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키스 패밀리'(감독 김지혜)는 지난 2017년 제작돼 올해 봄에야 관객들을 만났다. 금실 좋은 부부와 4차원 같은 매력을 뽐내는 가족의 유쾌한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자주 부침이 있었다. 19금 섹시 코미디로 가는 게 어떻냐는 회유가 많았다.
김지혜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배우들은 '썬키스 패밀리'만이 지닌 순수하면서도 엉뚱한 특유의 분위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그 뜻에 동의한 투자사를 만나 본래 취지가 크게 손상되지 않은 채로 완성됐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예산이 적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지혜 감독은 "한 컷 내지는 두 컷까지밖에 갈 수 없었던 것"을 가장 큰 아쉬움으로 꼽았다.
한 해에 셀 수 없이 많은 영화가 개봉하지만, 여러 여건상 관객들은 아주 소수 작품의 개봉만을 인지하는 현실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쉽지 않지만, 관객들이 작은 영화에도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도 전했다.
일문일답 이어서.
▶ 작품의 화자인 막내딸 진해 역의 이고은을 비롯해 배우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고은 양 캐릭터가, 본인 자체가 그런 것 같다. 완전 순수 덩어리다. 저희끼리 그랬다. '(진해가) 있는 그대로 고은이 모습 같지 않아?'라고. 남자친구 역이었던 한빈이(동식 역)도 비슷한데 실제가 좀 더 귀엽다. 어떤 순간에 진지함이 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랄까. 영화 찍으면서 저한테 유일하게 '감독님, 이건 아니에요'라고 한 사람이다. 저는 OK를 했는데. (웃음) 이준익 감독님도 '이거 한 번 찍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부탁하셨는데 한빈이는 '감독님, 이건 아니에요! 한 번 더 갈게요'라고 했다. (웃음) '이건 너무 말이 빨라요. 여운이 있어야 돼요' 이런 것도 얘기한다. '여기하고 여기하고 마가 너무 뜨잖아요. 한 마디만 더 하면 안 돼요?' 이러는데 감으로 아나 보다. 타고난 아이들을 만났다.
고은이랑 한빈이가 같이 알콩달콩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별다른 대사가 없었다. 그때 고은이가 갑자기 '감독님, 제가 여기서 아무 말도 안 하나요? 너 왜 이렇게 많이 먹냐? 라고 말하면 어떨까요?'라고 하더라. 그러라고 했다. (웃음) 한빈이는 '야, 이거 봐~' 하면 자기가 가져가보는 게 맞다면서 애드립을 했다. 너무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희순 선배님, 진경 선배님, 슬혜님, 보라님, 상훈님, 성범님 다 너무 편안하게 자유롭게 해 주셨다. 강압적이거나 이런 분위기가 아니어서 진짜 재미있게 찍은 것 같다.
마침 큰소리가 나면 앵무새가 (따라) 얘기한다는 설정이었는데, 슬혜 님이 그 좁은 녹음실에서 '아~ 오빠!' 이걸 한 시간을 하셨다. 얼굴 시뻘게지면서. 빠르게도 하고 톤도 바꾸면서 하고. 고생하셨다.
▶ 언론 시사회 때도 '출산 장려 드라마 같다'는 평이 나왔는데, 이 같은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스토리로 보자면 유미 얘기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갱년기를 맞았고, 생리를 하지 못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족들마저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하니까 고립된 느낌을 받는 거다. '왜 너희들은 나를 배려하지 않는데?' 하고. 그 나이대 여성분들이 겪는 고독함이 있는 것 같다. 가족이 서로 화해하고 화목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면 몸 상태도 변한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행복하게 지내고 웃고 떠들다 보면 좋아지고, 그만큼 가장 근본은 사랑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었던 거다.
