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임미현 앵커
■ 대담 : 홍제표 기자
◇ 홍제표 >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다시 의심하고 있습니다. 볼턴 백악관 보좌관이 들고 간 노란 봉투, 이른바 '빅딜 문서'에 북한이 '합의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는 이유에섭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이번에 요구 수준을 크게 높여놨습니다. 그런데 만약, 가능성은 낮지만 북한이 미국 요구를 덜컥 수용한다면 이를 100% 검증할 방법이 있을까요? 만약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은 북한 최고인민회의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런 근본적 문제에 초점을 맞춰볼까 합니다.
◆ 임미현 > '완전한 비핵화'를 해도 이를 '완전하게'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인가요?
◇ 홍제표 > 현재 기술로는 100%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그나마 플루토늄은 시료 채취 방식으로 꽤 신뢰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농축 우라늄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북한이 제공하는 데이터에 의존해야 하는데, 북한이 성실하게 신고를 한다고 해도 그 데이터 자체를 믿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데이터 관리를 제대로 해왔는지 신뢰할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안진수 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책임연구원의 말입니다.
"검증할 방법이 없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공장에서 농축우라늄을 얼마나 생산했는지는… 가동 초기부터 여러 가지 모니터를 가지고 쭉 해오지 않는 이상 사후에 얼마 생산했는지 검증할 방법은 현재까지 없다."
이런 어려움을 감안해 미국에서 GIRM(원자로 감속재인 흑연 중에 함유된 불순물 동위원소들의 변화) 방식이 개발됐지만 이 역시 오차범위가 약 3%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황주호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도 "북한 자료는 신뢰하기 어렵다. 의도적으로 조작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렇다"면서 "충분히 믿을 만한 검증으로 방향을 정해야지 100%냐 아니냐 하기 시작하면 (문제를 풀기가) 어려워진다"고 말했습니다.
◆ 임미현 > 그렇다면 설령 비핵화가 이뤄져도 '신뢰의 위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뜻인가요?
◇ 홍제표 > 그렇습니다. 이런 기술적 한계 때문에 북한을 믿고 싶어도 믿을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북한이 핵무기 1~2개 정도는 숨겨 놓았겠지 라고 의심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 정도 소량의 핵무기는 '자살용'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하지만 매우 찜찜하겠죠. 핵무기를 1~2개만 숨겨놓았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북한 전역을 샅샅이 뒤지려 할 것이고 북한은 당연히 반발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즉 신고와 사찰·검증 과정에서 비핵화 프로세스가 중간에 파탄 날 위험이 상존합니다. 더구나 미국은 하노이 회담 이후 이른바 '최종 상태'라고 하는 비핵화 정의의 기준을 매우 높여놨습니다. 북한이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워진 셈입니다.
◆ 임미현 > '비핵화의 정의'를 놓고 미국과 북한, 심지어 한국의 생각도 각각 다르다는 지적은 많이 나왔었는데, 다시 문제가 되겠군요?
◇ 홍제표 > 비핵화의 정의, 즉 비핵화가 된 최종 상태(end state)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에 합의하는 것은 비핵화 협상의 시작점입니다. 하지만 이른바 하노이 회담 이후 상황은 오히려 지난해 싱가포르 합의 이전으로 후퇴했습니다. 북한이 제재에 취약점을 드러내자 미국은 생화학 무기까지 비핵화 폐기 목록에 넣으면서 압박을 대폭 강화한 것입니다.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볼턴의 '노란 봉투'에는 핵무기를 미국으로 넘길 것과 핵과학자들을 민간 분야로 전직시킬 것 같은 굴욕적 내용이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은 여기에 동의를 해야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는 기세등등한 태도입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입니다.
"(이제는 북한이) 미국과 최종상태에 대한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에 동의를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그런 문서에는 동의는 못하면서 여전히 비핵화 진정성은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국 설득이 가능 하느냐 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문제가 됐다"
◆ 임미현 > 미국 입장이 이처럼 완강하니, 북한으로선 물론 달갑지 않겠지만 정말 의지가 있다면 받아들일 수도 있는 문제 아닌가요?
◇ 홍제표 > 상식적으로 보면, 생화학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WMD)는 핵무기만큼이나 위험한 것이니까 당연히 폐기돼야겠죠. 미국이 WMD를 폐기 대상에 추가한 것도 유엔 안보리 결의에 포함돼있기 때문이어서 나름 명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선 반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습니다. 예컨대 북한은 핵과 달리 WMD의 존재를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없는 WMD를 폐기하라는 것에 어떻게 동의하느냐는 것이죠. 북한은 미국이 WMD를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끝내 WMD를 찾아내지 못한 전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에 대해 '강도 같은 요구'를 한다고 비판하는 배경입니다.
◆ 임미현 > 우리가 뭔가 중재안을 마련해야 할 텐데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습니다.
◇ 홍제표 > 북미 간에 협상력 차이가 더 벌어진데다 미국이 요구 수위를 더 높여놨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협상 타결과 합의 이행 방식에 있어서는 최소한 한미 간에는 조율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제재 완화에 반대하고 있지만 최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이 핵을 한 번에 포기할 것이란 생각은 환상"이라며 단계적 접근을 강조했습니다. 한미 간 물밑 교감 없이는 나오기 힘든 발언입니다. 이에 반해 '비핵화의 정의'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부분입니다. 일각에선 WMD는 남북 군축과 평화체제 완성 단계로 넘기는(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등의 창의적인 해법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100% 검증이라는 불가능한 목표에 집착하기 보다는 신뢰 형성을 통해 핵이 필요 없도록 하는 게 더 '완전한' 비핵화라는 점이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어제 비핵화의 정의와 로드맵에는 한미간 의견이 일치한다고 밝힌 것은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입니다. 다만 그 의미가 "한미간 이견이 없다"는 식의 외교적 수사에 그친다면 정작 북한 설득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