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포기할까요?" 병장 이승현 다독인 허일영의 약속

'승현아, 할 수 있어' 오리온 이승현(왼쪽)은 지난해 상무 복무 중 팀이 10연패로 최하위에 처졌을 당시 불안했지만 선배 허일영의 다독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결국 오리온은 KBL 최초 10연패 팀의 PO 진출의 역사를 이뤘다. 사진은 지난 10일 창원 LG와 경기 모습.(자료사진=KBL)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은 올 시즌 새 역사를 썼다. 정규리그에서 10연패를 당하고도 플레이오프(PO)에 진출하는 첫 사례가 된 것이다. 10연패는 불명예스럽지만 그럼에도 봄 농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은 자랑으로 여길 만하다.

오리온은 19일 경기도 고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8-2019 SKT 5GX 프로농구' 부산 kt와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86 대 80으로 이겼다. 4위였던 kt를 6위로 밀어내고 5위로 올라섰다.

정규리그 27승27패, 상대 전적에서도 3승3패로 동률을 이뤘지만 상대 전적 골 득실에서 앞섰다. 오리온은 4위 전주 KCC와 오는 23일부터 6강 PO를 치른다. 3위 창원 LG와 6강 PO는 kt가 나선다.

오리온은 올 시즌 1, 2라운드에서 10연패를 당하며 최하위까지 처졌다. 다재다능한 외인 대릴 먼로의 부상이 원인이었다. 장신이면서도 빼어난 패스 능력으로 오리온 가드진의 약세를 보충했던 먼로의 공백은 컸다.

당시 오리온의 상황은 군 복무 중이던 이승현(27·197cm)도 우려할 정도였다. 이승현은 19일 경기 후 인터뷰에서 당시 친정팀을 걱정하다 선배 허일영(34·195cm)에게 연락했던 일화를 들려줬다.


이승현은 "상무에 있을 당시 오리온이 10연패를 당하는데 올 시즌 PO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면서 "그래서 일영이 형에게 전화해 '봄 농구는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라고 물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형이 '아직 기다려 봐라. 너 오기 전까지 준비 잘 해서 어떻게 해서든 순위를 올려놓을 테니까'라고 하더라"면서 "그런데 정말 실현이 됐다"고 혀를 내둘렀다.

'감사합니다' 오리온 선수단이 19일 kt와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승리, 5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룬 뒤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고양=KBL)
물론 허일영도 이른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까웠다. 허일영은 "군에 있는 사람한테 '야 포기해, 그만하자' 이렇게 말할 수 없지 않느냐"며 폭소를 자아냈다.

하지만 아예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었다. 허일영은 "그래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만약 3, 4라운드에 10연패를 당했다면 모르겠지만 시즌 초반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진짜로 절대 포기는 하지 않았다"면서 "먼로가 복귀하면서 올라갔던 게 잘 됐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허일영 등 베테랑들이 팀을 잘 다독인 게 컸다. 추일승 오리온 감독도 "사실 10연패 당했을 때는 마음을 비웠다"면서 "그런데 허일영, 박상오, 김강선 등 고참들이 고맙게도 팀을 잘 이끌었다"고 귀띔했다. "고참들이 후배들에게 '조금만 하면 된다' '먼로 오면 라운드별로 5, 6승을 하고 이승현이 오면 6승 이상 하면 27승으로 6강에 갈 수 있다'고 다독였다"는 것. 추 감독은 "10연패가 심리적으로 위축됐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당시를 흐뭇하게 회상했다.

이전까지 정규리그 10연패 팀이 PO에 진출한 적은 없었다. 1999-2000시즌의 부산 기아(현 현대모비스), 2014-2015시즌의 인천 전자랜드가 9연패를 딛고 6위로 PO에 진출한 것이 최장 기록이었다. 오리온이 의미있는 기록을 세운 셈이다.

정규리그 10연패, 최하위를 딛고 일어선 오리온. 이제 KCC와 봄 농구가 기다리고 있다. 이승현은 "3년 전 챔피언결정전 우승 때 상대라 기분이 묘하다"면서 "워낙 강팀이지만 잘 수비하고 우리 장점을 살려서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허일영도 "PO는 단기전이라 분위기 싸움이 중요하다"면서 "밀어붙이면 좋은 경기 하지 않을까 싶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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