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라는 영문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미국(United States) 사회에 관한 촌철살인 우화로도 읽힌다. 흑인 감독이 연출하고 흑인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는 데서 인종적 비주류·소수자 눈에 비친 미국 사회 '밑바닥'(상징적 의미로서 이 표현은 영화 속에서 실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은 훨씬 그로테스크하다.
영화 '어스'는 미국이 옛 소련과 벌인 체제 경쟁, 이른바 '냉전'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이 전 세계를 휘감던 1986년 어느 흑인 중산층 가족이 겪은 기묘한 이야기로 문을 연다.
알다시피 당대 미국 사회는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1911~2004) 재임기였다. 그가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1925~2013)와 함께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임으로써 현 시대 극에 달한 양극화와 같은 모순을 싹띄운 시기다.
이 영화가 그해 빈곤 퇴치를 위한 미국 시민들의 실제 인간띠 잇기 캠페인으로 시작해 현재를 살게 된 비주류들의 같은 시위로 끝맺는 데서는, 수십 년을 이어온 정치·경제·사회 부조리를 흥미로운 장르 문법으로 풀어내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후자의 인간띠 잇기는 말 그대로 '체제 전복'의 함의를 지닌다. 그렇게 영화 '어스'는 그간 주류 백인의 시각에서 '체제 수호'를 강화해 온 할리우드 문법을 보기 좋게 깨부순다.
이 점에서 눈썰미 좋은 관객들은 다소 의아하게 다가올 법도 한 이 영화 엔딩신, 충격적인 주인공의 경험 등을 짜깁기하면서, 영화 '어스'가 건네는 사회 변화에 대한 '당위' '희망'과 같은 메시지를 짚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차적으로는 트럼프 시대를 사는 미국 시민들의 저항심을 직감할 수 있다. 계급·성·인종 갈등을 부추기는 혐오 정치에 기대어 영향력을 넓히려는 대통령 트럼프에 맞서는 길은 그러한 혐오를 거부하는 것이다. 영화 '어스' 안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양 극단의 사회를 산 흑인 여성 주인공의 서사는 이러한 저항 정신을 웅변한다.
이는 전 세계를 휩쓰는 우경화, 그러니까 민족·계층·종교 등 '우리'로 규정지은 테두리 바깥에 있는 이들을 배격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파시즘에 대한 저항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극중 인류가 벌이는 또 다른 나와의 싸움, 그리고 그 싸움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요구에 답해야 하는 것은 결국 사회의 몫이기 때문이다.
누가 실체이고, 누가 그림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우리 모두가 함께 부조리에 맞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이 영화는 온 힘을 기울이는 듯하다.
영화 '어스'의 이야기 구조는 개연성에 온전히 기대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리하다. 영상 미학이 지닌 시각·청각 효과를 십분 활용함으로써 공포·긴장과 같은 감정 안에 희비극 요소를 묘하게 버무려낸 까닭이다. 이 영화와 나홍진 감독 작품 '곡성'(2016)을 연결짓는 관객들 목소리도 나올 법하다.
2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