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비 부정사용' '임기만료' '성희롱'…너도나도 블랙리스트 피해자

검찰 참고인 조사 받은 김현민 환경공단 감사 업무추진비 부정사용
김정주 환경산업기술원 본부장, 수 천억원대 R&D 사업 관리부실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 "버틴 죄로 파렴치범 낙인 찍혀 쫓겨났다"
국무총리실 즉각 반박 성희롱 진정 접수돼 조사한 뒤 통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으로 수사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6일 새벽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서울동부지법은 이날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돼 있고 피의자가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 접촉하기 쉽지 않게 된 점에 비춰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검찰이 김 전 장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사진=연합뉴스)
법원이 26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불구속사유서에 이례적으로 '공공기관의 방만한 운영', '정상화를 위한 인사수요 파악', '복무감사 결과 비위사실' 등을 기재하면서 블랙리스트 피해 당사자로 지목된 인사들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앞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은 김현민 전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와 전병성 전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김용진 전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사업본부장, 김정주 전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환경본부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이 산하기관 상임감사 등 임직원들에게 사직서를 내라고 강요한 혐의(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등으로 환경부 감사관실과 김 전 장관 자택도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피해자로 지목된 인사들이 재직시 업무추진비 유용이나 조직 관리감독 부실 등을 이유로 교체 요건을 갖췄다는 여권발 폭로에다 법원 역시 '해당 임원에 대한 복무감사 결과 비위사실이 드러나기도 한 사정' 등을 언급하면서 검찰 수사가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26일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2017년 후반에 환경부가 권익위원회로부터 업무추진비 관련 오남용 사례가 있다는 권고를 받고 김은경 당시 장관이 환경부는 물론 산하 기관에 대한 업무추진비 감사를 지시했다"며 "이 과정에서 김현민 상임감사가 업무추진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했던 게 많이 드러나 결국 본인이 오남용을 인정하고 개인돈으로 변제하고 사표를 냈다"고 말했다.

권익위의 공식 권고로 시작된 환경부의 정식 감사에서 김 전 감사의 업무추진비 부정 사용이 발견돼 개인 돈으로 변제까지 하고 사퇴했다는 점에서 '블랙리스트' 피해자라기보다는 감사 결과에 따른 환경부 차원의 정당한 인사권 행사라는 얘기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불구속사유서에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하여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되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적시했다.

또 "해당 임원에 대한 복무감사 결과 비위사실이 드러나기도 한 사정에 비춰 이 부분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어 피고인에게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김 전 장관이 직권을 남용했는지는 본 판결에서 다퉈야 하지만 '블랙리스트' 피해자로 지목된 인물 중 일부가 정부 공식 감사에서 결격사유가 발견된 만큼, 김 전 장관을 구속까지 해 검찰 수사를 이어가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블랙리스트' 피해자를 자처한 김정주 전 환경산업기술원 기술본부장 역시 수 천억원이 소요되는 환경부 연구개발(R&D) 사업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책임이 있어 임기 종료 후 자연스레 교체 대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관계자는 "환경산업기술원은 수 천억원 규모의 환경부 전체 연구개발(R&D) 관련 과제를 관리하는 곳인데 국회에서조차 관리가 엉망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며 "점검 과정에서 총괄적으로 책임을 지는 김정주 기술본부장한테 일을 맡길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5년에서 10년 장기 과제의 경우 중간평가에서 성과가 최소한 40~50%라도 나와야 했지만 10~15%밖에 되지 않았고, 과제 선정 과정에 심사위원들의 짬짬이로 몰아주기도 적지 않았다"며 "정권이 바뀐 뒤 새 장관이 취임해 R&D과제에서 문제가 생기면 결국 본인이 책임져야 하고 (김정주 본부장의) 임기도 정상적으로 끝났기 때문에 교체를 결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기술본부장은 지난해 12월31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에서 블랙리스트 피해자라고 주장한 육성이 공개돼 자작극 소동까지 빚어졌다.

당시 자유한국당 이만희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전(前) 정권 인사 밀어내기가 도를 넘어섰다며 김 전 본부장의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해당 음성파일에는 "저는 환경분야에서 20년간 종사해 온 환경부 환경산업기술원에서 근무한 김정주이고, 블랙리스트의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2017년 8월30일, 환경부와 기술원 노조,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의원의 집요한 괴롭힘과 인격적 모독, 폭행, 허위사실 유포로 정든 직장을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르면서 도저히 사퇴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사퇴했고, 지금도 그때의 충격으로 약을 먹지 않고서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라는 김 전 본부장 육성이 담겼다.

하지만 본인 주장과 달리 김 전 본부장은 임기 3년을 모두 채웠고 퇴임식까지 한 것으로 밝혀진 데다, 20대 총선에서 당시 새누리당에 입당해 비례대표 23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치공세를 위한 자작극 논란으로까지 비화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에 임명됐다가 임기 2년 2개월을 남기고 자진 사퇴한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 역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눈치 줬을 때 나가지 않고 버틴 죄로 파렴치범 낙인이 찍혀 쫓겨났다. 문재인 정부의 지속적인 흔들기가 있었다"고 폭로했지만 국무총리실은 즉각 반박했다.

총리실은 설명자료를 통해 "국무조정실은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의 자진 사퇴를 종용하기 위해 접촉한 사실이 없음을 알려드린다"며 "지난 2017년 12월 손 전 원장에 대한 성희롱 진정이 국무조정실로 접수돼 감독기관으로서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지난 해 1월 인사권자인 경제인문사회연구원에 통보했으며 손 전 원장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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