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책 '제가 왜 참아야 하죠?'(바틀비·2018) 등으로 이름난 작가 박신영은 13일 CBS노컷뉴스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남성중심 사회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상화되는 여성을 '사냥감'에 비유했다.
그는 "역사를 공부하고 글을 쓰는 입장에서 보면 지금이 21세기라지만 여성들에게는 21세기가 아니"라며 "모든 사람이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어떤 사람들 사고방식은 중세, 조선시대에 머문다"고 진단했다.
"고대사, 더 거슬러 올라가서 구석기·신석기 시대를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고대 여성들 지위는 딱 인간과 가축의 중간이다. 자유민과 노예의 중간 위치인 것이다. (인류가) 아무리 근대 시민혁명을 거치고 여성들이 투표권을 갖는 등 진보해 왔다고 하지만,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 입장에서 여성은 여전히 '2등 시민'이다."
박신영은 "그 사고방식은 가부장제 역사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생각한다"며 "그 안에서 여성은 여전히 주체가 아닌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박신영은 전날 자신의 SNS에 올려 화제가 된 글 '성관계 동영상을 공유하는 남성 문화가 만연한 이유'에서 "왜 사생활인데, 자신의 신체 일부도 나오는데 성관계 동영상을 찍고 상대 여성 사진을 찍어 공유할까요? 여성은 사진이나 동영상이 유출될까봐 무릎 꿇고 비는데 왜 남성은 스스로 유출할까요?"라는 물음을 던진 뒤 아래와 같이 자답했다.
"여성은 같은 인간이 아니라 사냥감이기 때문입니다. 사냥에 성공한 기념인 '헌팅 트로피'이기 때문입니다. 동화 속 '푸른 수염'처럼 자기집 창고에 여성들 시체를 전시해둘 수 없으니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기념하는 겁니다."
이어 "그 기념사진이나 영상을 같은 그룹에 속한 친한 남성들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합니다. '내가 이렇게 사냥을 잘 하는 진짜 남자라구! 이거는 증거 사진이야!' 이 과정을 통해 그룹에 속할 자격이 충분한, 진짜 남성다운 남성임을 증명하고 증명받습니다. 이게 남성 사회가 결속하고 유지되는 원리"라고 부연했다.
그는 이 글에서 "모든 사회악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즘적 시각을 갖고 보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했다.
◇ "나부터 바뀌고 주위 친구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데 동참해 주세요"
그는 "결국 페미니즘은 세상을 어느 입장에서 바라볼 것인가와 직결된다. 이전 시대에는 동등하게 투표할 권리, 재산을 받을 권리, 교육 받을 권리 등이 중요했는데, 지금 시대에는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며 "여성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거나 남성을 혐오할 권리로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그렇게 오해하도록 조장하는 가부장 권력, 기득권 세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언급한 SNS 글에서 박신영은 "저는 남성들이 나쁘니까 공격하자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문화가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제대로 근본 문제를 보고 고쳐서 다같이 행복하게 살자는 의도입니다. 지나가다가 이 글을 보신 남성분들, 문제 의식을 갖고 움직여 주세요. 나부터 바뀌고 주위 친구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데 동참해 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박신영은 인터뷰를 통해 "자주 쓰는 표현인데, 소금물통에 들어가면 오이지가 되고 식촛물통에 들어가면 오이피클이 되는 법"이라며 부연을 이어갔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문화에 젖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물을 빼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것을 계속 알려야 한다. 이미 그러한 문화를 싫어하는 남성들도 많다. 하지만 단톡방에서 동영상이 공유되는 게 싫은데도 '싫다' '지워라' '범죄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 남성 집단에서 배제되고 소외당할 것을 걱정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이 문제라고 용기내 말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며 "(젠더 인식을 지닌) 남성들이 모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하는 이유인데 여기에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러한 남성들이 '나는 혼자가 아니다'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용기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모든 남성들에게도 더 유리한 세상이 올 것"이라며 "이번 연예인 단톡방 사건을 통해 이미 그러한 지점이 온 것 같다. 반환점을 돈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