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청주 KB스타즈의 안덕수 감독은 사실상 승리가 확실해진 4쿼터 막판 선수 교체를 준비했다. 오랫동안 팀을 위해 헌신한 베테랑 정미란이 코트 위에서 창단 첫 우승의 감격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다.
안덕수 감독은 고민에 빠졌다. 용인 삼성생명 선수들과 치열하게 맞붙은 주전 5명 중 누군가를 벤치로 불러야 했다. 주장 강아정? 승리의 주역 박지수? 외국인 선수 쏜튼?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안덕수 감독은 고민 끝에 가드 심성영을 벤치로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미안했지만 앞으로도 우승할 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결정을 내리려는 찰나 박지수가 벤치를 향해 걸어왔다.
안덕수 감독이 순간 당황했을 정도로 박지수는 '쿨'하게 선배와의 교체를 자청했다.
KB스타즈는 25일 용인에서 열린 삼성생명과의 2018-2019시즌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73대64로 이겼다. 파죽의 3연승으로 정규리그에 이은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박지수는 우승이 확정된 순간 벤치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누구보다 기뻐했다. 코트로 달려나와 선수들과 마음껏 기쁨을 나눴다.
박지수는 "벤치에 있으니까 더 신났다. 마지막 1분을 쉬었다고 더 힘이 났다. 언니들과 뛰어나가자고 했다. 미란 언니가 뛰어서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박지수는 왜 교체를 자청했을까. "처음에 내 교체인 줄 알았다. 내가 나가려고 하자 감독님이 너 왜 나오냐고 물으셨다. 그때 경기는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언니가 꼭 코트를 밟아보고 싶다고 했다. 언니는 최고참이고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이전까지 출전 기회가 없었던 정미란은 마지막 53초동안 코트를 마음껏 누비며 우승의 순간을 함께 했다. 오랫동안 팀에 헌신했지만 우승 경험이 없는 베테랑이 코트에서 우승 감격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농구 경기에서 나올 수 있는 미덕 중 하나다.
박지수의 따뜻한 마음을 지켜본 안덕수 감독은 "큰 감동을 받았다. 앞으로 정말 크게 될 선수"라며 흐뭇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