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콜 첫 곡이었던 '괴도'(Danger)로 어둠을 뚫고 나타난 태민은 마치 노래 가사로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이미 스무 곡 넘는 노래의 무대를 선보이고도, 새로운 판이 시작됐다는 양 외쳤다. "It's My Show Time"이라고.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샤이니의 막내 태민의 두 번째 단독 콘서트 'T1001101'이 열렸다. 지난 2017년 10월 '오프 식-온 트랙'(OFF-SICK on track) 이후 1년 5개월 만에 국내 팬들을 만나는 자리였던 만큼, 팬들의 기대감은 컸다. 15일부터 시작된 공연은 이날 마지막을 앞두고 있었다.
태민은 2014년 8월 샤이니(온유·종현·키·민호·태민) 멤버 가운데 처음으로 솔로로 출격한 후 일렉트로 스윙('괴도'), 팝 댄스('프레스 유어 넘버'), PB R&B('무브'), 스페이스 디스코 장르의 업 템포('원트') 등 감각적이며 실험적이고 완성도도 놓치지 않은 음악과 앨범을 발표했다. 그는 이날 공연에서 뮤지션 태민의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듯 몸을 던졌고, 공연장은 열기로 가득했다.
◇ 최초 공개한 곡만 3곡, 알찬 세트리스트
첫 미니앨범 '에이스'를 시작으로 한일을 오가며 싱글 4장, 미니앨범 4장, 정규앨범 4장을 낸 태민의 세트리스트는 꽉꽉 차 있었다. 앵콜까지 총 25곡을 부르며 2시간 18분 동안 공연을 이끌었다.
우선, 지난달 11일 발매한 2번째 미니앨범 수록곡은 모두 세트리스트에 포함됐다. '아티스틱 그루브'(Artistic Groove), '섀도우'(Shadow), '네버 포에버'(Never Forever), '혼잣말'(Monologue), '트루스'(Truth)와 '원트~아웃트로~'(WANT~Outro~)에서 발전한 신곡 '아이덴티티'(Identity)까지 선보였다.
태민은 "'아이덴티티'는 '원트' 앨범에 아웃트로로 수록됐는데, 제가 여러분께 복선이라고 그랬잖아요. 이게 연관이 돼서 콘서트로 이어진 거예요. 지금의 저를 담아낸 가사와 퍼포먼스, 음악이라고 보시면 되고 개인적으로 되게 좋아하는 노래"라고 소개했다.
두 번째 신곡은 '헤븐'(Heaven)이었다. 태민이 직접 작사를 맡은 '헤븐'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곡이었다. 이때도 슬로프가 등장했다. "지옥 같은 세상 속에"라는 가사에 맞춰 댄서들이 마치 좀비처럼 태민에게 달려드는 등 연출이 기발했다. 기울기가 있는 장치에서 펼치는 다양한 대형은, 일반 무대에서의 그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태민은 "이건 가사를 제가 썼어요. 가사 쓰고 나서 제가 A&R팀한테 '무조건 제 거로 해야 한다'고 우겼어요. 여러분한테 뭔가 위로가 될 만한 가사를 써 보고 싶었어요"라며 "듣고 힘을 낼 수 있는, (제목처럼) 천국을 보여주겠다, 천국으로 데려가겠다는 가사예요. 좋아해 주길 바랐는데 많이 좋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안무에 관해서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태민은 "안무하면서 이래저래 시도도 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슬로프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제가 와이어를 안 차고 무대를 하는데, 누우면 여러분들에겐 안 보일 수 있지만 저와 댄서가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와요. 되게 재미있게 연습했던 기억이 있어요"라며 웃었다.
태민은 그동안 발표한 타이틀곡을 모두 불렀다. 미니 2집 '원트'(WANT)는 2번째로, 정규 1집 '프레스 유어 넘버'(Press Your Number)는 17번째로, 정규 2집 '무브'(MOVE)는 22번째로 불렀다. 앵콜 첫 곡으로 부른 미니 1집 '괴도'(Danger)는 샤이니 4번째 미니앨범의 동명 타이틀곡 '셜록'(Sherlock)과 매시업해 새로운 느낌으로 재탄생했다.
'드립 드롭'(Drip Drop), '소나타'(Play Me), '에이스'(Ace), '원 바이 원'(One By One), '게스 후'(Guess Who), '섹슈얼리티'(Sexuality), '프리티 보이'(Pretty Boy), '낮과 밤'(Day and Night), '최면'(Hypnosis) 등 국내 앨범 수록곡 비중이 높았다. '홀리 워터'(HOLY WATER), '인투 더 리듬'(Into The Rhythm), '굿바이'(さよならひとり) 등 일본 앨범 수록곡도 있었다.
