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제71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임치호(73)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억울한 사연을 털어놨다.
임 할아버지는 "내가 3살때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4.3의 광풍이 불던 시기라지만 우리 남매만을 남겨 두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심정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한탄했다.
임 할아버지는 "당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주로 지식인들이 수용됐던 목포형무소로 끌려가 1949년 11월쯤 돌아가신 걸로 추정이 된다"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 돌아가셨는지 몰라 행방불명인 묘비에 모셨다"고 말한 임 할아버지는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30세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4.3특별법은 희생자 배보상과 함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을 위해 불법 군사재판을 무효로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임 할아버지는 "진보가 뭔지, 보수가 뭔지 잘 모르지만 같은 국민으로서 국회의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말고 4.3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해서 아버지의 억울함도 풀어주고 4.3희생자들의 명예도 회복시켜 주면 좋겠다. 그래야 국민통합도 되는 것 아니냐"고 호소했다.
강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대전형무소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며 "심지어 아버지는 어머니가 임신한 사실조차 모른 채 잡혀갔다"고 한탄했다.
전춘자 할머니(74)는 "4.3 당시 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2명, 할머니까지 모두 5명이 돌아가셨다"며 기구한 사연을 털어 놨다.
전 할머니는 "아버지 형제 4명은 집에서 끌려가 모두 돌아가셨다. 당시 아버지가 27세였고 작은아버지는 21세였다"고 말했다.
4.3 당시 작은아버지를 잃은 현영자 할머니(61)는 "살아있는 피해자들은 4.3사건의 후유증으로 삶에 지장이 많다. 마음의 충격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며 "4.3특별법 개정안이 꼭 통과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현 할머니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행방불명이 돼서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유족들은 후대가 알아주지 않으면 유족이라는 사실도 모르게 된다"며 "개정안이 통과돼서 후대에도 계속 연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