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작으로만 살펴보면 그가 가장 자주 출연한 장르는 드라마다. '2001 이매진',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맨발의 꿈', '뒷담화 : 감독이 미쳤어요', '그녀의 연기', '히치하이크', '남한산성', '1987' 등 제일 비중이 높다.
이 밖에도 액션('머니백', '물괴', '리벤져'), 스릴러('10억', '의뢰인'), 범죄/스릴러('세븐데이즈', '작전'), 시대극('혈투') 로맨스/멜로('러브 토크'), 로맨스/멜로/코미디('우리집에 왜왔니'), '코미디/드라마('올레'), 미스터리/드라마('가비'), 액션/범죄/스릴러('브이아이피'), 스릴러/코미디('간기남') 미스터리/액션('마녀') 등에 출연했다.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박희순을 만났다. '마녀' 개봉 당시 이 영화의 중심은 여성 캐릭터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배경이 되어도 좋다"고 말했던 박희순은 이날도 한국 영화엔 '다양성'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일문일답 이어서.
▶ '썬키스 패밀리' 작업을 함께한 배우들 이야기가 궁금하다.
진경(유미 역) 씨는 좋은 배우라고 많이 알려지긴 했는데 사실은 '하나뿐인 내편' 이전에는 너무 저평가된 느낌이 있었다. 그 배우가 가진 게 너무 많고 훌륭한데 스타들의 어머니 역할로만 너무 소개되지 않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하나뿐인 내편' 이후 좋은 평가를 받고, 그 속에서 우리 영화가 개봉해서 좋다. 사랑스러움과 섹시함까지 플러스된 모습을 ('썬키스 패밀리'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황우슬혜(미희 역) 씨 코미디 연기는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만의 독특한 호흡, 템포, 발성이 있기 때문에 그쪽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장성범(철원 역) 그 친구는 각종 영화에 나왔는데 그 나이 또래에서 연기 제일 잘하는 친구다. 모든 영화에 잠깐잠깐 나오는데 그 모습이 다 다르고 연기 변신이 가능한 친구다. 되게 연기를 잘하고. 95년생인데 그 나이에 그 정도 할 수 있는 배우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친구는 아쉽게 영화 개봉을 못 보고 군대 갔는데 갔다오면 (업계에서) 많이 찾을 것 같다.
보라 씨(경주 역)는 생각 외로 털털함이 많고, 그 뭐랄까 잘 융화되는 스타일인 것 같다. 이 친구가 가수라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우리 배우들 속에 자연스럽게 안착됐다. (이야기도) 그 일상 생활에서 벌어지다보니까 연기도 되게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 같다. 배우로서도 재능이 있기에 앞으로 더 기대가 된다.
우리 고은이(진해 역) 같은 경우는… 너무 사랑이다. 아직도 저를 아빠라고 부른다. (웃음) 고은 양은 사랑이다. 너무 잘한다. 프로 근성이 있다. 자기감정 유지하는 데 자기 루틴(routine)이 있다. 그 카페 씬에서 어른들은 다 지쳐가지고 힘들어하고 있는데 걔 혼자 쌩쌩하게 감정 유지를 하고 있더라. 그것만 보더라도 얘가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아역 중에선 영악한 친구들도 있는데, 고은이는 인성이 똑바르면서 프로의식이 있는 친구다. 그 나이대에선 거의 없는 캐릭터다.
하는 사람들도 지겨운 거다. 남자들, 센 캐릭터만 나오는 대작들에 관객도 지치고 배우도 지치는 거다. 서로 손해 보는 장사인 것 같다. 그러니까 다양성이 이뤄지면 배우들도 선택 기준이 더 넓어질 테고, 관객들도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질 텐데… 기획 영화들만 많이 나온다. 말이 천만이지 천만 관객 드는 게 얼마나 힘든가. 그걸 너무 쉽게들 얘기한다. 중급 규모의 영화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이런 영화들도 조금 더 돈을 투자하면 더 짜임새 있게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는 예산으로 하다 보니까… 속상한 지점이다.
▶ 그동안 작품 활동을 쉴 새 없이 해 왔고, 인터뷰할 기회도 많았을 텐데 의외로 인터뷰를 안 한지 오래됐더라. 특별한 이유가 있나.
멀티캐스팅이어서 촬영 중이었다. 또, (다른 배우들이) 다들 하는데 뭐 저까지… (일동 웃음) 저 까짓게 뭐… (웃음) 사실 희소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일동 폭소)
▶ '밀정'에서 김상옥 열할로 특별출연했을 때 호평이 자자했다. 작은 역할이어도 좋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인터뷰를 봤는데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한 건가.
옛날에는 캐릭터를 제일 먼저 봤던 것 같다. 내가 했던 연기를 답습하고 싶지 않고 새로운 걸 찾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니까 범위가 자꾸 좁아지더라. 내게 원하는 것들은 한정이 돼 있는데 그 안에서 내가 고르려고 하니까 되게 어렵더라. 그러니까 좋은 작품들을 많이 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선택의 폭이 좁았다. 못해 왔던 것들에 갈증을 느껴서 작은 역이어도 좋은 작품, 좋은 배우들, 좋은 감독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 보니까 작은 영화에서도 주연이 아닌 조연이 오는 경우도 가끔 생기더라. 과거엔 없었던 것(역할)들이 생기니까 비중은 작더라도 폭은 되게 넓어지는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선택도 나쁘진 않구나 생각하고 있다.
▶ 과거 인터뷰를 보면 고정된, 관성적인 연기를 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지더라.
