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 시절부터 여진구는 눈에 띄는 배우였다. 성인이 된 후에도 꾸준히 비중있게 한 사람 몫을 해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 나갔다. 대중이 그의 성장을 두고 '잘 컸다'고 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작 여진구의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데뷔 14년 차인 그는 tvN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 이전까지만해도 끊임없이 혼란에 시달렸다.
"제 연기가 답답했어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마음에 안 들고 별로였거든요. 문제를 찾아보려고 노력도 많이 했어요. 학교 진학도 했었고, 여러 방도로요. 그런데 이번 현장에서 정말 배우들이 재량껏 해볼 수 있는 리허설이 많았어요. 제 역할에 더 빠질 수 있었고, 오롯이 견딜 수 있었어요. 막막하고 힘이 들 때 누군가의 의견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내 생각을 풀어보기 위해 노력하고 현장에서 고집을 부려보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전까지 여진구는 현장에서 그리 활발하게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편이 아니었다. 제작진이나 선배 배우들의 피드백을 받으면 그걸 자기 식대로 표현해 보려고 노력해왔던 것이다. 자신의 방식을 찾아 낸 여진구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현장에서 제가 어떻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어요. 선배님이나 감독님의 인생 경험이 많으니까 그 말을 들으면서 최대한 제 식대로 표현해보려고 노력했었죠. 제가 원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면 어떻게 표현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가 중요하더라고요. 이제 거기에서 자신감이 생겼고, 그 약간의 차이가 연기를 할 때 확실히 도와줬어요.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행복했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정말 성실하신 분이에요. 너무 잘하는데도 항상 자신을 의심하세요. 짐도 다 정리하시고 저와는 굉장히 다른 스타일이지만 배워야 될 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까먹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현장에서 너무 준비해서 연기하면 안 된다고도 했었는데 물론 그런 장면도 있는 건 맞아요. 문제는 본인이 생각한대로만 혼자 연기하면 감정의 맛이 하나도 안 살거든요. 이 장면을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조언을 주는 게 어려운 작업인데 아낌없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촬영을 했어요."
여진구하면 떠오르는 것은 '해를 품은 달'에서 '왕이 된 남자'까지 이어진 사극 흥행이다. 유독 사극에 강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 보니 '목소리'라는 답변을 내놨다. 낮고 진중한 목소리가 자신의 강점임을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역시 깨고 싶은 부분이라고.
"사극이 편하게 다가오는 것도 있지만 유독 잘 터져서 행운인 장르인 것 같아요. 사극만 잘 됐으니까 이걸 깨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어린 나이에 이런 어려운 장르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제가 좀 뻔뻔해진 것도 있는데 자신감을 갖고 새롭게 도전하면 그 장르에서도 인정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목소리가 사극톤에 어울려서 큰 장점이 된 건 맞지만 이 역시 제가 넘어야 할 '무기'라고 생각해요. 에너지를 가진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