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엔 지폐모델, 레일 368mm 넓혀 경제침탈한 장본인

경부선 만든 日제국주의자 1만엔 지폐 주인공으로

일본 재무성이 공개한 새 지폐의 견본. (사진=연합뉴스)
일본의 새 1만엔권 화폐의 주인공으로 선정된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한국 철도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인물이다.

1898년 9월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경부선 부설권을 획득한 일본은 철도 기공을 앞두고 경부선의 궤간 선정에 관한 논쟁을 벌였다.

궤간이란 선로를 구성하는 두 레일의 간격으로 표준궤는 두 레일의 간격이 1435㎜, 광궤는 1520㎜, 협궤는 1067㎜이다. 궤간이 바뀌면 열차를 더 이상 운행할 수 없는데 이를테면 표준궤를 달리는 한국 열차는 같은 표준궤를 쓰는 중국 철로와 연결되지만 광궤를 쓰는 러시아 철도 앞에서는 일단 멈출 수 밖에 없다.

당초 일본 군부는 경부선의 궤간으로 일본과 같은 협궤를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일본과 같은 선로와 차량 등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공사가 편하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였다.

이 때 경부철도주식회사 사장이었던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등장해 표준궤를 건설해야 한다고 군부의 입장을 반박했다. 중국과 유럽이 대부분 표준궤를 쓰고 있는 만큼 대륙 진출의 시발점이 되는 조선의 철도는 표준궤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특히 중국과 만주의 철도가 표준궤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 침략의 교두보인 조선의 궤간과 중국이 달라서는 안된다는 것이 시부사와 주장의 핵심이었다. 결국 일본 군부는 시부사와의 주장을 납득했고 경부선은 표준궤로 건설됐다.

반면 일본은 식민지 대만의 철도를 건설할 때는 논란의 여지 없이 협궤를 사용했다. 중국과 연결되지 않는 섬의 철도에 제작비용이 비싼 표준궤를 채택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에게 조선의 철도는 대륙 침략을 위한 교두보라는 점을 명확히 한 인물이 바로 시부사와 에이이치였다.

공중보급이 없어서 군수품 보급을 철도에 의존해야 했던 20세기 초 철도의 확보는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사활적 요소였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중국·만주 침략과 러시아의 남하 저지를 위해 조선을 출발해 중국·만주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철도의 확보가 매우 시급한 전략적 목표였다.

실제로 일본은 경부선을 완공한 뒤 1906년 4월에는 서울 용산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운행을 시작하며 한반도를 종단하는 철도를 완성했다. 이어 1911년 압록강철교가 완공되면서 만주로 진출하는 길을 열었고 이듬해에는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경부·경의선을 거쳐 만주를 관통하는 남만철도의 창춘까지 연결됐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제일국립은행을 설립하고 도쿄가스 등 500여개 기업의 경영에 관여하는 등 일본 자본주의의 개척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폐 도안을 모두 바꾸기로 했다며 1만엔권 화폐의 앞면에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초상을 넣을 계획이라고 지난 9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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