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3월 1일 기념행사를 앞두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과 조소앙 외무부장은 해외 인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낸다.
해방되기 두 해 전, 대한민국의 독립에 대한 세계열강의 관심을 고대하며 만들었을 분홍색의 공식 초청장.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지박물관의 깊은 수장고 안에 잠들어있던 이 초청장에선 일제강점 치하에서도 임시정부 지도자로서의 자존심과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마음이 읽혔다.
오는 11일인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가 보관 중인 임시정부의 외교문서와 희귀자료를 연합뉴스를 통해 10일 공개했다.
연합뉴스는 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는 조소앙(1887∼1958) 선생의 후손 조인래씨와 지난 2월 14일, 지난달 5일, 지난 9일 등 총 세 차례에 걸쳐 경기도 양주시 조소앙기념관과 회암사지박물관 수장고, 조씨의 고양시 일산자택 등에서 만나 자료들을 확인했다.
기념사업회가 보관 중인 자료는 회암사지박물관 수장고에 900여점, 조씨의 자택에 400여점 등을 합하면 1천400점에 달한다.
조씨는 "할아버지(조소앙)의 꼼꼼한 자료 보관 성격 덕에 대한독립선언서 초고와 같이 귀한 자료는 물론, 아주 사소한 메모까지도 많이 남아있다"면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아주 중요한 사료"라고 말했다.
조씨는 앞서 지난 2월에는 서울시 '대한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식'에서 조소앙 선생이 쓴 대한독립선언서 초고를 최초로 공개하기도 했다.
조씨는 이번에 '임시정부 포고문'도 최초로 공개했다.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이후 임시정부가 일본 제국을 향해 선포한 '대일 선전 포고문'과는 다른, 대내용 선포문이다.
1942년 1월자로 발표된 이 포고문에는 "우리 민족 중 어떤 개인 및 단체의 고의나 과실을 막론하고 과거의 착오와 범과를 일체 씻어주노니, 국내외 일체 인민은 새로운 정성을 다하여 본 정부의 법령을 준수하며 적 일본을 향하여…(후략)"라고 고하는 등 민족의 단결을 강조했다.
조씨는 "이 부분을 읽어볼 때면 항상 새로 가슴이 뛴다"면서 "독립을 향해 얼마나 간절한 마음이었을지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대한민국의 독립 지원을 미국과 영국 정부 등에 요청하기 위해 보냈던 수십장의 서한들, 외교문서마다 뚜렷이 남아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의 관인(官印), 광복 기념으로 제작된 엽서 등을 당시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정치·경제·교육의 균형을 통해 개인, 민족, 국가 간 평등을 이루는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창시한 정치철학가이자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을 지낸 조소앙 선생의 '임시정부 자료 보존'은 어쩌면 또 하나의 업적인 셈이었다.
조씨에게 조소앙 선생은 큰 조부다. 약 20년 전 조소앙 선생의 셋째 아들(조인제·독립장 서훈·1917∼1997)이 사망하면서 이 자료들을 넘겨받았다고 한다.
2016년 양주시 조소앙기념관 건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자료의 분류·스캔작업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생업까지 버리고 조소앙기념사업회에 모든 것을 헌신하고 있는 조씨가 현재 바라는 것은 딱 하나다.
자료들이 더는 훼손되지 않고 후대에 온전하게 남겨줄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조씨는 "최소 칠팔십년 이상 된 이 많은 자료를 개인이 다 보관, 복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문화재 지정 등 필요한 조치가 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잘 보관하라'고 하셨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꼭 지키고 싶다"며 "한지와 달리 양지는 쉽게 훼손될 수 있어 복원을 서둘러야 하는 만큼 문화재청 등에서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