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조율 '디테일'이 관건…두루뭉술 합의는 北설득 난망

당국자 “좋은 결과 나올 것”…美 일각에선 ‘단계적 해법’ 긍정 기류
세부내용까지 조율될지는 의문…北, 한미회담 무관심? ‘버티기’ 가능성

(그래픽=연합뉴스 제공)
꽉 막힌 북미 교착상황의 돌파구 역할을 할 한미 정상회담이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지만 결과를 낙관하긴 어렵다.

한미 간 조율이 성공리에 이뤄져도 다음 단계인 북한을 견인할 만한 수준이 될지는 더욱 불투명하다.

◇ 당국자 "좋은 결과 나올 것"…큰 틀에선 조율 가능

우리 당국자들의 발언이나 미국 반응으로 볼 때 외견상으로는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다.

물론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출국 직전 열린 상원 청문회에서 '최대의 압박'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는 최근 여러 언론 인터뷰와 연설에서도 북한 비핵화 완료 전까지 유엔 안보리 제재 해제는 없을 것이란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4일 국제 심포지엄에서 "북한이 단번에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라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사전 물밑교감 없이는 나오기 힘든 발언이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5일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비핵화의) 최종 목적지, 즉 엔드 스테이트나 로드맵에 대해서는 한미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정상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런 발언을 종합하면 비핵화 해법의 두 기둥이라 할 목표(비핵화의 정의)와 방법론(합의와 이행 방식)에서 양측 입장이 일치하거나 크게 좁혀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미국 전문가들 기류도 '단계적 접근'에 긍정 선회

미국 조야의 분위기가 반드시 강경한 것만도 아니다. 대표적인 게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의 최근 기고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멘토'로 알려진 하스 회장은 "장기적 비핵화 목표를 세우되 단계적 접근법(phased approach)을 모색하는 게 이치에 맞다"고 지적했다.

존 메릴 전 국무부 정보분석국 동북아실장도 자유아시아 방송(RFA) 인터뷰에서 "단계적 비핵화와 대북제재의 완화 등 점진적 접근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며 "워싱턴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기류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다이엔 파인스타인(민주당) 상원의원의 경우는 미국의소리 방송(VOA) 설문조사에서 "북한이 한국과 경제적으로 더 많은 교류를 하도록 하는 것만이 유일한 장기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폼페이오 장관 등이 원칙론을 완강하게 고수하는 것은 협상력을 키우거나 국내 정치용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사실 타결(합의)은 한 번에 가능해도 이행(비핵화 및 보상)까지 '원샷'으로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미뤄 북미는 물론 한미 간에도 의견차가 적지 않지만 표면적으로는 어떻게든 절충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우리 정부로선 한미동맹 균열에 대한 보수진영의 우려를 불식하는 것은 물론 대북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절실한 문제다.

미국도 먼 길을 찾아온 동맹국 대통령에게 매몰차게 자기 입장만 고집하긴 힘들다. 정부가 '탑 다운' 방식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결국 이번 회담은 최근 정부 고위관계자가 밝힌 "포괄적 논의를 통해 접근한다면 제재완화도 논의될 수 있다"는 수준에서 합의가 가능할 수 있다.

◇ 세부 내용까지 조율될지는 의문…'디테일의 악마' 경계

문제는 한미 간 조율이 두루뭉술하게 이뤄질 경우 정작 북한을 설득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이 우리 입장인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과 '조기 수확'(early harvest) 방식에 양보한다고 해도 세부 내용까지 완벽한 조율이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미국은 단계적 보상에 동의하더라도 그에 상응한 북한의 비핵화 수준은 훨씬 높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단계적 접근법을 권고한 하스 외교협회장조차도 핵 관련 시설의 신고와 국제사찰단의 검증에 합의하는 것을 대가로 일부 제재 해제와 종전선언 등을 교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미 간 신뢰가 쌓이기 전에 핵 목록을 공개하라는 것은 공격 좌표를 찍어달라는 요구로 받아들이는 북한으로선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제안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정부에선 긍정적으로 얘기하지만 실질적 디테일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보긴 힘들다"면서 "북미 간 이견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단기간에 접근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해법의 또 다른 갈래인 '최종 상태' 역시 '한미 간 이견이 없다'는 정도의 외교적 수사에 그친다면 여전히 논란이 남게 된다.

미국은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의 범주에 기존 핵무기·물질·시설·미사일 외에 생화학무기 등의 대량살상무기(WMD)를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최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무제한적인 사찰권과 핵 과학자들의 직업 전환 같은 '굴욕적' 요구도 담겨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9일(현지시간) 청문회에선 '재래식 수단의 위험'까지 추가해 북한이 받아들일 여지를 더욱 좁혀놨다.

◇ 北 '버티기' 전략?…한미회담 관심 없다는 듯 '내부 다지기'

이런 기류를 간파했는지 북한도 일찌감치 움직임을 보였다. 대미 협상전략에 어떻게든 변화를 주기 보다는 내부 다지기를 통한 '버티기'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마치 한미정상회담 결과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와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9일과 10일 잇달아 소집했다.

일반적 관측으로는, 북한이 한미정상회담보다 시차가 앞선 11일 최고인민회의에선 내부 관리에 주력하고 이후 당 중앙위 등을 통해 대미 메시지를 발신할 것이란 예상이었다.

이와 관련,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는 8일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김정은이 4월 11일 한미정상회담에도 별로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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