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모는 80년대 경량급 간판 복서였다. 펀치를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 스타일에 기술이 좋아 '테크니션'으로 불렸다.
고교생이던 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 라이트플라이급에서 금메달을 땄고, 84년 LA올림픽 플라이급 8강에서 탈락한 뒤 문성길이 있던 밴텀급으로 체급으로 올렸다.
'돌주먹' 문성길과의 세 차례 라이벌전은 한국 복싱 역사에 남을 명승부였다.
84년 12월 제4회 서울 월드컵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 심판이 문성길의 손을 번쩍 들어올리자, 허영모가 웃음을 띤 채 박수치는 모습은 지금도 회자된다. 2-3 판정패.
85년 있었던 두 번째 대결의 승자 역시 문성길이었다. 1차전 때와 달리 허영모는 고개를 숙이며 아쉬워했다. 2-3 판정패.
허영모는 세 번째 대결이던 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0-5로 판정패하며 문성길과 상대전적 3전 3패를 기록했다.
허영모는 87년 있었던 88년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며 글러브를 벗었다. 이후 프로 전향을 거부하고 89년부터 전남 여수 여도중학교에서 30여년간 체육교사로 근무했다.
86년 한국 복싱 역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아경기대회를 모두 제패한 문성길이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프로로 전향한 데는 든든한 후배 허영모의 존재가 한 몫 했다고 전해진다.
2005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허영모는 한국 아마추어 복싱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6개월 간의 투병 끝에 하늘나라 링으로 떠났다.