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한국군 학살...내 몸 총상이 진실을 말합니다"

베트남 퐁니학살 생존자, 4.3 특별상 받아
8살에 한국군이 쏜 총에 가족들 잃어
"배에 창자 튀어나온 채 엄마 찾아 헤맸죠"
103인 증언 모아 靑 청원.."진상규명부터"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응우옌 티 탄(베트남 퐁니마을), 구수정(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


지금 제 옆으로는 특별한 손님 두 분이 와 계십니다. 얼마 전에 제주 4.3 평화상 수상자로 베트남인 2명이 선정이 됐는데요. 베트남전 당시에 한국군 일부는 민간인 학살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아마 다들 잘 아실 거예요.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 80여 건이 되고요. 피해자 수는 약 9000여 명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 학살 속에서 살아남은 베트남인 생존자 2명이 이번 4.3 평화상을 한 건데요. 이분들은 지금 평화 활동가로 활동 중이십니다. 상을 타러 한국에 온 베트남인 두 분 중에 한 분을 오늘 스튜디오에 모셨어요. 베트남 퐁니마을에 사시는 응우옌 티 탄 씨 안녕하세요. 그리고 그 옆으로는 이분들과 함께 진상 규명 활동을 무려 20년 동안 하고 계신 분이세요. 한베평화재단의 구수정 상임이사. 오늘 통역도 함께 도와주실 겁니다. 어서 오세요.

◆ 구수정> 반갑습니다.

◇ 김현정> 반갑습니다. 먼저 응우옌 티 탄 씨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 응우옌 티 탄> 고맙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상을 타셨으니까 축하를 드리기는 드리면서도 제가 환하게 웃을 수가 없는 게 한국군의 학살을 증언하고 세상에 알리고 이런 활동을 평가받아서 수상하신 거죠?

◆ 응우옌 티 탄> 네. 수상 소식 전해 듣고 참 많이 감격을 했습니다. 더구나 감격스러웠던 것은 제가 작년에 제주를 방문했었습니다.

◇ 김현정> 증언을 하러 오셨던 거죠?

◆ 응우옌 티 탄> 그렇죠. 작년에 시민 평화 법정 끝나고 제주 4.3 생존자분들을 제가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제주가 주는 상이라서 훨씬 더 감격스러웠고 굉장히 영예로웠습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그러니까 지난해에 우리나라에 와서 베트남전 당시에 응우옌 티 탄 씨가 직접 겪었던 일을 증언을 하신 거잖아요. 그게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줬고 1968년 2월 12일 그때가 몇 살이셨던 거예요?

◆ 응우옌 티 탄> 그때 저는 겨우 8살이었죠.

◇ 김현정> 겨우 8살. 퐁니, 퐁넛마을에서 일어난 일들. 8살이면 사실은 우리가 기억이 가물가물할 수도 있는데 너무도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에 지금 아직도 생생하시다는 얘기예요.

◆ 응우옌 티 탄> 맞습니다. 그날 저희 퐁니, 퐁넛마을에서 모두 74명이 희생이 되셨는데요. 그중에 내 가족 5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런 사건입니다. 어머니 그리고 이모요. 그리고 제 언니, 남동생 그리고 이모의 아기가 있었습니다.

◇ 김현정> 지금 그 얘기를 하시면서도 응우옌 티 탄 씨 아마 수없이 이야기를 하고 또 하셨을 텐데도 또다시 울먹이세요. 지금 눈가가 촉촉해지시는데.

◆ 응우옌 티 탄> 제가 아마 100번 이상 이런 증언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날을 상기할 때마다 눈물을 참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생존자 등이 청원서 제출에 앞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김현정> 그러니까 사실 그때 한국군이 찾겠다고 했던 것, 수색하겠다고 했던 건 베트남 군인들인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응우옌 티 탄 씨의 가족들은 돌도 안 된 아기, 5살 등. 어떤 식으로 학살을 한 거예요?

◆ 응우옌 티 탄> 그날 총소리가 요란했습니다. 그리고 한국군들이 우리 마을로 닥쳐왔어요. 너무 총소리가 나니까 이모가 우리 아이들한테 방공호로 피하라고 했죠. 그래서 방공호로 들어가 있었는데 결국에는 한국군이 저희 집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수류탄을 보이면서 모두 다 올라오라고 했어요.

◇ 김현정> 방공호에서 올라와라. 안 그러면 수류탄 던지겠다.

◆ 응우옌 티 탄> 네. 던지겠다고. 나가는 족족 총을 쐈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응우옌 티 탄 씨는 그래도 어떻게 살아나셨네요, 그 가운데서.

