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만 강화된 '막장', 시청률 높다고 웃을 수 있을까

[끝나지 않는 막장 논란 ②]
시청률 지상주의 비난하면서도 시청률 따라 막장 코드 수위 높여
시청률만 좇다간 '독'이 되어 돌아올 것
하나의 '드라마'로서 '콘텐츠' 품질 높이는데 집중해야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드라마는 이제 하나의 '장르'처럼 여겨진다. 막장 같은 현실에 놓인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한다는 막장드라마. 그러나 드라마 없이 그저 '막장'이 된다면 남는 건 비난뿐일 것이다. 막장드라마를 둘러싼 논란과 과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JTBC 'SKY 캐슬' (사진=JTBC 제공)
고대 그리스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문학처럼 극단적 상황 설정이 있더라도 독자를 납득시킬 수 있는 개연성이 존재한다면 작품이 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사람과 사회에 메시지를 던져준다면 작품이 된다. 그러나 '막장 코드'라는 요소만 채워 넣은 채 전후 맥락이 무시된다면 그 순간 정말 갈 데까지 간 '막장'이 된다. 높아진 자극 역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코드의 선정성을 강화하면 비난의 수위 역시 높아지고 시청자도 지상파 드라마를 외면할지 모른다. 막장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지상파 방송사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막장 코드'만 강화해 '시청률'만 얻은 지상파 드라마

KBS2 ‘하나뿐인 내편’ (사진=KBS 제공)
동생 바보로 살아온 중년남자 풍상씨와 철없는 동생들의 일상을 그린 KBS '왜그래 풍상씨'는 지난 14일 22.7%(닐슨코리아)라는 수목드라마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지난 17일 종영한 KBS '하나뿐인 내편'은 28년 만에 나타난 친부로 인해 인생이 꼬여버린 한 여자와 정체를 숨겨야만 했던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 단 하나뿐인 내편'을 만나며 삶의 희망을 되찾아가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지난 17일 방송된 '하나뿐인 내편' 마지막회는 42.8%-48.9%(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5년 만에 시청률 40%를 넘은 드라마이다. 지난 2010년 방송된 KBS 수목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이 세운 50%에는 못미쳤지만, 최고 시청률 49.4%를 기록했다.

SBS '황후의 품격' 역시 16.5%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황후의 품격'은 대한제국이라는 가상의 입헌군주제 시대, 황제와 결혼한 뮤지컬 배우가 궁의 절대 권력과 맞서며 황실을 무너뜨리고 진정한 행복을 찾는다는 설정이다.

10%를 넘으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속에서 이들 드라마는 모두 10%를 가뿐히 넘기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세 드라마 모두 방송 내내 '막장' 논란이 이어졌다. 현실에서 동떨어진 가족의 이야기를 막장의 클리셰로 뒤덮거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 묘사를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막장 트로이카'로 불리는 '왜그래 풍상씨'의 문영남 작가와 '황후의 품격'의 김순옥 작가다. 문영남 작가는 SBS 주말드라마 '조강지처클럽',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등 주로 주말극에서 활약했다. '시청률 제조기'라 불리는 김순옥 작가는 SBS '아내의 유혹', MBC '왔다! 장보리', MBC '내 딸, 금사월', SBS '언니는 살아있다' 등 높은 인기와 논란을 동시에 얻은 작품을 썼다. 주로 주말극에서 막장드라마를 자주 선보인 이들이 '미니시리즈' 시간대로 넘어온 것이다.

작가들의 전력으로 인해 드라마는 방송 전부터 '막장'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실제로 방송 이후 종영까지 '황후의 품격'은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들로 '막장'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높은 수위의 애정 표현 장면, 협박하며 상대방의 몸 위에 시멘트를 쏟아 붓는 장면, 애완 앵무새를 불태우는 장면, 임산부에 대한 성폭행 설정 등으로 시청자들의 원성은 물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 제재를 받기도 했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세 드라마의 인기에 대해 "전통적인 가족이야기나 가부장적인 가족의 판타지를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아예 개연성 보다는 자극적인 요소로 시청자에게 인기를 끌었다"며 "문제는 막장이 이제는 기본 코드가 된 상황에서 막장의 정도를 얼마나 더 심각하게 만드느냐가 제작 포인트가 된 것 같다. 실제로도 높은 시청률이라는 수치로 확인되다 보니 지상파가 '막장 모드'의 강화 쪽으로 고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배우들의 열연에 시청률도 얻었지만 동시에 '막장'이라는 불명예 꼬리표가 붙었다. 개연성이나 사회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막장 모드'만 강화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래도 '왜그래 풍상씨'는 무책임한 부모, 바닥까지 감정을 내보이는 형제간의 갈등 등 보통의 범주를 넘어선 막장 같은 현실의 가족관계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나 소설도 아닌, 그것도 지상파에서 현실적인 가족 관계를 짚어줬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그런데 '하나뿐인 내편'은 지금까지 나온 모든 드라마를 고도로 농축시키면 저렇게 되겠구나 싶을 정도로 그 안에 모든 막장의 모티프가 빈틈없이 똘똘 뭉쳐 있다"고 지적했다.

