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듯 다른 블랙리스트와 엽관제

法, 환경부 물갈이 사실상 '엽관제'로 판단
朴정부 '블랙리스트'와 엽관제 면면 보니…
동기부터 목적·기준·대상 엄연히 달라
과거 정부도 관행처럼 받아들인 엽관제
법조계 "블랙리스트와 엽관제 구분해야"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연루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5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민기자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이른바 '블랙리스트'와 엽관제는 서로 다르게 봐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야당은 그동안 환경부의 물갈이 인사를 두고 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와 판박이라며 공세를 폈지만, 법원은 일반적인 인사권 행사에 해당한다는 여당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서울동부지법은 26일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대통령 또는 관련 부처의 장을 보좌하기 위해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장기간 있었다"며 "직권남용의 고의나 위법성이 희박해 보인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법원이 언급한 '관행'은 엽관제를 의미한다. 정권이 바뀌면 그에 따라 정부 부처 임원들도 함께 교체되는 것으로 공직자들이 국정의 궤를 같이하면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동시에 정부가 책임 정치를 실현하는데 목적이 있다.

일면 비슷해 보이는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와 엽관제는 이같은 목적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승마대회에 나가 준우승에 그친 데 대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가 사직 당한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이 대표적이다.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의 경우에는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좌편향 여부가 기준이 됐다. 대상 명단에는 국정 수행과 무관한 민간 단체와 개인이 포함됐다. 문체부 1급 실장 3명은 해당 명단을 적용하라는 지시에 따르지 않다가 사직을 강요받았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는 동기부터 목적, 기준과 대상이 엽관제와는 모두 달랐다. 관행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문체부 1급 실장에게 사표를 종용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대해 법원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이뤄진 위법행위"라고 판단한 것도 같은 취지로 풀이된다.

특히 김 전 장관의 경우에는 블랙리스트와 달리 엽관제의 성격이 짙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 인사나 감찰권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공공기관의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되던 시기에 취임하면서 감찰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원은 김 전 장관의 영장을 기각하면서 "새로 조직된 정부가 해당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 수요 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 의사를 확인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엽관제는 과거 정권에서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3월 취임 직후 첫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 산하기관, 공공기관 인사와 관련해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한나라당은 "김대중, 노무현 추종세력들이 각계각층 중요 자리에 광범위하게 남아서 새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하루 빨리 그 자리에서 국민의 뜻을 받들어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인사권 행사의 위법성 여부는 목적과 배경, 절차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며 "블랙리스트와 엽관제를 무조건 한데 묶어 모두 직권남용죄로 판단하기에는 현실적으로도, 법리적으로도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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