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上海), 충칭(重慶) 등 상징성이 큰 임시정부 유적지는 중국 정부의 지원과 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보존이 잘 돼 있는 편이지만, 그 외에 임시정부 역사 속 흔적들은 뜸해진 발길과 재정적 어려움, 주변의 개발 등으로 인해 점차 사라져 갈 위기에 있다.
◇ 한중 역사 속 족적 남겼지만, 잊혀져가는 훙커우
상하이 도심 외곽에 위치한 루쉰(鲁迅) 공원. 과거 훙커우(虹口) 공원으로 불린 이 곳은 윤봉길 의사 의거 장소로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 속에서도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당시 일제의 탄압 속 조선인 청년 윤봉길이 터트린 그 용기는 임시정부와 중국인들에 큰 울림을 남겼다.
윤봉길 의사의 호를 딴 매헌(梅軒)이라는 이름의 이 전시관은 루쉰 공원 중심에 위치해 있다. 공원 초입에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이정표에는 한글이 써져 있었고, 공원 안내도에도 '매원(梅園)' 이라는 한글 이름이 적혀있어 찾아가기도 쉽다.
매원에는 윤봉길 의사 의거를 기념하는 현장 표지석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고, 보존이 잘 돼 있는 곳이지만,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들이 줄어들고 윤봉길 의사 의거에 대한 중국인들의 역사 인식마저 희미해져 점차 잊혀져가고 있다.
두 번에 걸쳐 찾아 본 루쉰 공원은 한국의 여느 공원처럼 인근 주민들의 쉼터로 애용돼 북적거렸다. 하지만 15위안(약 2500원) 가량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매원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다만 흐드러지게 핀 매화꽃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찾은 사람들의 모습만 간간히 눈에 띄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아 매원 안 한글로 된 기념품 가게는 문이 닫힌 지 오래다. 또 매헌 안에는 보는 관람객도 없이 윤봉길 의사와 관련한 영상이 공허하게 틀어져 있다.
현지 관계자는 "사드에 의한 문제도 있긴 했지만, 루쉰 공원 같은 경우는 도심 외곽에 위치해 있고 주차 등 교통과 관련한 문제가 있어 여행사들이 어느 순간부터 일정에 넣지 않게 된 곳"이라며 "따라서 루쉰 공원 내에 윤봉길 의사 의거 기념관도 현재 한국인 관광객이 잘 찾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유적지 같은 경우는 주변에 신톈디(신천지) 등 대형 쇼핑몰이 위치해 있고, 지하철 등 교통이 편리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만 루쉰 공원 같은 경우는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찾아가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라고 말했다.
루쉰 공원 안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취재진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활짝 웃으며 반겼다. 특히 몇몇 고령의 현지인들은 매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취재진과 발걸음을 같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시도한 젊은 현지인들에게서는 훙커우라 불렸던 루쉰 공원의 과거 명칭,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이라는 역사적 의의에 대해 잘 모른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처럼 한국 관광객들의 줄어든 발길과 인근 젊은 현지인들의 희미해져 가는 역사 인식 속에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이라는 역사성은 점차 퇴색돼 가고 있다.
◇ 주변의 개발과 방치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빠진 100년의 역사
하지만 이곳 또한 도심에서 먼 위치와 교통 등의 문제로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 됐다.
현지 관계자는 "이 곳은 관광지로써 입장권과 관광객들의 기념품 구입 등의 수입으로도 운영 되는데 사드 사태 이후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시정부가 전장(江苏)에서 활동했을 당시 김구 선생이 강연을 한 것으로 알려지는 목원소학교. 현재는 터만 남아 있는 이곳에 진강 임시정부 사료 진열관이 위치해 있다.
사료 진열관 역시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그러한 모습이다.
현지 관계자는 "과거엔 주변에 김구 선생 사진 등이 걸려있는 등 위치를 표시한 이정표가 있어 찾기가 수월했지만, 현재는 주변 개발 등으로 인해 그런 것들이 다 철거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치장(綦江)에서 찾은 임시정부 유적지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양쪽 현대식 건물 사이에 덩그러니 폐가처럼 남아 있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심지어 다른 임시정부 요인들의 거주터 등 유적지는 이곳에 있으리라 짐작만 할 뿐 흔적 조차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충칭의 한 철강공장 내부에 위치해 있는 토교촌 한인터도 비석으로 그 위치를 겨우 가늠할 수 있다. 이 곳 역시 비석 근처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면 세채의 가옥이 있었다라고 추정 할 수 있는 터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마저도 차후에는 찾아 볼 수 없는 사라진 유적이 될 위기에 있다.
현지 관계자는 "철강 공장 안에 있는 토교촌 한인터는 개발로 인해 공장의 이주가 계획돼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이 곳은 앞으로는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한민국 정부의 근간이 됐던 임시정부의 흔적은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나라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다. 타국에 있는 우리나라 역사 유적지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지금이라도 남아있는 곳을 보호, 보존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사라져 가고 있는 국외 임시정부 유적지에 대한 문제는 어느정도 알고 있으며 유적지에 대한 상황은 주기적으로 체크해 확인하고 있다"면서 "타국에 위치해 있는 유적지라 중국 정부에 지속적 협조 요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임시정부 루트를 따라 취재하다 우연찮게 발견한 한 비석의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난징에 위치해 있는 이제항 위안소 터 소개 비석 뒤에는 8자의 문구가 적혀있다. '보호문물 인인유책(保护文物 人人有責)', 즉 문화재 보호에는 사람마다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국민들 한명 한명이 임시정부 그 27년의 역사를 잊지않고 기억하는 것이야 말로 임시정부 유적지 보존의 첫걸음이며, 역사를 후세에 오롯이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다.
| 글 싣는 순서 |
| ① 임정 루트 4000km, 100년 만의 시간여행 ② 중국에서 꽃 핀 조선 청년들의 기개 ③ 임정 100주년, 中 공산당과 협력한 독립운동가도 기억해야 ④세월 속에 기억 속에 묻혀가는 임시정부 27년의 역사 끝 |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