◆ 응우옌 티 탄> 언니는 집 문간에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5살 남동생은 입에 총을 맞았어요. 그래서 입이 다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복부에 총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쓰러졌는데 계속 누워서 꼼짝 않고 죽은 척하고 있었죠.

◇ 김현정> 응우옌 티 탄 씨도 총을 맞으신 거네요.

◆ 응우옌 티 탄> 한국군이 떠나고 나서 막냇동생이 제일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서 막냇동생한테 먼저 달려갔는데 막냇동생은 숨을 쉴 때마다 입으로 벌컥벌컥 피를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엄마를 찾아서 걸어가다 보니까 마을이 온통 불타고 있었는데 집 한 채가 멀쩡했어요. 한국군이 그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물소 한 마리가 한국군을 계속 치받으면서 결국 한국군이 그 집을 못 들어가고 그 집에 들어갔을 때 살아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거죠.

◇ 김현정> 그 한 채 남아 있던 그 집.

◆ 응우옌 티 탄> 그래서 너무 기뻤거든요. 그런데 부엌에 들어가서 목이 굉장히 말랐어요. 그래서 물을 한 컵을 벌컥벌컥 마셨는데 그 물을 마시자마자 뱃속에서 창자가 다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쏟아져나온 창자를 움켜안고서 엄마를 찾아서 왔었죠.

◇ 김현정> 그런 거군요. 지금 보면 말입니다. 우리 구수정 이사께서는 많은 피해자들을 만나고 다니셨는데 저도 기록들을 쭉 보면 말이죠. 대부분이 이렇게 누가 봐도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 그중에서도 아이, 어른, 노인. 왜 이렇게 무차별로 학살을 한 거예요? 왜 그렇게 그런 희생자들이 많습니까?

◆ 구수정> 지금 퐁니마을에서 모두 74명이 죽었는데 그중에 한 절반 정도는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같이 오신 하미 같은 경우도 절반 이상이 10세 미만의 어린이들이에요.

◇ 김현정> 하미마을의 응우옌 티 탄님이 또 오셨어요. 거기는 절반 10세 미만이요?

◆ 구수정> 그러니까 설사 들어가서 총을 쏘다가 어린아이네, 아기네라고 했다면 당연히 멈췄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게 한두 명을 오인 사살을 했다거나 그런 경우가 아니거든요. 100명이 넘는. 하미 같은 경우 135명의 주민을 모아놓고 그렇게 살해를 하는데 그들의 대부분이 어린아이였고 여성이었고 노인이었다는 것은.

◇ 김현정> 그래서 학살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그래서 학살이라고 하는 건데 구수정 이사께서 이런 피해자들, 증언자들을 모아서 청와대에 어제 청원을 내셨어요. 몇 명이나 만나셨어요? 몇 명의 증언을 모으셨어요?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이사(왼쪽)와 베트남 퐁니마을 학살 생존자 응우옌 티 탄 씨(가운데). (사진=김광일 기자)

◆ 구수정> 3월 1일부터 15일까지니까 보름 동안 제가 모두 16개 마을을 다녔습니다. 만나기는 피해자분들 수백 명을 만났는데 그분들이 모두 청원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 김현정> 자격 조건이 정해져 있다고요?

◆ 구수정> 그렇죠. 직계 존비속만 가능했는데요.

◇ 김현정> 희생자의 직계 존비속.

◆ 구수정> 이렇게 피해자의 경우에는 본인이 부상이 있는 경우. 그렇지만 학살 현장에서 살아나신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예를 들면 이번에 청원을 하신 분들인데 빈호아 학살이라고 있습니다. 빈호아 학살에는 모두 한 11명 정도의 생존자분들이 계신데.

◇ 김현정> 거기는 빈호아 마을인가요?

◆ 구수정> 한국군 증오비가 있는 마을입니다. 그런데 그 마을의 생존자 11명 중에서 한 80%가 당시 1살 미만의 아기였습니다. 그 얘기는 뭐냐 하면 어머니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아기를 감싸는 거예요.

◇ 김현정> 엄마가 총 맞으면서 아기를.

◆ 구수정> 그렇죠. 아기는 살리는 거죠,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데 이런 분들은 부상이 없으면 청원이 불가능합니다.

◇ 김현정> 증거가 있어야 되는군요, 몸에. 그런데 얘네들은 1살 미만이었고 엄마가 꼭 안고 있었으니까 부상은 없고.

◆ 구수정> 엄마가 꼭 안고 있으니까 부상은 없죠.

◇ 김현정> 그러면 청원 못 해요?