◇ 콘서트를 관통하는 콘셉트는 '어린 왕자'
황상훈 SM 퍼포먼스 디렉터가 연출을 맡은 태민의 두 번째 단독 콘서트 제목은 'T1001101'로 꽤 독특했다. 태민(TAEMIN)의 'T'와 알파벳 'M'의 이진법 표기를 더해 만들어진 것이다. 제목이 조금 길고 어려워서, 태민과 팬들은 '태민의 아이덴티티'라는 의미로 이번 콘서트에 'TMI'(TaeMin's Identity)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특히 이번 콘서트는 '어린 왕자'라는 콘셉트로 영상, 무대, 스타일링까지 아우르는 통일성을 보여줬다. 태민은 중간 토크 때 "여러분들은 몰랐겠지만 이 콘서트에 숨겨진 의미가 있어요. 마지막까지 제가 말 안 하고 있었어요"라고 해 궁금증을 자극했다.
그는 "영상 속 장미, 사막, 여우, 제가 입고 나온 프릴 의상, '원트'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뱀… 이런 메타포적인 요소를 넣었어요. '어린 왕자'입니다!"라며 "주인공 '어린왕자'는 접니다. 여러분은 저의 행성에 놀러오신 손님들이에요"라고 말했다.
'백 투 유'(Back To You) 영상에서는 드레스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채 펜싱에 쓰이는 검을 든 모습이었다. 태민의 무대 의상도 '어린 왕자'를 연상케 하는 차림이 많았다. 소매가 언밸런스하게 처리된 수트와 광택이 나는 긴 장갑, 상아색에 가까운 바랜 금발, 컬러 렌즈, 눈매를 더 그윽하게 하는 스모키 메이크업이 완벽히 어우러져 비주얼적으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프리티 보이'에는 "사랑에 서툰 어린 왕자님 같다고"라는 가사도 나온다.
본인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새롭게 꾸민 무대도 있었다. '소나타'를 부를 때는 마이클 잭슨을 떠올리게 하는 흰 중절모를 썼다. 태민은 "조금 더 공연장에 어울리는 버전으로 편곡했고, 모자를 준비해서 약간 마이클 잭슨 같은 느낌을 내보려고 했는데 제 개인적인 소망을 이룬 느낌"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잘했다는 건 아니고, 모자도 제가 쓰고 싶다고 해서 그 부분만 썼는데, 되게 좋아하는 무대예요. 낭만적인 가사여서 여러분께 꼭 불러주고 싶었던 노래였어요"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 변화무쌍한 몸놀림, 호소력 있는 목소리, 팬들과 '밀당'하는 입담
2008년 '누난 너무 예뻐'로 데뷔한 후 올해로 데뷔 12년차를 맞은 태민은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격렬한 안무와 숨 쉴 틈 없는 노래를 연달아 선보이다 보니,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은 마를 겨를이 없었으나 안무도 노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남성-여성 댄서들과 함께하는 무대도 좋았지만 홀로 남아 무대를 채울 때 존재감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곡의 분위기에 맞는 표정을 짓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홀리 워터', '프리티 보이' 등의 무대에서는 능숙하게 관객 호응을 유도했고, 덕분에 무대는 더 뜨거워졌다.
콘서트 후반부는 태민의 목소리와 가창력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곡들로 구성됐다. '네버 포에버', '낮과 밤' 땐 스탠딩 마이크를 썼고, '굿바이' 무대에선 아래에서 위로 솟아난 듯 관객 앞에 나타난 후 혼자 앉아 노래를 마쳤다. '최면'과 '혼잣말', '솔저'는 보컬리스트 태민의 실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괴도'에선 후렴 부분 화음을 강조해 듣는 맛을 더했다.
데뷔했을 때만 해도 '초졸탬'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태민은 무대를 휘어잡는 베테랑이자, 대화로 팬들과 밀고 당기기까지 하는 청년으로 자랐다. 무대 중에도 '이태민!'이란 함성이 나오면 미소로 화답했고, 중간중간 '공연이 얼마나 좋은지'를 물어보며 점검했다. 공연장이 지나치게 더울까 봐 염려하면서도 "더워도, 그래도 나 보고 싶잖아요. 같이 있어 줘요. 어디 가지 마요"라는 말로 팬들을 꼼짝 못 하게 했다.
태민은 팬들이 준비한 이벤트('우리의 모든 순간 오직 태민이여야 해♥'', 'WE♥ 6v6 TM')를 보고 "그렇게 저에게 좋은, 예쁜 말을 해 주니까 어느새 16세 태민이가 스물일곱 태민이가 됐다. 놀랍죠? 저는 식물인 것 같아요. 예쁜 말해주니까 잘 자라요"라고 말했다.
태민은 공연 막바지 "오늘 진짜 아쉽지만 저희 즐거운 추억 만들어주신 여러분 너무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 많은 날이 있기를 바라면서… 여러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저를 기다려주세요"라는 말로 아쉬워하는 팬들을 달랬다.
돌출무대에서 앵콜 마지막 곡 '트루스'를 부른 후, 태민은 "고마워요! 또 만나요, 알겠죠? 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그리고 저도 진짜 여러분 많이 사랑해요!"라며 손 키스를 한 후 퇴장했다.
"또 금방 앨범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라고 밝혀 팬들의 기대감을 높인 태민의 두 번째 단독 콘서트 'T1001101'은 3일 동안 1만 5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