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에 서서 쾌감"…연예계 뒤덮은 '모럴해저드'

[노컷 딥이슈] 승리·정준영 사건으로 드러난 도덕불감증
"성범죄 알아도 반복? 법 위에 선 특권 의식 발판"
"복귀 쉬운 방송계 이미 연예인들은 반복 학습"
"연예계 부패 깨끗이 정리 안 되면 위기 올 것"
"소속사-연예인 최소한의 도덕성 기준으로 삼아야"

'노컷 딥이슈'는 연예 이슈를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그 이면의 사회·문화 현상을 진단합니다. [편집자주]

가수 최종훈과 승리 그리고 정준영. (사진=자료사진)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로 촉발된 승리·정준영 사건이 연예계를 뒤흔들고 있다. 연예인이라는 특권 아래, 이들이 무분별하게 행해 온 성범죄와 각종 불법 행위 의혹이 연예계 전반에 퍼진 도덕불감증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버닝썬' 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승리는 다수 예능프로그램들에서 '승츠비'로 칭송 받으며 뛰어난 사업 감각을 지닌 연예인으로 포장돼 왔다. '버닝썬'을 포함해 그가 '직접'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던 각종 사업들은 방송 홍보 속 '승리' 타이틀을 달고 승승장구했다.

사실 아무런 징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건 이후 회자되는 방송들에서 승리는 성범죄나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여러 번 드러냈다.

승리는 tvN '짠내투어'에서 구구단 세정에게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술을 따르라"고 해 논란이 됐다. 이로 인해 '짠내투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성희롱을 정당화 할 우려가 있다'며 중징계를 받았다. 그가 주인공인 넷플릭스 리얼 시트콤 'YG전자'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빚은 사회적 논란들을 희화화하거나 직장 내 성폭력·불법 촬영 등 범죄 행위들을 유머로 소비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정준영에게는 보다 명확한 징조가 있었다. 2016년 전 여자친구에게 불법 촬영 혐의로 고소를 당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이 무혐의 처분으로 끝나자 정준영은 "합의 하에 촬영했던 영상"이라는 해명과 함께 4개월 만에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이하 '1박 2일')에 복귀했다. 이후 거침없는 입담과 '유학파' 캐릭터로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에서도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다. 불법 촬영·유포 혐의가 제기되기 직전까지도 정준영은 tvN 예능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3년 뒤, 해당 사건에서 정준영이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의혹과 함께 실제 피해 여성들을 불법 촬영해 그 영상물들을 유포했다는 증거들이 나왔다. 결국 정준영은 "모든 혐의를 인정한다"는 말을 남기고 21일 구속됐다.


승리·정준영 사건은 성범죄에 대한 남성 연예인들의 경각심이 얼마나 취약한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방관한 정황들이 이를 증명한다.

문화비평가인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연예인들, 특히 케이팝 아이돌 가수들은 기획사에서 성장한다"며 "이 말은 곧 이들이 일반적인 사회적 관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어린 시절 가졌던 여성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 폐쇄적인 연예계 속 남성 연예인들의 연대 문화 속에서 자기 우월감을 과시하는 쪽으로 보존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승리와 정준영 대화방에 있었던 남성 연예인들만 이랬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류의 등장으로 깨끗하고 건강한 이미지가 구축되면서 국내 연예계와 연예인에 대한 긍정적 시선이 확산됐다. 대중은 국경을 넘어 문화적 영향력을 미치는 한국 연예인들에게 열광했다. 빅뱅의 승리 역시 이런 케이팝 한류 속에서 성장한 대표적인 아이돌 가수다.

그러나 '버닝썬' 사태를 통해 드러난 연예인들의 권력 유착 의혹과 특권 의식은 그 신뢰를 무너뜨렸다. 대중은 새로운 특권층에 진입한 이들이 부패한 권력자들과 얼마나 유사하게 불법적 행위를 저지르는지 목도했다.

