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미스트롯'이 얻은 것과 잃은 것

시청률·화제성 잡으며 승승장구
'미스코리아' 콘셉트 이용한 선정성·여성상품화 논란
"트로트는 가볍다는 편견 부추길까" 우려도 나와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 (사진=방송화면 캡처)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이 매회 시청률을 경신하며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5회 만에 1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높은 화제성을 보이고 있지만 열풍 뒤로 드리워진 여성 상품화와 트로트에 대한 편견의 공고화 등 그림자 또한 크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기획 서혜진, 연출 문경태·박찬희, 이하 '미스트롯')이 계속된 상승세 속에 지난 28일 5회 방송에서 시청률 9.421%(닐슨코리아 제공, 유료방송가구 전국 기준)를 기록했다.

'미스트롯'은 '날로 뜨거워지는 대한민국 트롯 열풍에 화력을 더하고 제2의 트롯 전성기를 이끌 차세대 트롯 스타를 탄생시킬 신개념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기획 의도 아래 서바이벌 방식의 오디션을 진행한다.


참가자는 모두 여성이다. '고등부' '대학부' '직장부' '현역부' '걸그룹부' '마미부' 등으로 나뉜 여성 참가자 100명이 이른바 '트로트'로 불리는 전통가요 혹은 가요를 부르면, 가수 장윤정·노사연·이무송·신지·김종민·남우현(인피니트)·소희('프로듀스 101' 출신)·트로트 작곡가 조영수·방송인 박명수·장영란·붐·멕시코 출신 크리스티안 등 12인의 '마스터'가 참가자를 평가한다.

◇ 여성 성상품화 상징 '미스코리아' 콘셉트 차용

K팝이라 불리는 젊은 음악이 대중문화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스트롯'이 고단한 세월을 함께하며 역사와 애환을 담아 온 성인가요, 트로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전통가요 활성화를 불러일으킨 점은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 '활성화'의 방법이다.

'미스트롯'은 우리에게 '트로트'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전통가요(이하 '트로트'로 총칭)와 '여성'을 지나치게 '상품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100인의 여성 참가자 서바이벌은 '미스코리아' 경연 형식을 빌렸다. 각기 다른 형태의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 '미스트롯'이라 적힌 하얀 띠를 두르고 카메라 앞에서 노래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어필한다. '탈코르셋'이라 불리는 움직임까지 등장할 정도로 여성의 성상품화를 경계하는 시대에서 이 같은 콘셉트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과거 연예인 등용문이라 불리기도 한 미스코리아는 여성을 '성상품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폐지 요구를 받고 있다. 이에 지상파는 지난 2002년 미스코리아 대회 중계방송을 포기했으며, 2004년에는 수영복 심사가 폐지됐다. 물론 이후 2012년 수영복 심사가 부활했다. 예전만큼의 영향력은 줄었지만 미스코리아 폐지 요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성평등과 젠더 감수성에 대한 인식이 2002년보다 높아진 현실에서 여성 상품화의 상징적 유물인 '미스코리아 대회'를 차용한 것을 두고 시대 상황과 사회 변화를 잊은 콘셉트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여성 상품화 논란을 부르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여성 참가자들은 짧은 치마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노래 외에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다만 고등부 참가자들은 노출 있는 옷은 피했지만 짙은 화장을 하고 나온다. 카메라가 자신을 향할 때는 섹스어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다시 하는 줄 알았다. 일부러 그런 옷을 입히고 포즈를 취하게 만드는 것들이 현실적으로 지금 시대에서 지나치게 퇴행적이라 보기 불편한 지점이 많다"라며 "TV조선이라는 굉장히 보수성 짙은 채널이 선정적인 부분을 전면에 내세워서 시청률을 가져가는 형태인데, 그렇게 얻어내는 시청률이 과연 의미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 '트로트는 가볍다'는 대중의 편견 커질 우려도 존재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 (사진=방송화면 캡처)
노래 외적인 퍼포먼스도 중요해진 만큼 이들의 스타성을 보겠다는 의도지만, 선정성 짙은 콘셉트는 오히려 '트로트'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공고화시킬 우려도 존재한다.

흔히 '트로트'로 알려진 대중가요, 전통가요에 대해 일각에서는 가벼운 음악, 행사용 음악, 화려하거나 야한 옷을 입고 부르는 오락을 위해 존재하는 음악 등의 편견을 갖고 있다. 트로트 가수들조차 트로트가 가진 편견으로 힘든 점을 토로하며 왜곡된 인식을 깨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가수들 사이에서도 트로트를 대체할 수 있는 우리말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미스트롯'의 시도는 이 같은 노력이 무색하게 트로트는 여전히 가볍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KBS1 '가요무대'를 집필하며 전통가요의 명맥을 잇고 있는 최헌 작가는 "일상에서 트로트라 부르지만 트로트는 하나의 리듬일 뿐 전통가요 전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100여년 시간을 지나오며 역사와 시대를 담은 노래가 전통가요"라며 "가수에게 스타성도 중요하지만 '미스트롯'은 노래보다는 보이는 것에 신경쓰다 보니 시청률을 끌어들일 수 있는 여러 가지 선정적인 요소도 집어넣고 있다. 하나의 '상품화'처럼 보이는 그런 시도들이 잘못하면 가요를 왜곡시키고 음악이 갖는 본질을 놓칠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작가는 "한국 가요가 점점 노쇠해 가고 있고 스타가 계속 발굴되지 못하는 등 어려운 시기"라며 "좋은 노래와 젊은 친구들을 제대로, 의미 있게 조명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 참가자들의 실력과 절실함 가린 선정성…시청률만이 성취 아냐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 (사진=방송화면 캡처)
'미스트롯'에 선정성만 있는 건 아니다. 분명 실력 있는 참가자들이 존재한다. 문희옥의 '사랑의 거리',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주현미의 '정말 좋았네', 김용임의 '훨훨훨' '사랑님', 나훈아의 '무시로', 설운도의 '사랑의 트위스트' 등 다양한 트로트를 부르며 자신의 노래 실력을 선보인다.

짧은 치마를 입고 섹시한 춤을 춰야지만 '트로트 가수'가 될 수 있는 건 분명 아니다. 실력자들이 선정성에 묻히기 아까운 경우도 '미스트롯' 안에 많이 보인다. 저마다의 절절한 사연과 절실한 의지로 참가하는 것이 '오디션'이라고 한다면, '트로트'라는 척박한 대중문화에 뛰어든 이들의 절실함을 이용해 선정적으로 이끈 책임은 결국 프로그램에 있을 것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오디션에 걸맞지 않은 심사위원에게 오디션에 올라오는 분들의 절실함을 맡길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또한 트로트가 가진 굉장히 한국적인 정서나 음악적 가치를 빼고 우리는 흔히 '뽕짝'이라 이야기하는 인식틀 안에서 트로트를 소비하고 있다"라며 "오디션을 이런 방식이 아니라 조금 더 세련된 형태로 음악에 집중해서 했다면 트로트라는 장르 자체를 달리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 평론가는 "잘못된 선입견을 깰 수 있었을 텐데 '미스트롯'은 오히려 편견을 재생산하고 있다"라며 "지금 대중의 의식이나 감수성을 외면하고 단지 시청률이 높다는 것만으로 큰 성취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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