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가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는 '제로페이'가 대대적인 홍보에도 손님도, 상인에게도 모두 외면받고 있다.
소상공인의 수수료 부담을 0%대로 만들어 주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시장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현장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시범 운영 기간 동안 불만을 쏟아내고 있지만, 경남도는 이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가맹점 수를 늘리고 홍보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
19일 낮 12시. 창원의 중심가인 상남시장에 직장인들이 점식을 먹기 위해 몰려 들었다.
상남시장 3층에는 직장인들이 즐겨 먹는 매운탕과 국밥집 등 가게 50여 곳이 즐비했지만 취재진이 한 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제로페이를 사용한 소비자는 '제로'였다.
매운탕을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던 백모(47)씨와 황모(42)씨는 "한 번도 제로페이를 써 본 적이 없다"며 "내게 이익이 없으니까 쓰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모(28)씨는 "창원에 28년 살았지만 제로페이가 뭔지 모른다"며 "한 번도 안 써봤고 굳이 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38)씨 역시 "한 번도 제로페이 이용해 볼 시도조차 안 해봤다"며 "아무도 쓰지 않으니 제로페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지난해 12월부터 경남도의 제로페이 시범사업에 참여한 한 김밥집은 이날까지 3개월 동안 제로페이를 이용한 고객은 고작 '4명'이라고 했다.
신용카드 사용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습관을 바꾸기 위한 다양한 유인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인 박모(36)씨는 "소비자 관점에서 제로페이의 유일한 메리트는 소득공제이지만 이 공제율이 카드사와 비교해보면 얼마 차이 나지 않기 때문에 손님들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제로페이 결제금액의 40%를 소득공제에 반영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법안 마련까지 갈 길이 멀어 내년 연말 정산 때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게다가 이미 소상공인의 카드 수수료가 1% 대로 낮아져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별다른 매력도 못느끼고 있다.
박 씨는 "계속 이 정책을 유지하려면 소득공제 비율을 올리든가 소비자들이 제로페이를 쓸 수 있는 뭔가 다른 유인책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5년째 상남시장에서 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74)씨도 "시행초기니까 잘 안 되는 것 같다"면서도 "이미 도에서 알바생과 홍보비로 많이 썼으니 이왕 시행한 정책은 개선책을 잘 세워 시행했으면 좋겠다"고 자포자기했다.
제로페이 가입신청을 해서 제로페이 QR코드와 안내서 등을 받았지만 설치하지 않은 가게도 수두룩할 정도로 반응은 시큰둥하다.
상남시장 내 카페를 운영하는 한모(50)씨는 "소비자들이 제로페이 결제를 요구하지 않으니 굳이 설치할 필요를 못 느꼈다"며 "아무도 제로페이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1년째 가음정시장 내에서 피자집을 운영하는 이모(61)씨도 "제로페이에 대해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30년째 철물점을 운영하는 전모(48)씨는 "시행 초기니까 좀 기다려봐야 하지 않나"면서도 "아직까지 제로페이 이용객은 0명"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시장을 찾은 손님들은 "뉴스에서 들어봤는데 카드가 편하기 때문에 제로페이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다"며 "대중화되기 위해선 이용객을 위한 홍보가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김종석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제로페이 은행권 결제실적은 8633건, 결제금액은 약 1억 9949만 원에 불과했다.
취재진이 여러 상인과 손님을 만나본 결과 제로페이가 소상공인 혜택을 주는 좋은 정책이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했다.
하지만 기존 소비패턴을 바꿀 만큼 '당근책'이 없기 때문에 이대로 간다면 전형적인 탁상공론으로 그칠 것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결제 때 사용자 불편을 최소화하고 추가적인 인센티브 발굴도 더딘 상태다.
경남도는 이런 지적에 대해 "가맹점 확대 모집과 소비자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등을 진행할 계획"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3월 기준 경남 지역 제로페이 가맹점 수는 5600여 곳으로, 우려와 기대 속에 오는 20일 제로페이는 경남 전역으로 확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