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두고 "정부는 해방 이후 반민특위로 국민이 분열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라고 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역사 인식에 대한 후폭풍이 여전히 거세다. 사과·사퇴 요구가 계속되자 나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2019년 '반문특위'"라고 해명했으나 오히려 역풍이 거세다.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1880~1936)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나 원내대표에게 '반민특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MBC 특별기획 '1919-2019 기억·록-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 편(기획 이우환, 연출 김호성·최별, '기억·록-김상덕' 편)은 반민특위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입문용으로 적합하다. 분량도 3분으로 매우 짧다.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야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짧으면서도 핵심만 간추려 반민특위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 또한 배우 손현주가 '기록자'라는 이름으로 내레이션을 맡아 높은 몰입을 제공한다. 덕분에 역사 다큐멘터리는 머리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기억·록-김상덕' 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방이 되자 일제 강점기 친일파를 청산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제헌국회는 친일파를 처벌할 특별법 제정에 착수하여 반민특위를 설치하고, 독립운동가 김상덕을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역임하여 친일 잔재 청산에 앞장섰다.
김상덕 위원장은 반민특위의 활동에 불만을 품은 친일 경찰들로부터 암살 위협까지 받으면서 친일파 청산을 이어갔다. 그러나 친일파 처단에 소극적이었던 이승만 정권 아래 친일파들의 방해공작으로 반민특위는 1949년 8월 무력하게 해산되고 말았다.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친일파 청산에 주력했던 독립운동가 김상덕 위원장은 6·25전쟁 중 납북되었고, 유족들은 연좌제로 힘들게 살아 왔다.
어느덧 우리 기억 속에서 잊힌 '반민특위'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 궁금하지만 어렵고 긴 역사 다큐멘터리는 부담스러운 사람을 위해 '기억·록-김상덕' 편을 추천한다.
이제 '기억·록-김상덕' 편을 통해 반민특위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렇다면 조금 더 깊게 들어가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심화용'으로 KBS1 '인물현대사-미완의 역사 친일청산 반민특위 김상덕' 편(연출 김정중, 2004년 11월 12일 방송, 이하 '미완의 역사 친일청산 반민특위 김상덕' 편)을 추천한다. 단, 영상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50분 분량의 '미완의 역사 친일청산 반민특위 김상덕' 편은 김상덕이라는 인물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하는 것은 물론, 실패로 끝난 반민특위와 김상덕 위원장을 통해 반복되는 오늘의 현실을 되새겨 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완의 역사 친일청산 반민특위 김상덕' 편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한다.
친일파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특위의 권한을 약화하는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으며, 국무회의에서 체포된 친일파의 석방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반민특위 위원장인 김상덕의 관사를 방문해 직접적인 관여를 하기도 했다. 색깔 공세도 이어지며 급기야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친일청산에 적극적이던 소장의원들이 체포되는 상황도 연출된다.
친일 경찰 노덕술의 체포는 경찰 전체의 위기로 다가왔으며 경찰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다. 1949년 6월 6일 경찰은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 특위의 특경대원을 체포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반민특위는 힘을 잃기 시작했고 친일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 역시 무산되고 만다.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은 계속되는 압력과 탄압에 민족의 과제였던 친일 청산을 이루지 못하고 사퇴하고 만다.
독립운동의 커다란 상징이며 친일세력 청산의 커다란 후원자였던 백범 김구마저 암살되면서 친일청산의 목소리는 잦아들기 시작했다. 체포됐던 친일파들은 하나둘 무죄로 석방되었다.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결국 다시 친일파 세상이 됐다. 김상덕 역시 반민특위 역사와 함께 그렇게 잊혔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으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깨달았다. '미완의 역사 친일청산 반민특위 김상덕' 편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반민특위의 역사를 잊는다면 우리에게 진정한 미래는 있을까 질문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반민특위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또 다른 다큐멘터리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반민특위, 승자와 패자'(기획 이채훈, 연출 정길화, 2001년 5월 25일 방송, 이하 '반민특위, 승자와 패자' 편)도 '심화용'으로 권한다. 역시 '미완의 역사 친일청산 반민특위 김상덕' 편과 마찬가지로 종영한 프로그램이라 다시보기가 힘들다는 어려움이 있다.
'반민특위, 승자와 패자' 편은 어떻게 해서 반민특위가 우리 현대사에서 잘못 꿰어진 첫 단추가 됐는지를 들여다보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반민특위에 직접 참여한 분으로 지금(방송일 기준)까지 생존하고 있는 이는 이원용(82세, 당시 총무과장), 이병창(85세, 당시 특경대장), 백재호(85세, 당시 전남지역 조사관), 심륜(78세, 당시 경남지역 조사관) 등 네분이다. 그리고 당시를 목격하고 증언하는 이로는 김인식(제헌의원), 선우 진 (당시 김구선생 비서관), 오소백(당시 반민특위 출입 합동통신 기자), 선우종원(당시 검찰), 장석윤(당시 미군정 고문) 등이 있다. '반민특위, 승자와 패자' 편은 이들을 통해 미군정 이래 건국 초기 상황에서의 친일파 청산을 둘러싼 여러 정치 세력의 움직임을 추적했다.
제작진은 실패로 끝난 한국의 친일파 청산 사례를 논할 때마다 자주 인용되는 프랑스에서의 나치 협력자 숙청 사례를 알아보기 위해 현지취재를 진행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는 4년여의 나치 점령을 벗어난 뒤 비시정권 하에서 독일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처형했다. 즉결처분과 정식재판을 합해 처형 인원은 1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프랑스는 해방 직후 분노한 민중에 의한 보복적 처형도 많았다.
그러나 드골이 나치 협력자 처단을 위한 최고재판소 설치 등을 훈령으로 내리면서 국가의 이름으로 정의를 수립하고 프랑스의 자존심을 살려가면서 전후 사회의 새로운 질서를 조성했다. 나치 협력자 처단에 관한 한 좌우가 서로 협조했던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경우 시효에 적용되지 않는 반(反) 인류 범죄로 처단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바르비, 파퐁 등의 경찰·관리 출신 등에 대해 50년이 넘어서도 역사적 심판을 계속해 오고 있다.
언론인, 지식인까지 적용해 확고한 처단을 한 프랑스는 반민특위라는 이름조차 역사에서 지우려 했던 '친일의 역사'가 아직도 진행 중인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운다.
되풀이되는 역사의 비극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앞서 이야기했던 신채호의 말을 다시 되새길 수밖에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그 한 마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