황 평론가는 "'하나뿐인 내편'은 'SKY 캐슬'과 달리 사회 고발적인 내용도 없고, 지금 시대상과도 무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치매 노인을 희화화하고 도구적으로만 다루며, 인물이나 삶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 하나도 없다"며 "매체가 다양화되다 보니 시청자의 이동이 일어났는데, 지상파는 새로운 매체로 옮겨가지 않은 잔류 시청자가 소비하는 콘텐츠, 다시 말해 막장드라마를 제공하자는 전략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저비용 고효율이란 숙제 떠안은 드라마

KBS '왜그래 풍상씨' (사진=화면캡처)
막장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막장드라마가 나오고 시청률은 잘 나오지만 동시에 비난을 받는 상황은 무한하게 반복되고 있다. 막장드라마가 양산되는 이유에 대해 예전부터 방송 관계자들은 턱없이 부족해진 '제작비'를 이유로 들었다. 저비용 고효율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개연성'을 갖추기 위해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할 여건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예전에는 드라마에 제품간접광고(PPL)가 10억 원까지 나왔는데 이제는 많이 해봤자 3억 원에서 5억 원 사이 수준이다. 수익이 날 수 있는 게 없다는 의미"라며 "이걸 해결하려면 방송사에서 제작비를 늘려야 하는데 그만큼의 광고수익 등이 예전만큼 붙지 않으니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드라마 관계자는 "예전에는 드라마가 수익을 내서 보도와 교양 쪽까지 다 먹여 살렸다. 그런데 지금은 슬프게도 드라마가 수익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간신히 적자를 면하기 위해 애쓰는 상황"이라며 "드라마가 수익을 내지 못하면 해당 방송사가 계속 적자 상태로 가야 하는데, 일반 기업 같으면 상장폐지 수준"이라고 말했다.

기술이 발전하고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끊임없이 고품질 콘텐츠가 쏟아지며 시청자들의 수준 또한 높아졌다. 그러나 채널이 늘어난 만큼 광고 시장이 넓어진 것은 아니고 제작비 충당을 둘러싼 경쟁도 심화됐다. 열악한 현실은 사실이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국문과)는 "지상파 방송으로서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케이블과 종편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지상파 방송의 평균 시청률이 하향 평준화되면서 위기의식이 고조되었을 것"이라며 "지상파는 그동안 쌓아온 콘텐츠 제작 노하우를 가지고 나름대로 작품을 만들려고 했으나 반응이 잘 안 나오고 시청률은 계속 떨어지자, 최소한의 시청률이라도 가져가자는 절박함도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청률 지상주의', '막장 코드' 벗어나 드라마라는 '콘텐츠'에 집중해야

SBS '황후의 품격' (사진=SBS 제공)
드라마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제작비 여건과 현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지만, 막장드라마를 양산하는 데 가진 큰 책임은 역시 '편성권'을 가진 방송사에 있다는 지적을 벗어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광고 수익으로 이어지는 시청률 경쟁 속에서 상업적인 논리에만 치우치다 보니 결국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자극적 소재'를 찾게 되고, 그간 끊임없이 생산된 막장드라마와의 차별성을 갖기 위해 막장코드의 선정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물론 막장드라마의 정의는 단순히 불륜, 배신, 복수 등 막장의 요소만 가지고 말할 수 없다. 막장 코드는 말 그대로 드라마의 전개와 인물의 삶과 사회적 고민을 담아내기 위한 '코드'가 아닌 '드라마' 그 자체가 될 때 문제인 것이다.

이 같은 막장 코드 중심의 드라마 제작이 이어질 경우 드라마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저품격화로 이어질 우려도 존재한다. '시청률'에 숨어 '드라마'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윤석진 교수는 "당장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고 본다. 아무리 힘이 빠졌다고 해도 지상파가 가진 기본적인 저력이 있다. 지상파가 가진 저력을 가지고 시작을 선도할 수 있는 과감하고 혁신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며 "영상 문법도 많이 바뀐 상황에서 관습적으로 카메라를 돌리면 아무리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온다고 해도 진부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윤 교수는 "당장의 미봉책이나 꼼수보다는 정공법으로 콘텐츠 자체의 질을 향상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교석 평론가는 "지상파는 과연 높은 시청률을 성공이라 보는지에 대해 반문하고 싶다. 지상파에서 만든 드라마가 우리나라 모든 채널을 통틀어 가장 유치하고 저급한데, 이런 점에 대해 스스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라며 "시청률 지상주의를 경계하자고 하지만 가장 일선에서 시청률을 우선시하고 있는 게 지금의 지상파 채널이다. 이 같은 부분에 대해서 어떤 경각심을 가졌는지 반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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