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강원 옥계면 도직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생명의 은인으로 마을 이장을 꼽았다.
마을 주민 정인교(73)씨는 "5일 새벽 아내랑 둘 모두 잠들어 있었는데, 이장님이 문을 두드리며 '불이 났으니 빨리 대피하라'고 깨웠다"며 "이후 이장님은 바로 다른 집으로 뛰어 가시더라"고 다급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다른 마을주민 김정란(62.여)씨는 "동네에 어르신들이 많이 있는데 이장님 아니었으면 정말 대참사로 이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묻자 그는 "마지 전쟁터 같았다"며 집에서 화재 소식을 듣자마자 마을 초입에 있는 마을회관으로 달려가 대피 방송부터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거센 바람 때문에 소리가 마을 위쪽까지 전달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에 다급해진 그는 무작정 뛰어 올라가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김 이장이 깨워서 대피한 주민 8명 중 6명은 집을 잃었다. 김 이장이 아니었다면 끔찍한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주민 김진남(68.여)씨는 "정말 이장님 덕분에 살았다"며 생명의 은인이라 불렀다.
김 이장은 일직선으로 약 1km에 달하는 마을 전체를 수차례 오가며 미처 대피 못한 마을 주민은 없는지 확인했다. 매캐한 연기가 마을을 뒤덮고 불씨가 날아다녔지만 주저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만난 김 이장은 여전히 바빠 보였다. 인터뷰 도중에도 '지금 물탱크를 쓸 수 있느냐', 발전기가 불에 탔다'는 마을 주민들의 민원을 접수하고 있었다.
도직리 마을은 옥계항 인근에 4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처음 화재가 발생한 남양리와는 약 10km 떨어져 있다.
지난 4일 밤 오후 11시 46분에 남양리에서 난 불이 도직리까지 오기까지는 불과 1시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번 산불로 도직리 마을에서만 12가구가 완전히 불에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