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노태우정권 당시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민심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이 백담사로 피신할 수 있던 데는 정권 교체 실패가 있었다. 김영삼정권에서 그를 재판대에 세운 것도 김영삼 대통령이 거대여당을 등에 업고 5·18특별법을 제정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당시 검찰이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막았기 때문이다."
전씨는 지난 1997년 4월 '군사반란'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으나, 불과 8개월 뒤인 그해 12월 특별사면돼 지금에 이르렀다.
심용환은 "야만적인 인권유린을 자행한 5·18광주학살조차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명박이 풀려난 것은 그에 관한 증언을 내놓던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다"며 "민심과 달리 이명박이 전두환의 뒤를 따를 가능성이 우려된다. 가장 최악은 박근혜까지 풀려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법부 판결에 대한 불신이 큰데다 그간 되풀이돼 온 사면이라는 예외조항까지 있기 때문에 이명박 등이 이를 악용할 여지가 커 보인다"고 우려했다.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다룬 책 '우리는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위즈덤하우스)를 최근 펴낸 심용환은 "우리는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이나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윤선 등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몇몇 인물에만 주목하지만, 여기에는 어머어마하게 많은 공무원들의 공모가 있었다"며 말을 이었다.
"그 주목받는 관련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현실에서 공무원들이 법을 진지하게 생각할 리 만무하다. 그렇게 '권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강화되는 것이다.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세력이 정권을 잡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 그러니까 공무원들의 '힘에 대한 탐닉'은 여전히 유지되는 셈이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 "권력자 따르는 엘리트 악순환 고리…'저항자'가 끊는다"
"지난 196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공무원 임용제도가 시행된 뒤로 시험을 통과한 공무원들은 지도자가 이끄는 운동을 실행하는 데 그 기능을 집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화는 헌법과 법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능멸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권력자들 눈높이에 맞춰 행동해 온 탓에 정상적인 역할을 잃어버린 것이다."
심용환은 그 해법으로 '저항자' 개념을 내세웠다. 그는 "이번 책을 쓰게 된 계기도 문화예술인들의 집요한 투쟁에 있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김기춘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연 데서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을 유추할 수 있다. 현재까지 그 실체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조사 결과는 사실상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거의 유일하다. 이는 현장 문화예술인들이 검열을 받고 있다고 느꼈고, 그것에 저항하고 실천하면서 이슈화를 시켰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문화예술계처럼 뜻있는 사람들이 조직을 만들어 싸운 덕에 블랙리스트 관련 인사들을 그나마 처벌할 수 있었다"며 "그러한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조직을 만들고 실천하다 보면 더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진보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역설했다.
심용환은 "한국 사회는 지난 70, 80년간 쌓아 온 민주주의 동력을 분명히 갖고 있기에 우리가 절망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며 "다시 한 번 방향성을 찾고 우리 스스로 역량을 키우면서 싸움을 이어갈 당위성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이어 "단 하루 만이라도 구속된 전두환을 보고 싶다. 이명박·박근혜에 대한 분명한 단죄로 그들이 죄지은 만큼 형량을 받고, 그것이 오롯이 집행되는 광경을 보고 싶다"며 "자발적인 시민들의 힘이 모이는 데서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