내고자 하는 열망이 없다면 끌어내서 하기가 힘들 텐데, 이미 지치셨음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연기를 계속 보여주시는 걸 보고 굉장히 본받고 싶었다.
아무래도 배우들을 대할 때 더 섬세함을 느꼈던 것 같다. 배우이시다 보니까, 배우에게 어떤 상태를 줘야지 더 연기를 잘할 수 있고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지를 아셨다. 예를 들면 카메라 앵글 때문에 몸은 조금 불편하게 해 놓고 연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카메라에는 전혀 제 몸이 불편하게 보이지 않는데, 실제로는 불편한 상황이었다. 바른 상태가 아닌 채로 오랫동안 촬영하다 보니까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기도 했는데, 감독님이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 되도록이면 그 자세로 오래 대기하지 않을 수 있게 그런 부분을 세심하게 챙겨주셨다. 그런 건 연기를 직접 해 본 분이 아니면 알 수가 없는 부분 같더라.
▶ 염정아, 김소진은 언론 시사회나 인터뷰 등에서 '여자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싶을 정도로 김윤석 감독이 섬세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
아니다. (웃음) 제게 감독님은 감독님이다. 남성이라는 개념이 앞서기보다는. 감독님께서는 윤아, 주리, 미희, 영주 캐릭터를 여성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더 깊게 바라봐주셨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섬세한 감정에 더 집중하고 관찰해주셨다고 본다.
▶ 본인이 생각할 때 성년과 미성년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기준이 명확하게 뭐라고 얘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제가 생각하는 어른은,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리든 어떻든 간에 상관없이 상대방이 지금 처한 상황, 겪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런 모습이 어른의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 연기 준비는 언제부터 했는지 궁금하다.
한 21살? 그때부터 조금씩 했던 것 같다. 모델로 시작했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게 됐다. 처음에는 그렇게 깊은 뜻은 없었다. 아무래도 연기를 너무 좋아하는 친구들과 학교에 같이 있고 접한 부분이 많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조금씩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스물한 살쯤 됐을 때, 우연히 오디션을 보게 돼서 '마녀보감'이라는 작품을 하게 됐다. 거기서 염정아 선배님을 따라다니는 역할이었다. 4개월 동안 현장을 배우고 선배님들의 연기를 봤다. 염정아 선배님이 굉장히 연기를 사랑하시고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연기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나도 잘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공부를 해나갔다.
▶ 지금도 오디션을 꾸준히 보고 있나. 차기작은 정해졌는지.
네네. 차기작은 아직 보고 있다. (웃음)
▶ 마지막으로 '미성년'을 관객분들에게 홍보한다면.
얼마 전에 백은하 기자님과 함께 무비토크를 했는데, 그때 기자님이 '미성년'은 객관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라고 해 주셨다. 말 그대로 관객분들이 정말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고, 영화 안에 있는 의미가 관객분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갔으면 좋겠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