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욕먹었지만 누구보다 서글픈 악역 '장다야'
KBS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연출 홍석구, 극본 김사경)이 지난 17일 최고 시청률 49.4%를 기록하며 종영했다. 10%만 넘어도 '대박 드라마'라는 호칭이 붙는 시대에 나온 귀한 성과다. 지난 2018년 9월 15일 첫 방송을 시작해 지난 17일 종영까지 106부작을 쉼 없이 달려왔다. 대본 리딩까지 포함하면 약 9개월의 시간이다. 배우와 제작진 모두 힘들게 고생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의 결과를 낸 것에 대해 배우 윤진이는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드라마가 잘 되어서 모든 배우가 엄청나게 좋아해요. 저도 오랜만에 드라마가 너무 잘 되어서 저도 용기가 생기고, 지금까지 힘든 시간을 보상받는 것 같아서 행복해요."
두 눈 가득 행복하다는 감정을 품은 윤진이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윤진이는 드라마 속 장다야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밝고 사랑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윤진이는 연기 인생 최대의 악역을 맡아 욕을 많이 먹었을 법한데도 드라마가 잘 되어 감사하다고 했다. 사실 개인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올라온 가족에 대한 무례한 댓글에 상처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악역을 맡은 배우에 대한 비판이나 지적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하는 윤진이는 이전보다 '배우'로서 더 성장한 모습이었다.
"사실 어딜 가나 정말 욕을 많이 먹을 줄 알았는데 '나는 다야가 좀 귀엽더라'라며 칭찬해 주시는 분도 계셨어요. 밉다는 말씀하시는 분도 당연히 계셨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주셔서 행복했어요."
사실 윤진이가 맡은 '장다야'라는 캐릭터는 사연 없는 악역이 아니다. 극 중 나홍실(이혜숙 분)의 딸이자 장고래(박성훈 분)의 여동생 장다야는 아빠 없이 자란 결핍과 이로 인한 상처가 많은 인물이다. 사랑하는 가까운 누군가를 잃어보지 않은 이상 그 상처가 얼마나 클지 짐작하기 힘들다.
강수일(최수종 분)과 나홍주(진경 분)의 결혼식에 뛰어 들어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장다야는 오열하며 소리 지른다. "저 사람이! 우리 아빠 죽인 살인자라고! 저 사람이 우리 아빠 죽였다고! 당신이 우리 아빠 죽였잖아!"라고 말이다. 강수일은 김도란에게는 소중한 아버지이고 시청자에게는 한없이 착한 인물이다. 그러나 다야에게는 다르다. 세상의 하나뿐인 내편이 되어야 할 아버지의 부재와 이로 인한 그간의 상처와 울분이 폭발하는 순간의 다야는 서글플 정도다.
"저는 다야와 같은 상황이 아니지만, 다야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엄청 고독하고 외로울 것 같아요. 아빠가 없는 것에 대해서 분명 어렸을 때 한 번쯤은 놀림을 받아보지 않았을까요? 어릴 때부터 다야가 어떻게 살아왔을까 생각을 해보면, 다야는 정말 많이 아픈 인물이에요. 어릴 적부터 쌓여서 곪아 버린 상처는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죠. 저라도 폭발했을 거 같아요. 앞서 다야가 도란이와 강기사 아저씨(최수종 분)를 나쁘게 대해서 다야의 상처가 안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도 다야를 이해하는 시청자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여느 드라마에서 그렇듯 악역을 맡은 윤진이는 치매를 앓고 있는 박금병 역의 배우 정재순에게 머리채를 많이 잡혔다. 윤진이는 머리채를 잡히면서도 시청자들이 통쾌해하는 모습에 오히려 더 잡히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정재순 선생님이랑 웃으면서 잘 찍었어요. 선생님이 머리카락을 잡을 때 전혀 아프지 않게 잡았어요. 저도 시청자분들이 시원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독님께 머리카락 잡히는 거 괜찮은 것 같다고, 또 잡히고 싶다고 말했죠."(웃음)
배우 정재순을 비롯해 최수종, 박상원, 차화연, 이혜숙, 진경 등 연기 잘 한다고 소문난 배우들이 다 모인 드라마인 만큼 배울 것도 많은 현장이었다. 배우에게 주말드라마가 갖는 특별한 의미이기도 하다.
"저는 차화연 선생님, 감독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연기를 했는데요. 차화연 선생님께서 많이 알려주시고, 또 많이 물으면서 연기가 많이 늘어난 거 같아요. 선생님께서 이렇게 한 번 해보라고 조언도 해주셨고요. 감독님도 워낙 연기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라 여러 가지로 많이 알려주셨어요. 정말 많이 배워서 다음 작품은 더 다채로운 연기가 나오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봅니다."(웃음)
윤진이는 '하나뿐인 내편'을 통해 시청자에게 다시 한번 배우로서의 '윤진이'를 각인시켰다. 드라마의 성공도 성공이지만 앞서 겪은 힘든 시간과 고민이 윤진이를 배우로서 더욱 성장시켰다.
"인기는 많아졌지만 사실 전 더 힘들었어요. 밖에도 못 나가고, 바쁜 날들을 보내면서 우울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저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저에 대해 오해 섞인 이야기를 할 때 마음이 아팠어요."
23살 어린 나이에 데뷔해 지난 2012년 인기리에 방송된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임메아리 역으로 큰 인기를 오르며 단숨에 스타가 됐다. 이후 KBS2 월화드라마 '연애의 발견'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누군가는 윤진이가 단숨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겸손함을 잃은 것은 아닌가 하는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해 보이는 직업 뒤로 윤진이는 외로움도 느꼈다. 또래 친구들은 밖에서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윤진이는 오히려 더 고립됐다. 얼굴이 알려지며 말과 행동 하나하나 신중해야 했다. 높아진 인기만큼 제약도 커진 셈이다.
어느 순간부터 단막극이 아닌 중·장편 드라마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나뿐인 내편' 이전 약 2년의 공백기를 거쳤다. TV에 얼굴을 비치지 않으면 대중에게 잊히기 쉬운 만큼 윤진이에게 공백기는 어느 날보다 힘든 시기였다.
"사실 공백기라는 건 배우에게 마음 아픈 일이죠. 갑자기 백수가 된 것 같은 느낌 때문에 힘들었어요. 배우라는 게 항상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까 공백을 겪을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사실 23살에 데뷔하면서 성숙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어요. 데뷔하자마자 갑작스레 너무 많은 사랑을 받게 되면서 잘못했던 부분도 많다고 생각해요. 2년 동안 공백기를 가지면서 여행을 다녔어요. 그러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나에게 부족한 건 뭘까, 그걸 보완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기도 했죠. 그런 고민의 시간이 저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든 것 같아요. 그때보다 나이를 먹은 것도 있고요."
서른에 접어들면서 윤진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23살 어린 윤진이와는 달리 모든 일에 신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커졌다. 2년의 공백 후 '하나뿐인 내편'을 통해 다시 배우로서 발 내디딘 만큼 윤진이는 더 다양한 캐릭터와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바로 들어갈 거예요. 로맨틱 코미디도 해보고 싶고, 또 제가 코미디 장르를 좋아해요. 제가 제일 잘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더 깊이 있는 악역을 연기해보고 싶기도 해요. 더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깊이 있는 영화 연기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다시 얼른 다른 작품으로 복귀해야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