되도록이면 자기 답습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 역할이 거의 비슷한 거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게 있다. 할리우드 배우만 봐도 형사 100번한 사람이 있지 않나. 그래도 작품 결이 다르기 때문에 잘 녹아 들어간다면, 조금 겹치더라도 (관객들이)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그건 작품에서다. 좋은 작품에서 그 인물을 빌려서 배우의 마음을 전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고.
▶ 데뷔작이 1990년 연극 '심청이는 왜 두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다. 올해 데뷔 29주년인데, 30년 가까이 연기하면 '연기란 무엇이다' 하는 개념이 정립되나.
정립이라기보다는… 배우들이 나이 먹을수록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그게 빈말이 아니다. 일단 자신감이 떨어진다. 자기 장점과 단점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단점을 보완하고 싶은데 타고난 게 이러니까. 하여튼 자기의 장점과 단점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생기는 그 혼란스러움이 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데, 더 내려놓고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뻗으면 잡혀야 하는데 안 잡히는 그런 신기루 같은 게 있으니까 좀 더 답답한 것 같다.
물론 촬영하는 내내 행복하다. 힘이 들고 괴로울 때도 있으나, 현장에 있다는 것 자체는 너무 행복하다. 하지만 항상 우리는 결과의 심판을 받아야 하니까 그 스트레스가 있다. 남의 돈을 받기 때문에 돈값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고.
▶ 역할이 작아도 '좋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밝혔는데, 작품이 좋다는 건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바로 느낄 수 있나.
자기 취향이라는 게 다 다르기 때문에… 자기 취향에 맞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보편적으로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 있다.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 취향으로만 작품을 고르면 흥행 안 될 수가 있으니까. 저는 약간 마이너적인 성향이 있기 때문에. 너무 상업적으로만 가면 (일하는 게) 재미가 없고. 그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 왔다 갔다 해야 할 것 같고, 그 중간 지점이 빨리 정착됐으면 좋겠다. '히치하이크'(3월 14일) 개봉한 지 일주일 됐는데 벌써 많이 내렸더라. 지방에 계신 어떤 분이 자기 동네엔 없어서 2시간 걸려서 영화 보고 왔다고 하셔서 너무 감사했다.
▶ 평소에 댓글을 보는 편인가.
댓글 거의 뭐. 감상평 같은 걸 본다. 위로가 되고 힘을 얻는 글도 있고, 화나는 경우도 있고. (웃음) 예를 들면 '이 배우는 센 연기만 해'라고 하는데, 이런 걸('히치하이크', '썬키스 패밀리') 봐주면 좋지 않나. 이런 걸! (일동 웃음) 흥행되는 것만 보니까 그렇다. (웃음)
흥행이 안 된 것 중에는 '우리집에 왜왔니'와 '맨발의 꿈'을 좋아한다. '우리집에 왜왔니' 같은 경우는 진짜 아주 뭐랄까, 명대사들이 많이 있다. 외로운 사람, 쓸쓸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사들이 굉장히 많이 있고, 그 심정을 잘 표현하는 작품이다. 그냥 아련하고 소소하게 미소지을 수 있어서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다. '맨발의 꿈' 같은 경우는 동티모르 아이들과의 우정이 실제로도 저한테 있는 추억이니까 좋다. 그 친구들은 저희가 배우인 줄도 모르고 영화를 찍는 줄도 몰랐다. 축구 감독이 축구 가르치듯이 저희는 연기 연습을 시키면서 같이 만들었기 때문에 실제 주인공과 제가 오버랩 되는 느낌이 있다. 그 작품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 이건 가벼운 질문인데, 본인도 본인 목소리가 좋은 걸 아는지 물어봐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좋다기보다는 특이하다, 목소리가. 평범하지 않은 목소리이기 때문에 저는 사실 별로 안 좋아했는데, 그… 많이 목소리를 써 먹으려고 하더라, 사람들이. 돈도 주고 막 그러니까 (웃음) 괜찮은 목소리구나! (일동 웃음) 돈을 주고 내레이션을 쓰는 목소리라면 사랑해도 되겠다! 싶었다. (웃음)
▶ 전에 뮤지컬 연출을 했는데 그 후로 연출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최근에 배우들이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연출을 안 하겠다는 생각은 그대로인가.
네, 없다. 주호민 작가님 원작인 '무한동력'을 뮤지컬로 했다. 한 번 해 봤으면 됐다. (감독 데뷔하는 배우들은) 잘 됐으면 좋겠다. (웃음)
▶ 곧 JTBC '아름다운 세상'이란 드라마가 방송을 시작한다. 합류하게 된 계기는.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다. 학교폭력,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 이런 이야기를 드라마에서 한다는 게 되게 놀라웠다.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이분법적인 표현이 나오는 게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 가해자의 입장, 그들의 가족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학교 폭력에 대한 포괄적인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되게 좋았던 것 같다. 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지 않나. 이걸 뉴스에서만 보고 남의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우리에게도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일이다.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고, 캐릭터의 깊이 있는 대사들이 너무 와닿는 게 많았다. 예전엔 쪽대본도 많고, 뒤 내용을 모르고 해야 해서 (드라마에) 두려움이 있었는데 요즘은 많이 바뀐 것 같다. 아직 방송 시작 안 했는데 10부 찍고 있으니까. 저희 드라마 현장이 좋은 건지, 전체적으로 좋아진 건지는 모르겠다.
▶ 마지막 질문이다. 올해를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올해는 방송 나가고, 하반기에는 영화 해야지. 딱히 뭐. (웃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