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고대 방패가 형태가 복원이 가능할 정도로 온전히 발굴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일 발굴 현장에서 간담회를 열어 월성 서쪽 A지구와 이에 동쪽으로 인접한 B지구 북쪽 1호 수혈해자 최하층에서 찾은 목제 방패 2점을 공개했다.
방패 제작 시기는 모두 340년부터 410년대 사이로 분석됐다. 손잡이가 있는 방패 크기는 가로 14.4㎝·세로 73㎝이고, 두께는 1㎝다. 손잡이 없는 방패는 가로 26.3㎝·세로 95.9㎝·두께 1.2㎝다.
방패 겉면에는 날카로운 도구로 동심원과 띠 같은 기하학적 무늬를 새기고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칠했다. 특히 고대 방패 중에 손잡이가 달린 방패는 처음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5세기 방패는 경북 경산 임당동에서 출토된 적이 있으나, 월성 유물이 더 완전한 형태를 갖췄다"고 설명했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고대 방패는 고구려 안악3호분 벽화에 나오는데, 손잡이가 없는 방패는 의장용일 가능성도 있다"면서 "방패를 보면 같은 간격으로 뚫은 미세한 구멍이 있는데,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끈 같은 줄로 엮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 소장은 "일본에서는 고대 방패가 다수 출토됐는데, 실로 엮기 위한 구멍과 기하학적 문양이 월성 방패와 비슷하다"며 "방패가 한일 문화 교류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월성 수혈해자 최하층에서는 나무 방패와 제작 시기가 거의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제 배 모형도 출토됐다.
의례용으로 보이는 이 배 모형은 길이가 약 40㎝다. 국내에서 확인된 동종 유물 중에서 가장 오래됐고, 실제 배처럼 선수와 선미를 정교하게 표현했다.
이 소장은 "배 가운데에 불을 놓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등불을 올린 뒤 물 위에 띄운 듯하다"며 "신라 왕실을 위한 의례용 유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라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목간들도 발견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벼, 조, 피, 콩이라는 순서는 곡물 중요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고, 숫자는 변형을 막기 위해 원래 글자보다 획 수가 많고 복잡한 '갖은자'를 사용했다"면서 "신
라가 통일 이전부터 갖은자를 썼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월성 축조를 위해 지방에서 노동력을 동원했다는 점도 더욱 명확해졌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조사를 통해 월성 해자 본래 모습과 신라인 식생활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도 확보했다.
월성 해자는 반달 형태인 월성 북쪽에 길게 띠 형태로 조성됐으며, 처음에는 구덩이에서 통일 이후 돌을 쌓아 만든 정교한 석축 해자로 변경됐다. 신라 씨앗과 열매 63종과 생후 6개월 안팎의 어린 멧돼지 뼈 26개체, 곰 뼈 15점도 찾았다.
1호 해자 북동쪽 3호 해자에서는 석축해자 축조 혹은 의례 과정에서 한꺼번에 폐기한 것으로 짐작되는 철부(鐵斧·쇠도끼) 36점이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