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둔 의원들은 이러한 역학관계에 기민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시선은 당장 공천권을 쥔 황 대표에게 향하지만, 4·3 재보궐 선거 결과와 김학의 사건 등 변수를 대비해 물밑에서는 나 원내대표에게 힘을 싣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3일 나 원내대표는 논란이 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발언과 관련 "제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2019년 반문특위"라고 해명했다.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색출, 전부 친일 수구로 몰아세우는 것을 비판해 '반문특위'라고 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민특위와 반문특위를 구별하지 못하느냐면서 나 원내대표의 국어실력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나 원내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민특위를 부정한 적이 없다. 국어 실력이 왜 이렇게들 없나"라고 맞받아쳤다.
나 원내대표가 기세를 올리는 사이, 황 대표는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사건'에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 등은 김학의 사건을 두고 한 목소리를 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 대표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의원을 겨냥한 것이다. 황 대표는 '황교안 죽이기'라고 반발했지만, 최근 김학의 전 차관이 긴급출국금지를 당하는 등 재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표면적으로 보면 김학의 사건은 한국당으로서는 악재다. 취임한지 이제 한달된 황 대표 체제에 치명타를 줄수도 있다. 만약 황 대표의 연관성이 밝혀진다면 최악의 경우 당대표 임기를 못채울 수 있다는 우려도 번지고 있다.
반면 나 원내대표는 김학의 사건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모습이다. 25일 나 원내대표는 '김학의 특검' 수용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물론 '드루킹 재특검'을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황 대표에게 민감한 사안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외라는 시각도 있다.
비박계 한 중진의원은 "조건을 걸었다지만 김학의 특검은 자칫 황 대표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며 "나 원내대표가 자신감을 갖고 얘기했지만, 의견수렴을 제대로 거쳤는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중진의원은 "의원들 상당수는 아직까지 황 대표를 지켜보는 모습"이라며 "4·3재보궐 선거가 첫 단추인데, 그 전에 김학의 사건이 터졌다. 본인은 '절대 아니다'라고 하는데 답답한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에 시계추를 맞춘 의원들로선 공천권에 신경을 쓸수밖에 없다. 당장은 공천권을 쥔 황 대표를 바라봐야 하지만,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나 원내대표에게 줄을 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벌써 일부 의원들은 '친(親)나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전언도 들린다.
실제로 당 대표 임기는 2년이지만, 선거 결과나 정국 상황에 따라 언제 내려올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분석에 더욱 힘이 실린다.
집단지도 체제에서 단일지도 체제로 바뀐 뒤 2016년 8월 당대표가 된 이정현 의원(현재 무소속)은 탄핵 정국에 휩쓸려 임기를 4개월 밖에 못채웠다. 2017년 7월 당대표가 된 홍준표 전 대표는 지방선거 참패로 2018년 6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때마다 당 대표 권한대행으로 원내대표가 나섰다. 이정현 전 대표 이후로는 정우택 전 원내대표가, 홍준표 전 대표 다음에는 김성태 전 원내대표가 권한대행을 맡았다.
황 대표 역시 4·3 재보궐 선거에서 창원성산과 통영고성을 모두 빼앗기고, 김학의 사건까지 번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향후 행보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당내 시각이다. 만약 나 원내대표가 권한대행으로 나선다면 '공천권'은 자연스레 나 원내대표에게 쥐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원내대표 임기가 1년이라는 점에서 지난해 12월11일 취임한 나 원내대표의 임기는 올해 12월11일까지다. 하지만 당장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유임될 가능성이 상당한 것으로 관측된다.
또 다른 한국당 관계자는 "당 대표는 상황에 따라 언제 떠날지 모르지 않느냐"라며 "총선이 1년 남짓 밖에 남지 않아 향후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