유미가 엄마한테 '엄마, 나도 (생리) 했다 안 했다 해. 엄마 딸도 늙어'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40대~50대 여성들이 이런 고민을 남편이나 자식한테는 말하기가 힘들다. 그러니 왠지 쓸쓸하고 슬픈 마음이 드는 것 같다. 이런 걸 무겁지 않게 표현하고 싶었다. 유미가 생일파티에서 '왜 너희들을 나 신경 안 쓰는데!'라고 하는 장면에서 그 나이 또래분들은 울컥하셨다고 한다. 왜 거기서 상을 뒤집어엎을 정도로 화가 났는지를 이해해서가 아닐까. 극중 인물 중 어느 연령대와 가까운지에 따라서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거미줄과 거미가 나온다. 그 거미가 사실은 준호의 감정을 따라간다. 처음에는 정말 뭣도 모르고 준호가 걷어낸다. 자기도 모르게 미희를 만나서 집에 위기가 찾아오는 거다. 거미줄이 망가질 때마다 집안에 위기가 온다. 동식이가 후~ 불어서 거미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한 가장이 집을 지켜나간다는 건 정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제작비가 엄청 부족해서 거미줄을 CG로 만들 수 없었다. 나무젓가락 2개를 가지고 거미줄을 걷으러 다녔다. 거미줄을 저희 세트로 옮겨서 촬영했다. 하필이면 촬영이 다 밤에 잡혀서 밤에 그걸 했다.
▶ 제작비가 적었다고 언급했는데, 저예산 영화여서 감독으로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무엇인가.
너무 많다. 아, 가장 아쉬운 부분은 그거 같다. 한 컷 내지는 두 컷까지밖에 갈 수 없었다는 것. 배우분들이 훨씬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한두 번 안에 끊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 (배우들) 컨디션이라는 게 있지 않나. 48시간 풀로 찍고서도 한두 번 안에 끝내야 한다는 게 진짜 아쉽다. 배우 의상도 본인들이 준비해 온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소품도 그렇고. 엄청 많은 부분이 서운한 게 있다. 더 충분히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그게 잘 안 된 것 같아서.
영화 한 작품에는 엄청 많은 것들이 들어간다. 다 제작하고 나도, 후반 작업, 마케팅까지. 저희가 버스나 TV에 (광고) 나갈 수도 없고, (덜 알려지니) 관이 적고. 많이 속상하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나면 안 되니,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한 번 더 관심을 가져주시는 방법밖에는 없다. 요즘은 어떤 영화들이 있나, 하고 봐주시는 분들이 늘어서 다행이다.
감독도 그렇고 배우도 회사도 양극화되어버리면서 기회 자체가 너무 줄어드는 것 같다. 많은 배우가 갈 곳이 없고, 많은 작가와 감독이 글을 써도 쓰일 데가 없고, 이런 것들이 가슴 아프다. 영화 한 편은 짧은 시간 안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최소 1~2년 걸리고, 작은 영화는 (예산이 적어) 더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다. (많은 관객에) 보여줄 수 없다는 것 자체가 가슴아픈 일인 것 같다. 요즘 돌아다니면서 '썬키스 패밀리라는 영화 개봉한다는데 아세요?' 이러고 다니는데 아는 분이 거의 없었다.
▶ '썬키스 패밀리'가 어떤 이야기가 되길 바라면서 만들었는지, 또 관객들은 어떻게 보았으면 좋겠는지 이야기해 달라.
있는 그대로, 날 것 같은, 살아있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너무 잘 다듬어진, 완벽한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툭툭 얘기하다 보면 뭔 행동을 할지 무슨 말을 할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지 않나.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어릴 때 되게 생뚱맞게 했던 행동이나, 우리집에서도 있을 수 있는 그런 얘기를 담았다. 스토리를 잘 짜맞췄다기보다는 이야기를 툭툭 잘 던지고 싶었다. 그래도 지키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그건 진해의 시선이다. ('썬키스 패밀리'는) 어른들의 시선에 맞춰서 보는 영화는 아니다. 진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까지의 얘기였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