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임미현 앵커
■ 대담 : 홍제표 기자
◇ 홍제표 >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유와 관련한 최근 한 외신 보도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무기 등을 미국에 넘기고 전방위 사찰을 수용하라고 요구했다는 로이터 통신 보도입니다. 북한이 강력 반발해온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입니다. 미 당국이 특별히 부인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북미 핵협상은 지난해 6.12 싱가포르 합의보다도 훨씬 후퇴하게 되는 셈입니다. 오늘은 미국 조야에서 다시 부상하는 ‘핵 원리(원칙)주의’와 이에 따른 한반도의 4월 정세를 살펴볼까 합니다.
◆ 임미현 > 먼저, 핵 원리주의라고 했는데 이것부터 간단히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 홍제표 >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을 원칙으로 타협하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북한이 핵을 가진 것 자체가 잘못인데 왜 협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의 핵심이던 볼턴은 부시 행정부 때인 2002~03년 무렵에도 북한과 이란, 이라크, 리비아 등 6개 나라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초강경 압박 정책을 편 바 있습니다. 악마와는 거래(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되살아난 셈입니다.
◆ 임미현 > 북한이 매우 싫어할 법도 하겠네요.
◇ 홍제표 > 네. 잘 알려졌다시피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선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카다피는 미국의 말을 믿고 ‘선 비핵화’에 응했다가 사실상 무장해제 당한 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게 북한의 우려이고 일반적인 인식이기도 합니다. 이라크에서도 미국은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WMD)를 은폐했다며 전국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결국 찾아내지 못했지만 이와 상관없이 전격 침공해 정권을 전복시켰습니다. 안진수 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책임연구원의 말입니다.
“검증단이 다니면서 찍은 GPS 데이터로 토마호크 미사일을 개전 초기 아침에 9백 몇십발을 날렸죠. 미국의 그런 전력이 있기 때문에 북한은 절대로 그런 식으로 북한 전국을 뒤지는 검증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북한이 지난달 15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내세워 미국이 ‘강도적(gangster-like) 요구’를 했다고 날선 비판을 가한 것은 이런 배경입니다. 볼턴은 지난해 4,5월에도 ‘리비아 모델’을 언급하며 북한 핵무기를 테네시주 오크리지 핵연구단지로 가져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당시에도 ‘강도적 요구’라며 반발했습니다.
◆ 임미현 > 미국 입장이 이런 것이라면 우리 한국과도 입장 차가 꽤 있는 것 아닌가요?
◇ 홍제표 > 북미뿐만 아니라 한미 간에도 간극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는 11일 한미정상회담이 열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입니다. 청와대는 보름 전까지만 해도 “이번엔 남북이 대화할 차례”(3월17일 청와대 고위관계자)라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철수 소동을 벌이는 등 우리 측에 불만을 보이며 응하지 않자 한미회담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오는 1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새로운 길’ 노선을 굳히기 전에 어떻게든 비핵화 협상 동력을 되살리겠다는 것입니다. 한미 정상회담을 같은 날짜에 잡은 것은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지만, 그만큼 한반도의 4월 정세가 다급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 임미현 > 그럼 이번 한미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나와야 남북, 북미회담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선순환 구도’가 만들어질텐데, 전망은 어떻습니까?
◇ 홍제표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한미 외교장관회담 결과에 대해 양국의 지향점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어제 정상회담 의제 조율 결과에 대해 “잘 됐다”고 말했습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영변 핵시설 이상의) 포괄적 논의를 통해 접근한다면 제재완화 문제도 논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우리의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과 미국의 ‘일괄타결’ 해법이 절충 가능함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한미 간 균열 획책 시도에 경종을 울렸듯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튼튼한 한미공조를 재확인하는 것에 1차적 목표를 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북한을 설득할 중재안을 도출한다는 목표에서 본다면 여전히 어려운 숙제가 남아있습니다.
◆ 임미현 > 미국도 목표치를 낮춰야 할텐데 이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겠죠.
◇ 홍제표 > 우선, 비핵화의 정의가 무엇이냐, 다시 말하면 비핵화의 최종 상태(end state)가 어떤 모습이냐에 대한 합의가 걸림돌입니다. 미국은 WMD까지 제거한 상태를 요구하는데 다수 전문가들은 이럴 경우 북한의 수용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이를 수용하게 되면 그동안 부인했던 WMD 존재를 실토하는 셈인데다, 과거 이라크 사례에서 보듯 끝없는 은폐 의혹과 전방위 사찰 압력으로 이어질 것이란 게 북한의 우려입니다. 미국이 북한에는 전면 핵폐기(일괄타결)를 요구하면서도 그에 상응한 보상을 마찬가지로 단번에 해줄 수 있는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예컨대 북한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안전보장은 최소한 북미 수교가 이뤄져야 가능한데 이는 미 의회 승인 사항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긴 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보장할 방안을 제시했는지는 의문입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으로선 ‘외상 거래’를 하는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포괄적 합의든 빅딜이든 합의가 가능하려면 최종 단계에서 일방적으로 미국이 과도하게 북한의 비핵화만을 요구하는 것들이 상당 부분 재조정될 필요가 있고, 한편으론 미국 스스로도 이행 가능한 그에 상응한 조치들을 해줄 구체적인 것들이 명시돼야만 이 두 가지 비핵화와 상응조치의 구체성을 통해서 포괄적 합의와 빅딜이 가능하다고 본다.”
결국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성패는 미국의 이상적 목표는 존중하면서도 미국이 납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절충안을 찾아내는 것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굿 이너프 딜’을 괜찮은 해법으로 평가하면서도 보다 정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정도 비가역적 비핵화가 이뤄지면 나머지는 세계경제 편입에 따라 자연 도태가 가능하다는 점 등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