이택광 교수는 "승리, 정준영과 같은 연예인들이 어떤 특권 의식을 갖고 있었는지 모두 드러났다"며 "이들은 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특권 의식을 키워 왔고, 과거 권력층의 행태를 답습했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자신들의 행위가 범죄임을 알고 있음에도 문제가 없겠다는 확신으로 반복한 이유가 뭘까"라며 "이들은 그 행위에 쾌감을 느꼈을 거다. '법 위에 선 나' '법을 위반할 수 있는 권리', 그것이 바로 특권 의식의 핵심"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예를 들어 연예인이 하는 유흥업소라면 같은 강남이라도 다르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는 마약, 성범죄 등 '조폭' 집단이 운영하는 곳과 별다를 것 없었던 셈"이라며 "지금까지 연예인들은 권력과 관계가 먼 하위 집단으로 분류돼 왔지만 이번 사건이 전환점이 돼 연예인들과 연예게에 대한 시선이 바뀔 것"이라고 예측했다.

◇ 검증 없는 방송계와 '수익' 지상주의 연예계

사건 이전 정준영이 출연했던 예능프로그램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1박 2일'에 집중 포화가 쏟아졌다. '1박 2일'이 사실상 정준영의 예능인 캐릭터를 구축해줬고, 2016년 논란 당시에도 복귀를 빠르게 받아들였던 탓이다. '1박 2일'은 현재 방송·제작이 중단된 상태다.

'1박 2일' 제작진은 입장문을 통해 "수사 당국의 무혐의 결정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고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채 출연 재개를 결정한 점에 대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이런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출연자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입장문처럼 현재도 방송사들은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이 증거 불충분에 따른 무혐의 처분이 나면 이를 표면 그대로 수용해 쉽게 복귀시킨다. 제대로 된 출연자 검증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일각에서 비판이 일더라도 제작진의 자체적 판단 아래 복귀를 강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는 실제로 혐의가 인정돼 유죄 처벌을 받은 연예인들도 포함된다. 많은 인기 예능프로그램들이 범죄 경력을 지닌 연예인들의 '이미지 세탁소'로 불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법적으로 처벌 받지 않는다고 해서 도덕적,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향력 측면에서 준공인인 연예인은 성범죄 등 사회적 지탄이 큰 물의를 빚었을 때 일정 부분 책임을 지게 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준영처럼 무혐의만 받아 바로 복귀할 수 있다면 어느 누가 행실을 똑바로 하겠느냐. 그게 다른 연예인들에게도 학습이 돼서 이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미 예능 캐릭터 개발이 됐고, 제작진 입장에서는 기존에 시청률을 담보할 수 있는 연예인을 쓰는 게 더 편하다. 그들 사이 이뤄진 친분 관계도 복귀가 가능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며 "방송사가 연예인 개인을 철저히 검증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하고, 사회적 비난이 많은 사안에 연루된 연예인들에 대해 일정 기간 출연을 금지하는 자체 규정이 필요하다"고 현재 방송사 복귀 시스템에 변화를 주문했다.

일부 연예인들과 권력층의 유착 관계가 면밀하게 드러나면서 연예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중의 호감이 중요한 연예계 산업 전반에 불신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탓이다. 이번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짓고 자정하지 않는다면 국내는 물론이고 아시아로 뻗어나간 한류 사업까지 타격을 미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 배우 기획사 관계자는 "연예인들 인기에 따라 저런 유착 관계 양상도 달라지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더 사랑을 받는 연예인일수록 그런 특권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는 건 맞다"며 "이번 사건을 보면서 연령에 관계 없이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예계 내부의 부패가 드러난 상황에서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돌아선 대중의 마음을 돌리긴 어려울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당연히 해외 진출에도 영향이 크다. 한국 연예계 전체 이미지 추락으로 위상이 예전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근본적인 분위기가 바뀌려면 연예인들과 기획사들이 단순히 '수익'만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 판단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실제 승리를 비롯해 사건에 얽힌 연예인과 그 소속사들은 공식 입장 번복과 임기응변식 해명으로 더욱 비난을 샀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연예인들과 소속사가 서로 합쳐 수익을 내는 것은 맞지만 단순히 상품과 기획·판매자의 관계로 상정되면 위험하다. 그건 결국 '돈만 잘 벌어오면 네가 무슨 짓을 하든 관계 없다'는 방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문제가 된 연예인들과 소속사들의 대응을 보면서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속사도, 연예인도 최소한 불법적 행위를 경계할 정도의 도덕성을 서로 파트너십의 명확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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