◆ 구수정> 청원 못 하죠. 그래서 이런 분들이 굉장히 억울해하셨어요. 우리 어머니가 나를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목숨을 바쳐서 구했고 나는 그 현장에 있었는데 내가 왜 청원 자격이 없느냐. 이러면서 굉장히 많이 억울해하셨고요. 형제자매들이 5명, 6명씩 죽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 청원이 안 되세요. 직계 존비속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분들 중에서 청원이 가능하셨던 분이 모두 103분.

◇ 김현정> 103명, 백세 분의 청원을 모아서 청와대에다 청원을 넣으신 겁니다. 그분들 중에는 나는 청원에 참여 안 하겠소. 이런 분도 계셨다면서요? 그건 왜 그렇습니까?

◆ 구수정> 이분은 당신의 가족이 모두 10명이 학살로 희생이 됐고 그리고 또 막내였는데 태어난 지 1개월 8일 된 막내는 그 학살 현장에서 실종이 됐다고 합니다.


◇ 김현정> 1개월이요, 한 달이요?

◆ 구수정> 한 달하고 8일. 그래서 당신의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머리를 막 부딪치면서 가슴을 치시면서 굉장히 많이 우셨어요.

◇ 김현정> 그런데, 그런데 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청원에는 이름을 안 넣겠다. 왜?

◆ 구수정> 제가 청원서를 딱 들이밀었을 때 뭐라고 말씀하셨냐 하면 나는 한국 정부에 구걸하고 싶지 않다. 한국 정부가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요. 청원이 그런 의미가 있죠. 저희는 요구를 하는 건데 이분은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아진 사연들, 청원자들을 모아서 103명, 103명. 구수정 이사께서 20년 동안 그 많은 분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사연은 어떤 건가요?

◆ 구수정> 20년 전에 베트남 중부의 마을마다 들어갔을 때 제가 민간인 학살 이후 30년 만에 처음 나타난 한국 사람이었어요. 이번에 다시 갔을 때 많은 분들께서 왜 이제야 왔냐고 굉장히 많이 기다리시다가 돌아가셨다고 그렇게 말씀들을 많이 하셨어요. 이번에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그래도 아직 살아계셔서 지금 93세 응우옌리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 만났던. 이제는 듣지도 잘 못하시고 잘 보지도 못하시는데 저를 알아보셨습니다.

◇ 김현정> 세상에...

◆ 구수정> 가족들이 그 할아버지 귀에다 대고 한국에서 왔어요. 이러는 순간에 구수정이 왔구나 하셨어요.

◇ 김현정> 이름까지 기억을 하세요?

◆ 구수정> 구수정, 구수정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그 할아버지께 제가 너무 죄송하게도 할아버지 조금만 더 살아주세요, 조금만 더 건강하세요.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할아버지께서 나더러 20년을 더 기다리라고? 또 20년을 기다리라고 하셨을 때 참 많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 김현정> 그러셨겠네요. 청와대에다 청원은 넣었는데. 물론 엄격한 자격 조건을 갖춘 분들만 사실은 더 많이 넣고 싶지만 못 넣으셨던 거잖아요. 그렇게 해서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배상까지 하려면 어떤 법적인 근거가 있어야 될 것 같은데 이게 가능할까 싶어요. 워낙 오래된 일이라.

◆ 구수정> 이 청원서에 피해자분들이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진상 조사입니다. 진상 조사를 통해서 진실이 규명된다면 일단 한국 정부가 시인해라. 그 사실 인정과 동시에 당연히 한국 정부의 공식 사과가 있어야겠죠. 배상은 그 이후의 문제죠. 베트남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이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야지만 다시는 이 땅에, 그리고 다시는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재발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응우옌 티 탄 씨 언제 베트남 돌아가세요?

◆ 응우옌 티 탄> 6일에 베트남으로 돌아갑니다. 103명의 청원서를 청와대에 전달하기 위해서 왔었는데요. 아마 저는 빠른 시간 안에 제가 한국을 다시 오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응답을 들으러.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생존자 등이 청원서 제출에 앞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김현정> 그래요. 응우옌 티 탄 씨. 듣고 계시는 한국의 청취자들께 한국인들께 꼭 하고 싶은 말씀 있다면 마지막 한마디 해 주시죠.

◆ 응우옌 티 탄> 저는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생존자고요. 제 몸에 증거가 있습니다. 저의 진실을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응우옌 티 탄 씨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원하시는 대로 응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라고 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응우옌 티 탄> 이렇게 초청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를 겪은 퐁니, 퐁넛마을의 생존자세요, 피해자세요. 응우옌 티 탄 씨. 그리고 오늘 통역과 해설에는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이사 함께해 주셨습니다. 이사님, 고맙습니다.

◆ 구수정> 고맙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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