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한미 정상이 만나 북핵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발신하고 북미 비핵화 협상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지 가늠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은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고 관련 기사도 찾아보기 힘들다.
워싱턴 조야에서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리는 전문가 좌담회 등이 거의 실종되다시피 했다. 회담 바로 전날인 10일 보수성향의 헤리티지 재단이 한반도 관련 좌담회를 열기로 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이벤트도 없다.
'증거불충분'으로 결론이 난 뮬러 특검보고서 요약본 발표 이후 미국 정치권은 여야가 보고서 전문 공개 여부를 놓고 정치 공방을 벌이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더해 멕시코 국경장벽 문제, 오바마 케어 폐지 문제 등 민감한 이슈를 재점화하면서 미국 국내 정치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또 밖으로도 리비아에서 군사충돌이 벌어지고 있고, 미국은 8일(현지시간) 이란 정부의 정식 군대인 혁명수비대를 국제테러조직으로 지정하면서 이란에 대한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 대외정책의 관심도 중동 쪽으로 쏠리는 모습이다.
지난 2일 국무부는 댄 설리번 부장관은 프랑스 디나르에서 열리는 G7 외교장관 회의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 결과를 알리는 보도 자료에서는 북한에 대한 언급은 빠졌다. 그만큼 미국이 대외정책에서 다뤄야할 긴급 사안들이 늘어났다는 반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관계가 좋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아직은 판이 깨지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계속 발신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최근 언론 인터뷰 때마다 "3차 북미 정상회담이 머지않아 열리기를 희망한다"며 회담재개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하노이 회담 직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연일 방송에 얼굴을 내밀고 제재 강화를 외치던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다. 게다가 지난달 29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금 시점에서는 추가제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교통정리를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하노이에서 만났을 때 핵무기와 핵물질, 핵시설은 물론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 등에 대한 일괄타결 방안을 적은 문서를 내민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2일 연설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당시 합의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결국 북한이 더 준비를 해 와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선희 부상은 지난달 15일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두 지도자 사이의 궁합은 신비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강조하면서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계산법이 참으로 이상하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강도적 입장에 맞서 하노이에서 제안한 영변 핵시설 폐기에서 더 물러서지 않겠다고 천명한 상황이다.
결국 미국과 북한 모두 판은 깨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먼저 나서지도 않고 지켜보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의 동력을 어떻게 되살려 낼 것인지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관건으로 떠올랐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의 말을 종합해 보면, 우리 정부는 미국과 비핵화의 최종 목표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하고 이른바 '포괄적인 합의'를 지지하면서도, 이를 실제로 달성해 나가는 것은 단계적으로 해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절충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절충안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지, 더 나아가 협상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카드로 활용하는데 동의할지 주목된다.
아울러 한미 정상회담 직전인 오는 11일 열리는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내놓을 메시지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분위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