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침입한 용의자들은 치밀한 사전 준비를 거쳐 대담한 방식으로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26일(현지시간) 스페인 유력 일간지 엘 파이스(El Pais)에 따르면, 스페인 고등법원의 호세 데라 마타 판사는 법원 문서를 통해 베트남 하노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 닷새 전인 지난달 22일 발생한 마드리드 외곽에 있는 북한대사관 침입 과정 등에 대한 수사 내용을 자세히 공개했다.
법원 문서에 따르면, 대사관에 침입한 괴한은 모두 10명이었으며 리더는 멕시코 국적 미국 거주자인 '에이드리언 홍 창'으로 알려졌다.
홍 창은 범행에 앞서 마드리드의 한 상점에서 권총집 5개, 전투용 나이프 4개, 모형 H&K(독일 총기 제조사) 권총 6정, 권총 장착용 어깨띠 1개, 고글 4개, 손전등 5개, 그리고 수갑 등 5종의 계구(戒具)를 샀다.
한국 국적자 '람 리'와 미국 국적자 '샘 류' 등 다른 4명의 공범은 2월 20~22일 현지 상점에서 33개의 양면테이프와 덕트 테이프, 펜치, 접이식 사다리 등을 추가로 구매했다.
만반의 준비를 한 이들은 지난달 22일 오후 4시34분 차를 몰고 대사관으로 향했다.
대사관에 도착한 홍 창은 이전에 사업가로 가장해 한차례 방문해 알고 있는 소윤석(So Yun Sok) 경제참사를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홍 창은 대사관 직원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틈을 타 공범들을 대사관 안으로 들여보냈다.
이들은 마체테(날이 넓고 큰 칼), 납으로 된 봉, 모형 권총을 갖고 대사관으로 들어가 대사관 직원들을 때려 제압한 뒤 수갑 등으로 결박했다.
하지만 대사관 직원 중 한 명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행인은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대를 불렀다.
홍 창은 얼마 뒤 출동한 경찰이 대사관의 초인종을 누르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얼굴이 그려진 배지가 달린 재킷을 입은 채 문을 열고 나와 자신을 대사관 고위 당국자로 소개하고 별다른 일이 없다며 경찰을 돌려보냈다.
이들은 경제참사를 지하실로 데려가 탈북을 권유했으나 거부하자 다시 결박했으며, 대사관 직원들도 몇시간 동안 붙잡아 두었다.
괴한들은 컴퓨터 2대와 USB 몇개, 보안 이미지가 포함된 하드 드라이브 2개, 휴대전화 1대를 훔쳤다.
이들 대부분은 저녁 9시 40분쯤 3대의 대사관 차량에 나눠타고 대사관을 빠져나갔고, 홍 창 등 2명은 뒷문을 통해 다른 차량을 타고 떠났다.
대사관에서 나온 이들은 4개 그룹으로 나눠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간 뒤 미국 뉴저지주 뉴왁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특히 홍 창은 지난달 27일 해당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넘기기 위해 미 연방수사국(FBI)과 접촉했다고 스페인 고등법원은 밝혔다.
스페인 당국은 홍 창 등 2명에 대해 국제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당국은 사건 발생 이후 경찰의 정보부서와 정보기관인 국가정보국(CNI)을 투입해 사건을 수사했다.
반(反)북한단체인 '자유조선'은 26일 오후(세계표준시 UTC 기준) 이번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