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신날 떠나보낸 어머니"…산불 피하다 참변 유족 '눈물'

71세 박석전 할머니 뒤늦게 산불 사망자 명단 포함
유족들 "재난안전 문자에 강풍 등 정보 전달 필요"

지난 4일 고성·속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했다. (사진=유선희 기자)
"발인하는 날이 어머니 생신이셨거든요. 올해는 꼭 같이 가족여행도 가기로 했었는데…"

지난 4일 산불을 확인하러 나섰다가 강한 바람에 시설물 등을 피하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박석전(71) 할머니 유족들은 여전히 '그날'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박 할머니의 딸 안모(45)씨는 "어머니가 태어나신 날이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날이 돼버렸다"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이어 "아들이 고3이어서 올해 수능 마치면 어머니를 모시고 다 함께 12월에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었다"며 "생신 전에 식사도 함께 못하고 가족여행도 못 가게 돼 그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라며 울먹였다.


유족 등에 따르면 박 할머니는 산불이 발생한 당일인 지난 4일 오후 9시 10분쯤 강원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 집을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996년과 2000년 발생한 고성 산불로 두 번 모두 집터를 잃었던 기억은 박 할머니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는 게 유족들의 설명이다.

마을 주민들에 의해 신고가 접수된 시간은 오후 9시 30분쯤이지만, 유족들은 오후 9시 10분쯤부터 박 할머니와 연락이 두절돼 이미 어머니가 숨진 이후에 발견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 할머니의 사위 김모(50)씨는 "당시는 불길이 너무 세 고성군으로 가는 길목이 거의 차단돼 있던 상황이었다"며 "속초에서 살고 있어 고성군으로 이동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됐다"고 가슴을 쳤다.

71세 박모 할머니가 쓰러져 있던 당시 현장모습으로 주변에 시설물 등이 떨어져 있다. (사진=유족 제공)
특히 박 할머니는 집에서 언덕으로 올라와 뒷산이 보이는 지점에 쓰러져 있어 유족들은 더욱 산불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참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산불은 박 할머니가 사는 곳에서 20㎞ 정도 떨어진 토성면 원암리에서부터 강풍을 타고 확산 중이었다. 그즈음 최대순간풍속은 미시령 35.6m/s, 고성 현내면 26.1m/s 등을 기록했다.

삼포리 마을 이장 함형복씨는 "당시는 바깥에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며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차 문이 열리지도 않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화재로 인한 사망으로 볼 수 없다는 당국의 판단으로 사망자 명단에 빠졌던 박 할머니는 이후 사연이 알려지면서 다행히 재집계 됐다.

강원도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11일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강원 산불로 인한 인명피해를 기존 '사망 1명'에서 '사망 2명'으로 수정했다.

즉, 개인 부주의에 의한 안전사고가 아니라 사회재난(산불)으로 인한 사망자로 재집계 된 것이다.

박 할머니가 우여곡절 끝에 산불 사망자에 포함되면서 유족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씨는 "화재의 직·간접적인 피해를 봤는데 정작 집계가 안 돼 가족들은 너무 속상한 마음이 컸는데 이제라도 포함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유족들은 "이번 산불 관련 안전안내 문자를 보면 강풍 등에 대한 정보는 전달해 주지 않은 채 그저 대피 장소로 이동하라는 알림만 보내왔다"며 "제대로 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바깥을 나섰다가 참변을 당한 어머니와 같은 피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재난 안전문자에 보다 상세한 정보도 함께 전달해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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